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수 칼럼] 윤석열의 1년, 막 던지다 길 잃었다

이기수 기자 2023. 4. 25.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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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8일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에서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정권 심판 대 거야 심판.’ 지난 10일자 조간신문 1면에 꽤 많이 등장한 제목이다. 내년 4·10 총선의 여야 맞구호이고, 오늘의 국회를 압축한 여덟 글자다. 때마침, 21일 한국갤럽 조사에서 국민의힘·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같이 32%를 찍었다. 한 주 전 36%로 솟은 민주당이 다시 빠졌다. 여권이 외교·막말로 죽 쑤는 중에 거야엔 돈봉투 불씨가 지펴졌다. 여론의 진폭은 수도권·중도층에서 크다. 윤석열 대통령 국정지지율도 한 달째 27~31%에 갇혀 있는 여권에는 빨간불, 제1야당엔 노란불이 켜진 걸 게다. 시소 타는 민심은 어느 쪽에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이기수 편집인·논설주간

올해 첫날, 대통령은 세 화두를 던졌다. 노동·연금·교육이다. 전국선거도 없는 해, ‘3대 개혁’으로 국정을 굴리겠다는 신년사였다. 그로부터는 용두사미다. 노동개혁은 주 69시간제 돌부리에 걸렸다. 대통령이 각별히 챙긴 MZ노조까지 “과로사회 개악안”이라 맞서자 추동력이 뚝 끊겼다. 연금개혁은 민간자문위가 보험료율·소득대체율 이견만 적시한 ‘맹탕 보고서’를 내고 표류 중이다. 회심의 교육개혁 카드라던 교육전문대학원은 발표 넉 달 만에 접었다. 세 개혁뿐인가. 부자감세하다 나라 곳간이 비고, 수출은 7개월째 뒷걸음치니, 환율이 춤춘다. 대통령은 ‘일본에 과거사 사과를 강요 말자’고 또 염장 지르고, 대통령실은 미국 도청 문건에 “위조·악의가 없다”고 지레 굽신거린다. 중·러와 갈라선 격랑은 보는 대로다. 내우(內憂)가 깊을지, 외환(外患)이 클지 막상막하일 정부다.

여당도 참 오래 헤맨다. 윤심이 세운 대표는 ‘윤바라기’로 살고, 사고뭉치 최고위는 바람 잘 날이 없다. 4·3과 5·18을 폄훼한 김재원, 김구 선생을 저격한 태영호, ‘밥 한 공기 다 먹자’ 한 조수진은 역풍을 맞고, 강원·충북지사의 산불 속 골프·음주는 뭇매를 맞았다. ‘가뭄에 물 보내자’ 한 민생특위는 봄비 내린 후 개점휴업해왔다. 3대 개혁은 늦춰지고, 쌍둥이(재정·무역) 적자는 커지고, 외교는 억장 무너진 1년. 당·정·대는 설익고 고집하고 오판한 것까지 막 던지다 길을 잃었다.

국무회의 풍경은 여럿이다. 문재인 정부에선 회의 후 대통령을 뒤따라가 요긴한 말을 전한 ‘꼬리밟기’가 있었다. 저마다 뭔가 끄적거린 박근혜 정부에선 ‘적자생존’이라 했고, 지금은 ‘듣자생존’이란 말이 돈다. 1시간 회의서 혼자 59분 말했다는 대통령에게 손들고 직언할 이가 있을까. 관가에선 대통령실 보고를 늦추려 한다는 말도 들린다. 지지율이 추락한 용산 심기가 좋을 리 없고, 그 땜에 정책이 뒤틀릴까봐서다. 여당 눈치보다 전기요금 결정이 함흥차사 된 걸 지켜본 여파일 테다. 정치에서의 하루하루는 관행이 된다. 뒤통수 맞은 어음 몇개 받고 끝낸 일제 강제동원 협상을 대통령은 ‘결단’이라 했다. 독단이다. 눈엣가시 정치인을 다 내쳐 여당의 이견과 역동성을 누른 것도 그다.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 집권당 1호 당원을 자처한 ‘다변 대통령’이 책임질 몫만 시나브로 부풀고 있다.

여야는 지금 웃는다. 서로를 믿는다고…. 총선엔 경제와 민생, 윤석열표 3대 개혁, 한반도 평화와 4강 외교, 검찰국가가 다 오를 것이다. 그즈음 대통령 지지율은 몇%일까. 이재명은 어느 위치에서 총선을 뛸까. 제3지대는 존재감이 있을까. 그 승부의 추는 민주당의 이재명 대표 사법리스크와 돈봉투 수사, 국회 패스트트랙을 타면 연말연시 가동될 ‘50억 클럽·김건희 여사 쌍특검’에서 먼저 분기점을 맞는다. 여야는 부산 EXPO 유치, 민생 추경, 현역 의원 공천율, 강성 팬덤, 윤석열 정부 1년 통계도 주목할 게다. 서로를 악마화하면, 총선도 차악·차차악 경쟁이 될 수 있다. 하나, 야당 비판은 집권당 득점이 되지 않는다. 야당도 반사이익만으론 이길 수 없다. 분열하는 쪽이 지고, 혁신·감동이 있는 쪽이 이긴다. 그 키를 여권의 윤석열, 야권의 이재명이 먼저 움켜쥐었다.

“검사가 가장 못하는 게 뭘까요?” 검찰 고위직 출신 모 변호사는 이렇게 묻고, “경청”이라 했다. 쪽지 보고만 익숙한 26년 검사의 DNA가 대통령 몸에 뱄을 거라고 봤다. 어찌보면 그도 예외다. 요 근래 저잣거리 밥상에선 대통령 얘길 하는 이를 만나기 힘들다. 박한 지지율에서 보듯 논외(論外)가 됐다는 뜻이다. 그 민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부자·보수 편먹고, 대통령이 외치는 ‘자유’는 때로 공허하다. 올해 395개 상품·서비스 가격이 올랐고, 실질소득은 줄고, 금융기관 대출이 힘든 자영업자가 173만명에 달한다. 1년 전도 지금도 세상의 갈증은 민생이다. 민주주의 위기는 자유가 아닌 삶의 위기에서 시작된다.

이기수 편집인·논설주간 k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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