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클린, DNA 이중나선 규명 왓슨·크릭과 동등한 기여자"
(서울=연합뉴스) 이주영 기자 = 25일로 70주년을 맞은 유전물질 데옥시리보핵산(DNA) 이중나선 구조 규명에 여성 과학자 로절린드 프랭클린이 프랜시스 크릭·제임스 왓슨·모리스 윌킨스 등 노벨상 수상자들과 동등한 기여를 했다는 증거가 추가로 발견됐으며 이제라도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제기됐다.
영국 맨체스터대 매슈 코브 교수와 미국 존스홉킨스대 너새니얼 컴포트 교수는 26일 과학저널 '네이처'(Nature) 기고문에서 이전에 간과됐던 한 통의 편지와 새로 발견된 1953년 미발행 기사에서 프랭클린이 DNA 구조 발견에 있어 노벨상 수상자들과 동등한 기여자였다는 증거를 추가로 확인했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1953년 4월 25일자 '네이처'에 발표된 DNA 이중나선 구조는 20세기의 대표적 과학 성과 중 하나로 꼽히며, 이 업적으로 1962년 윌킨스와 함께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크릭과 왓슨은 20세기 대표 과학자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프랭클린은 결정학(crystallography)에 정통한 여성 화학자로 DNA 구조가 담긴 당대 최고의 DNA X선 회절 사진으로 DNA 구조 규명에 결정적 기여를 하고도 1958년 37세의 나이에 요절해 노벨상을 받지 못한 것은 물론 크릭·왓슨과의 경쟁에서 억울하게(?) 패한 피해자라는 이미지까지 생겼다.
특히 왓슨이 1968년 DNA 구조 발견 뒷이야기를 담아 출간한 베스트셀러 '이중나선'에서 프랭클린의 DNA X선 회절 사진을 보자마자 이중나선 구조를 떠올렸다고 극적으로 묘사한 뒤 프랭클린은 왓슨이 한눈에 알아챈 자기 사진의 의미를 수개월 동안 이해하지 못한 과학자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썼다.
그러나 코브 교수와 컴포트 교수는 DNA 이중나선 구조 발견을 둘러싼 이런 서사는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며 그동안 간과됐던 한 통의 편지와 새로 발견된 보도되지 않은 뉴스 기사에서 프랭클린이 DNA 연구에서 노벨상 수상자들과 동등한 기여자였음이 추가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왓슨과 크릭에 대한 전기를 집필 중인 두 사람은 지난해 영국 케임브리지에 있는 처칠 칼리지의 프랭클린 기록보관소에서 1953년 프랭클린의 동료였던 폴린 카원 연구원이 크릭에게 보낸 편지와 같은 해 언론인 조앤 브루스가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을 위해 작성했지만 보도되지 않은 기사를 발견했다.
당시 DNA 구조 연구는 경쟁이 치열한 연구 주제였으며 프랭클린은 킹스칼리지 런던에서 윌킨스와 함께 연구 중이었고, 크릭과 왓슨은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연구하고 있었다.
카원 연구원이 1953년 1월 크릭에게 보낸 편지는 프랭클린 등 연구자가 결정학에 대해 강연하는 행사에 초대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에 앞서 왓슨은 킹스칼리지 런던을 방문해 프랭클린이 1952년 5월에 찍은 유명한 DNA X선 회절 사진 '사진 51번'(Photograph 51)을 보았고, 크릭은 자기 상사인 맥스 페루츠로부터 윌킨스와 프랭클린팀의 연구 현황에 대한 비공식 보고서를 전달받은 상태였다.
코브 교수와 컴포트 교수는 프랭클린이 찍은 '사진 51번'은 DNA 이중나선 구조 발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진으로 "분자생물학의 '현자의 돌'(philosopher's stone)"로 여겨지고 있다며 "이 사진은 프랭클린의 업적을 보여주는 상징인 동시에 그가 받은 부당한 대우의 상징이 됐다"고 말했다.
크릭과 왓슨은 이후 자신들의 성과가 "윌킨스와 프랭클린의 미발표 실험 결과와 아이디어의 자극을 받았다"고 인정하면서도 "세부적인 내용은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1954년 발표한 논문에서는 "프랭클린의 데이터가 없었다면 우리가 DNA 구조를 규명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았을지 몰라도 거의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당시 프랭클린은 직장을 옮기기 위해 연구자료를 윌킨스에게 넘긴 상태였고 윌킨스가 프랭클린에게 알리지 않고 '사진 51번'을 왓슨에게 보여준 것으로 알려지면서 '크릭과 왓슨이 프랭클린 데이터를 훔쳤다'다는 논란과 함께 '그들이 1953년에 발견한 것은 프랭클린의 데이터였다'는 비아냥이 나오기도 했다.
코브 교수와 컴포트 교수는 크릭과 왓슨이 당시 더 강력하게 사실을 바로잡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새로 발견된 미발행 기사는 DNA 이중나선 구조 규명을 실험 증거 수집에 집중한 윌킨스·프랭클린 연구팀과 이론 연구 중심의 크릭·왓슨 연구팀이 함께 이루어낸 성과로 묘사했다.
이 기사는 두 연구팀이 어느 정도 독립적으로 연구했지만 서로 연결돼 있어서 때때로 상대 팀의 연구를 검증하거나 공통의 문제를 놓고 경쟁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코브 교수와 컴포트 교수는 "이들 문서를 종합하면 프랭클린이 DNA 구조를 이해하는 데 실패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면서 "그는 윌킨스와 함께 과학적 질문을 명확히 하고 해법을 향한 중요한 초기 단계를 수행했고 중요한 데이터를 제공하고 결과를 검증한 팀으로서 DNA 이중나선을 규명한 4인조의 동등한 일원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프랭클린은 당시의 일상적인 성차별뿐 아니라 과학에 내재해 있던 더 미묘한 형태의 성차별에 맞서 싸웠다"며 "프랭클린의 이야기를 올바르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scite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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