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국가들 협력, 출발점은 독일 총리 ‘무릎 사과’
윤 대통령, 일본은 과거사 부정에 반성·사과 않는데 면죄부 줘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4일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하면서 “100년 전 일을 가지고 일본이 무조건 무릎 꿇어야 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 것을 두고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과거사를 지우면서 법적 책임과 반성을 회피해온 일본 입장을 두둔한 발언이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예로 든 ‘유럽 전쟁 당사국 간 협력’은 전범국의 통렬한 반성이라는 토대 위에 세워진 것이라 한·일관계와는 전혀 다르다. 2차 세계대전 전범국인 독일과 피해국들 간의 화해와 협력은 ‘무릎 사과’가 출발점이 됐다. 1970년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는 폴란드 바르샤바를 방문해 유대인 위령탑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무릎 사과를 계기로 1972년 독일과 폴란드는 공동으로 ‘교과서위원회’를 만들어 2016년 공동 역사 교과서를 출간했다. 150년 동안 4차례나 전쟁을 치렀던 독일과 프랑스도 1935년부터 협의를 시작해 2006년 공동 역사 교과서라는 결실을 맺었다.
반면 1982년부터 시작된 일본의 교과서 왜곡은 40년 넘게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말 일본 문부과학성이 검정 통과시킨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서 독도 영유권 주장은 강해지고 강제동원과 관련한 강제성 기술이 약화됐다.
독일은 전쟁범죄의 공소시효를 없애고 ‘무한책임’을 보여주고 있지만, 일본은 1946년 승전국에 의한 재판의 전범들을 사면과 종교적 추모를 통해 대부분 복권시켰다.
최근 행보만 봐도 태도는 극명하게 갈린다.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은 지난 19일(현지시간) 폴란드에서 열린 게토 80년 추모 행사에서 “독일인의 역사적 책임에는 끝이 없다”고 했다. 반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지난 21일 태평양전쟁 A급 전범 14명이 합사된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 야스쿠니신사에 공물을 봉납했다. 독일은 수도 베를린 한복판에 유대인 희생자를 기리는 홀로코스트 기념공원을 세웠지만 일본은 끈질기게 ‘평화의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이번 발언을 통해 역사 우경화를 지속하는 일본에 셀프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2015년 8월 “전쟁에 아무런 관계가 없는 우리의 자녀나 손자 그리고 그 뒤 세대의 아이들에게 사과를 계속할 숙명을 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한 아베 신조 당시 총리의 담화와 같은 역사인식을 담고 있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25일 통화에서 “한번 사과하거나 배상했으면 끝났다는 게 일본 입장인데 윤 대통령의 발언은 이 같은 일본 방식을 모두 수용하겠다는 의미로 읽힌다”고 평가했다.
박은경 기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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