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어린이 패스트트랙
“이 나라 국적을 지닌 자는 누구나 70세가 되는 생일로부터 30일 이내에 반드시 죽어야 한다.”
2012년 출간된 일본 작가 가키야 미우의 소설 <70세 사망법안, 가결>은 2020년 저출생·고령화 사회 부작용으로 연금제도가 붕괴되자 ‘70세 사망법안’이 가결되는 상황을 다룬다. 머잖아 한국 사회도 맞닥뜨릴 수 있는 소설의 화두는 서늘하리만치 현실적이다. 지난해 한국 합계출산율(0.78명)은 세계 최하위를 기록했다.
한국보다 먼저 고령화 사회에 들어선 일본도 저출생 문제를 고심해 왔다. 이달 초 총리 직속의 ‘어린이가정청’을 출범시켰고, 저출생 대책으로 ‘어린이 패스트트랙 제도’를 추진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어린이 동반 가족과 임산부는 박물관·미술관 등에 줄서지 않고 입장시키는 것인데 국가 시설부터 민간 시설로 확대해갈 방침이라고 한다.
얼마 전 국내에서는 ‘패스권’이 도마에 올랐다. 놀이공원에서 운영 중인 패스권은 일반 이용권보다 비싸지만, 소지자들은 대기 없이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패스권은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가 방송에 나와 “돈으로 시간을 사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데 이런 현상들이 정당한가”라고 물으면서 ‘새치기 구매’ 논란에 휩싸였다.
일본 정부의 어린이 패스트트랙 정책은 특단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위기의식에서 나왔다. 한국에서도 여러 저출생 대책이 나오지만, 백약이 무효인 상황인지라 눈길이 간다.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을 만들자면서도 현실은 다르기 때문이다. 육아휴직은 법으로 보장됐지만, 복귀할 땐 여전히 눈치를 살핀다. 육아와 가사노동은 대부분 여성의 몫이다.
오구라 마사노부 일본 저출산대책담당상은 이 제도 도입에 대해 “어디가 개방하기 쉬운지가 아니라, 아이나 가족을 동반한 사람들이 어디에 가고 싶은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유의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유념할 말이다. 지난 22~23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연 ‘저출생 정책 제안’ 토론회에서 청년들은 가장 시급한 문제로 ‘주거 지원’을 꼽았다. 저출생 문제는 이제 정치의 영역이 됐다. 체감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할지가 관건이다. 당장 어린이 패스트트랙 도입은 어떤가. 좋은 건 따라하자.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독] 강혜경 “명태균, 허경영 지지율 올려 이재명 공격 계획”
- “아들이 이제 비자 받아 잘 살아보려 했는데 하루아침에 죽었다”
- 최현욱, 키덜트 소품 자랑하다 ‘전라노출’···빛삭했으나 확산
- 수능문제 속 링크 들어가니 “김건희·윤석열 국정농단 규탄” 메시지가?
- 윤 대통령 ‘외교용 골프’ 해명에 김병주 “8월 이후 7번 갔다”···경호처 “언론 보고 알아
- 이준석 “대통령이 특정 시장 공천해달라, 서울 어떤 구청장 경쟁력 없다 말해”
- “집주인인데 문 좀···” 원룸 침입해 성폭행 시도한 20대 구속
- 뉴진스 “민희진 미복귀 시 전속계약 해지”…어도어 “내용증명 수령, 지혜롭게 해결 최선”
- 이재명 “희생제물 된 아내···미안하다, 사랑한다”
- ‘거제 교제폭력 사망’ 가해자 징역 12년…유족 “감옥 갔다 와도 30대, 우리 딸은 세상에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