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어린이 패스트트랙

이명희 기자 2023. 4. 25.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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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놀이공원에서 이용객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이 나라 국적을 지닌 자는 누구나 70세가 되는 생일로부터 30일 이내에 반드시 죽어야 한다.”

2012년 출간된 일본 작가 가키야 미우의 소설 <70세 사망법안, 가결>은 2020년 저출생·고령화 사회 부작용으로 연금제도가 붕괴되자 ‘70세 사망법안’이 가결되는 상황을 다룬다. 머잖아 한국 사회도 맞닥뜨릴 수 있는 소설의 화두는 서늘하리만치 현실적이다. 지난해 한국 합계출산율(0.78명)은 세계 최하위를 기록했다.

한국보다 먼저 고령화 사회에 들어선 일본도 저출생 문제를 고심해 왔다. 이달 초 총리 직속의 ‘어린이가정청’을 출범시켰고, 저출생 대책으로 ‘어린이 패스트트랙 제도’를 추진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어린이 동반 가족과 임산부는 박물관·미술관 등에 줄서지 않고 입장시키는 것인데 국가 시설부터 민간 시설로 확대해갈 방침이라고 한다.

얼마 전 국내에서는 ‘패스권’이 도마에 올랐다. 놀이공원에서 운영 중인 패스권은 일반 이용권보다 비싸지만, 소지자들은 대기 없이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패스권은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가 방송에 나와 “돈으로 시간을 사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데 이런 현상들이 정당한가”라고 물으면서 ‘새치기 구매’ 논란에 휩싸였다.

일본 정부의 어린이 패스트트랙 정책은 특단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위기의식에서 나왔다. 한국에서도 여러 저출생 대책이 나오지만, 백약이 무효인 상황인지라 눈길이 간다.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을 만들자면서도 현실은 다르기 때문이다. 육아휴직은 법으로 보장됐지만, 복귀할 땐 여전히 눈치를 살핀다. 육아와 가사노동은 대부분 여성의 몫이다.

오구라 마사노부 일본 저출산대책담당상은 이 제도 도입에 대해 “어디가 개방하기 쉬운지가 아니라, 아이나 가족을 동반한 사람들이 어디에 가고 싶은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유의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유념할 말이다. 지난 22~23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연 ‘저출생 정책 제안’ 토론회에서 청년들은 가장 시급한 문제로 ‘주거 지원’을 꼽았다. 저출생 문제는 이제 정치의 영역이 됐다. 체감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할지가 관건이다. 당장 어린이 패스트트랙 도입은 어떤가. 좋은 건 따라하자.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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