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에 민감한 금융사들, 손실만 나는 ‘배구단’ 운영하는 이유는?

유희곤 기자 2023. 4. 25.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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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 소속 흥국생명 등 여자부 3팀·남자부 5팀을 금융사가 운영·후원
야구·축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깔끔한 이미지’ 홍보 장점

2022~2023시즌 V리그(프로배구리그)가 한국도로공사(여자부)와 대한항공(남자부)의 우승으로 지난 6일 막을 내렸다. 배구는 2010년대부터 겨울 대표 프로 스포츠로 자리매김했고 특히 여자부 인기가 뜨겁다.

한국배구연맹(KOVO)에 따르면 올 시즌 여자부 관중은 34만7267명으로 코로나19 사태 직전인 2018~2019시즌보다 38% 증가했다. 남자부 관중은 21만4178명으로 4년 전보다 34% 감소했다.

여자 배구 인기를 주도하는 팀은 김연경이 소속된 흥국생명이다. 흥국생명은 올 시즌 감독 경질 논란에도 정규리그 1위, 챔피언결정전 준우승을 차지했다. 김연경은 다음 시즌에도 흥국생명에서 뛰기로 했다. 남자부는 4시즌 만에 챔피언결정전에 오른 현대캐피탈이 내년에 정상 탈환을 다시 도전한다.

국내 프로배구단은 흥국생명이나 현대캐피탈처럼 금융사가 운영하거나 금융사가 네이밍 스폰서를 하는 곳이 많다. 여자부는 7팀 중 3팀(흥국생명·IBK기업은행·페퍼저축은행)이고, 남자부는 7팀 중 절반이 넘는 5팀(현대캐피탈·우리카드·OK금융그룹·KB손해보험·삼성화재)이다. 14팀 중 가장 역사가 긴 배구단은 한국전력(옛 남선전기)으로 1945년 11월 창단했다. 이어 1969년 1월 대한항공, 1970년 4월 한국도로공사와 9월 GS칼텍스(옛 호남정유), 1971년 8월 흥국생명(옛 태광산업), 1976년 6월 KB손해보험(옛 금성통신), 1977년 1월 현대건설 등 주요 팀들이 이때 창단됐다.

대한배구협회가 발간한 ‘한국배구 100년사(1916~2016)’를 보면 “협회는 이낙선 회장이 1969년 취임하면서 배구 종목의 국제무대 상위 입상 가능성과 홍보 효과를 들어 기업들에 배구팀을 만들도록 독려하고 분위기를 잡아나갔다”고 한다. KGC인삼공사(옛 한국전매공사)는 1988년 4월 창단했다.

초창기 실업배구단은 한국 경제사를 반영하듯 주로 공기업이나 섬유업체가 운영했다. 이낙선 회장이 국세청장을 하면서 1968년 2월 창단한 국세청 여자 배구단(이후 대농·미도파)은 창단 첫 해부터 각종 대회를 휩쓸었다.

선경합섬(이후 SK케미칼) 배구단은 1962년 창단한 제일은행 배구단을 인수해 1969년 창단했다. 1973년에는 동양나이론, 대우실업, 전매청, 한일합섬이 잇따라 배구단을 만들었고 1975년에는 체신부 배구단이 금성통신으로 인수됐다.

현재의 금융사 프로배구단 8곳 중 3곳은 실업팀에서 출발했다가 1990년대 이후 금융사로 간판을 바꿨다. 금성통신 배구단은 1992년 8월 럭키화재로 이관됐고 이후 LIG손해보험을 거쳐 KB손해보험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일방직 배구단을 인수했던 태광산업은 1991년 11월 흥국생명으로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1983년 2월 출범한 현대자동차서비스도 모회사가 인수·합병된 후 2001년 7월 현대캐피탈로 바뀌었다. 반면 현대자동차서비스와 라이벌로서 같은 시기(1983년 3월)에 창단한 고려증권 남자 배구단은 외환위기 사태로 모기업이 부도가 난 후 1998년 2월 해체됐다.

금융사가 직접 창단한 배구단은 5곳으로 삼성화재가 처음이었다. 당시 언론 보도를 보면 대한배구협회가 삼성그룹에 배구단 창단을 계속 권유했다고 한다. 삼성화재는 1995년 11월 창단 후 ‘선수 독식’ ‘몰빵배구’라는 비판에도 20년간 19차례 결승에 오를 정도로 남자부의 절대강자에 올랐다. 2015년부터 제일기획이 배구단을 운영하고 있고 삼성화재는 네이밍 스폰서를 하고 있다.

금융사 배구단은 2005년 2월 V리그가 출범한 후 본격화했다. V리그가 시작한 후 탄생한 구단 4곳 모두 금융사가 운영하고 있다.

삼성화재 창단 후 13년 만인 2008년 7월 우리캐피탈이 신생 구단 창단을 선언했다. 당시 한국배구연맹 제2대 총재로 선임된 이동호 총재는 대우자동차판매 사장이었고 대우자동차판매 자회사가 우리캐피탈이었다. 이후 모기업 우리캐피탈을 전북은행이 인수해 JB우리캐피탈로 사명을 바꿨고, 배구단은 우리금융이 인수했다.

우리캐피탈 배구단을 인수하려 했던 러시앤캐시는 2013년 4월 신생 배구단을 창단했고 2020년 10월부터 OK금융그룹으로 팀명을 바꿨다.

여자부도 2011년 8월 기업은행이, 10년 후인 2021년 4월 페퍼저축은행이 각각 배구단을 창단해 7팀 체제가 됐다.

배구단 운영비는 여자부가 연간 60억~70억원, 남자부는 80억~90억원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국내 스포츠 종목처럼 구단 운영으로 수익을 내기는 어려운 구조이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창립 50주년을 맞아 공기업으로서 2011년 당시 비인기 종목이었던 배구단을 만들었다”며 “본점에서 은행 경비로 직접 배구단을 운영하고 있고 별도 재무제표는 작성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계와 배구계에서는 배구 종목이 지속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고 구단 운영비는 다른 국내 4대 스포츠(야구·축구·농구)보다 적어 가성비 있는 홍보 효과를 누리고 있다는 의견이 많다. 프로야구단은 매년 약 300억원의 운영비가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배구연맹 관계자는 “기업은행과 OK금융그룹 모두 팀을 창단하기 전에 대회 타이틀 스폰서를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면서 “홍보에 도움이 된다는 내부 의사결정에 따라 배구단을 만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막내 구단인 페퍼저축은행은 은행의 홍보 강화 계획과 배구연맹의 신생 구단 니즈(요구)가 맞아떨어진 경우이다. 페퍼저축은행 관계자는 “야구나 농구 경기장에 광고 간판을 설치해 은행 홍보를 하다가 직접 구단을 운영하기로 했다”면서 “마침 연맹이 다른 기업들에 제7구단 창단 제안서를 보내고 있다는 정보를 듣고 직접 의사를 전달해 배구단을 창단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배구의 깔끔한 이미지가 금융사 이미지 제고에 도움이 된다는 의견도 있다. 한 금융사 배구단 관계자는 “배구는 다른 스포츠에 비해 상대팀과 마찰이 적고 선수 부상도 상대 선수와의 갈등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적다”면서 “제조업보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국내 금융사가 야구단이나 축구단보다 적은 비용으로 스포츠단을 운영하면서 깔끔한 이미지를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유희곤 기자 hul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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