[김한수의 오마이갓] 4월 28일은 이 종교 성직자들의 ‘공동 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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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8일.
이 날짜를 보면 무엇이 생각나시나요? 197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닌 분이라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을 겁니다. 맞습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입니다. 4월 28일은 ‘충무공 탄신일’입니다. 이순신 장군을 그냥 영웅이 아닌 ‘성웅(聖雄)’으로 부르던 그 시절엔 초등학생에게 그의 탄신일도 가르쳤습니다. ‘충무공 탄신일’을 떠올리면 거의 자동적으로 ‘충무공의 노래’가 떠오릅니다. ‘보라, 우리 눈앞에 나타나는 그의 모습/거북선 거느리고 호령하는 그의 위풍’으로 시작하는 노래이지요. 충무공 탄신일이 국경일은 아니었지만 초등학생 입장에선 3·1절, 광복절처럼 날짜와 함께 노래까지 기억나는 날이었습니다. 언젠가부터 충무공 탄신일을 그렇게 기념하지는 않게 됐지만 제 기억 속에 ‘4월 28일’은 여전히 또렷이 남아있습니다.
창시자 탄신일 아닌 깨달은 날이 최대 명절
그런데, 4월 28일이 충무공 탄신일일 뿐 아니라 한 종교의 ‘생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종교담당을 맡게 된 이후의 일입니다. 바로 원불교이지요. 그런데 생일은 생일인데, 원불교의 생일은 일반적인 종교의 기념일과는 달랐습니다. 기독교는 예수가 태어난 성탄절, 불교는 석가모니가 탄생한 부처님오신날을 명절로 기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원불교의 생일은 창시자인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1891~1943) 대종사가 태어난 날이 아닙니다. 대신 1916년 4월 28일 새벽 소태산 대종사가 큰 깨달음[大覺]을 이룬 날을 ‘대각개교절(大覺開敎節)’로 기리고 있습니다. 이날이 원불교의 생일이자 최대 명절인 것이지요. 세종대왕과 한글에 비유한다면 세종대왕의 탄신일이 아닌 한글을 창제·반포한 날을 ‘한글날’로 기념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오는 28일은 원기(圓紀) 108년 대각개교절입니다. 원불교는 이날 오전 10시 전북 익산 중앙총부 반백년기념관에서 대각개교절 기념식을 갖습니다.
깨달은 후 기존 종교와 비교해보니 불교와 가장 가까워
사실 원불교의 탄생 과정도 색다릅니다. 소태산 대종사는 5년여 수행 끝에 ‘만유(萬有)가 한 체성(體性)이며, 만법(萬法)이 한 근원’이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 다음이 흥미롭습니다. 보통은 깨달음을 얻었으면 “나는 이런 진리를 깨달았다”고 선포할텐데, 소태산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깨달음 후에 유불선(儒佛仙)과 당시의 그리스도교 성경까지, 먼저 세상에 나와있는 종교를 섭렵했습니다. 그 결과 불교의 ‘금강경’이 자신의 깨달음과 가장 가깝다는 것을 알고 석가모니 부처님을 선각자로 존중하지요. 또한 초기 교단 명칭도 ‘불법(佛法)연구회’로 정합니다. 소태산이 사찰로 출가해서 불교를 배우지는 않았지만 깨닫고보니 불교와 서로 통하더라는 것입니다. ‘불교인 듯 불교 아닌’ 원불교는 그렇게 탄생했지요. 그래서 원불교 교당에는 불상(佛像)은 없습니다. 대신 깨달음을 상징하는 일원상(一圓相), 즉 큰 원이 교당 정면 벽에 있지요.
원불교의 표어는 ‘물질이 개벽하니 정신을 개벽하자’입니다. 20세기초 서구의 근대 문물이 해일처럼 밀려드는 당시를 ‘물질 개벽의 시대’로 보고 ‘정신 개벽’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지요. ‘정신 개벽’을 강조한 원불교를 알게 되면서 든 생각은 ‘신식 종교’라는 점이었습니다. 100여년 전에 생일을 양력으로 정한 것부터 그렇습니다. 또한 원불교 성직자(교무)들은 대각개교절을 ‘공동 생일’로 삼고 있습니다. 아마도 창시자부터 성직자들까지 자신의 생일을 챙기면 신도들이 번거롭게 될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원려(遠慮)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초기부터 남녀 모두 성직자로
창시자의 직계 가족이 교단을 물려받지 않았고 초기부터 남녀가 모두 성직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아마 일반인들은 원불교의 남자 성직자보다 여자 교무를 기억하는 분들이 더 많을지 모릅니다. 과거엔 정녀(貞女)라고 불렀는데 머리카락을 쪽찌고 흰 저고리, 검정 치마 한복차림의 성직자들입니다. 교단 초창기 여성 교무들의 헌신과 희생, 모범을 보면서 많은 이들이 원불교에 입교했다고 합니다. 당시 여성 교무들은 용금(봉급)은커녕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근검절약하면서 교화에 앞장섰다고 하지요. 저도 원로 여성 교무님들을 가끔 만날 때면 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멀리서 보면 깔끔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옷과 신발 등이 얼마나 오래 입고 신은 것인지 낡은 것인 경우가 많거든요. 그렇지만 얼굴 표정들은 한결같이 ‘보살’처럼 편안해 보이는 분들이었습니다. 요즘도 이따끔 원불교에서 보내오는 성직자들의 부음엔 ‘소태산 대종사를 친견하고...’라는 문구가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제는 소태산 대종사 생전에 출가한 분들은 거의 다 돌아가셨지요.
저축은행-간척사업...처음부터 자급자족 노력
또 한가지 원불교의 신식은 초기부터 자급자족을 위해 노력했다는 점입니다. 소태산 대종사는 ‘생활불교’를 표방하면서 시주나 동냥이 아닌 각자 직업을 갖고 교화사업에 나서도록 했지요.(현재는 성직자가 다른 직업을 갖지 않고 일종의 봉급을 받고 있습니다) 개교 이듬해인 1917년 ‘근검저축’ ‘허례폐지’를 내세운 저축조합을 만들고 이 기금을 종잣돈 삼아 1918년에는 전남 영광 백수읍 길룡리 앞 갯벌을 메우는 간척사업을 벌였습니다. 농지가 없어 가난했던 이 마을에 3만평의 논을 선물한 것이지요. 저축조합을 만들고 간척사업으로 농지를 만들어주는 종교에 대해 당시 사람들이 어떤 생각과 고마움을 가졌을지는 충분히 짐작이 됩니다.
“익산에선 원불교가 메이저 종교”
전남 영광에서 출발한 원불교는 1924년 전북 익산으로 중심지를 옮깁니다. 거의 100년 전 당시 익산(이리)은 요즘 말로 ‘신도시’였답니다. 익산 신용동 일대로 옮겨온 원불교는 비로소 교단 행정과 교육 시스템 등을 체계적으로 갖추지요. 말하자면 익산이라는 신도시와 원불교는 함께 성장한 셈입니다. 지금도 익산대로를 사이에 두고 서쪽에는 원불교 중앙총부 등이 있는 익산성지, 동쪽으로는 원광대와 원광보건대 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현지를 방문해보신 분은 알겠지만 이 일대는 한마디로 ‘원불교 타운’처럼 느껴집니다. 10여 년 전 대각개교절 무렵 종교담당 기자들이 익산을 방문해서 이웃 종교들의 사회복지시설을 찾은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이웃 종교 성직자의 말이 지금도 기억나네요. “익산에선 원불교가 메이저 종교이지요....” 전국적인 교세를 따지자면 개신교, 불교, 천주교에 비교가 되지 않을지 몰라도 적어도 익산에서 원불교의 위상은 상당합니다.
앞서 원불교를 ‘신식 종교’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이 ‘신식’ 혹은 ‘새롭다’는 말은 상대적이지요. 오늘은 ‘새 것’이지만 내일은 ‘헌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종교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항상 쇄신하지 않으면 금방 낡은 것이 되곤 하지요. 원불교도 내부적으로 쇄신과 혁신을 위한 다양한 논의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원불교가 초심처럼 신식 종교, 젊은 종교의 면모를 잘 이어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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