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뉴스·CNN 간판 앵커 퇴출... "음모론 전파·성차별 막말로 쫓겨나"
극우 발언 쏟아내도 건재... "시청률 지상주의 탓"
'7.8억 달러 배상' 소송 결과, 해고에 결정타 작용
'여성 전성기' 발언 논란에 CNN 돈 레몬도 퇴출
미국 폭스뉴스의 간판 앵커 터커 칼슨이 24일(현지시간) 회사로부터 퇴출 조치를 당했다. 같은 날 미 CNN방송도 자사의 스타 앵커 돈 레몬과의 ‘동행’을 끝낸다고 발표했다. 양사 모두 공식적으로는 ‘계약기간 만료’를 이유로 들었으나, 사실상 ‘해고’로 봐야 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뉴스 보도 중 음모론을 부추기거나(칼슨), 성차별 발언(레몬)을 거침없이 내놓은 데 대한 책임을 물었다는 얘기다.
'극우 앵커' 칼슨 해고... "대선 음모론 소송 거액 배상이 결정타"
터커 칼슨은 미국의 대표적 보수 매체인 폭스뉴스의 ‘아이콘’이었다. CNN과 MSNBC방송 패널을 거쳐 2016년 말부터 폭스뉴스에서 황금시간대(오후 7시)에 본인 이름을 내건 뉴스 ‘터커 칼슨 투나잇’을 진행했다. 방송에서 그는 극우에 가까운 성향을 보였다. “이민자들이 미국을 더 지저분하게 만든다” “여성의 피임과 임신중지가 출산율을 감소시키고 남성성을 위협한다”등 문제적 발언을 쏟아냈다. 반(反)소수자 정책을 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든든한 아군이기도 했다.
그런데 폭스뉴스는 이날 돌연 칼슨과의 결별을 선언했다. 사전 통보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 등은 ‘2020년 미국 대선 개표가 조작됐다’는 음모론을 적극 보도한 폭스뉴스를 상대로 투·개표기 업체 ‘도미니언’이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 결과(7억8,750만 달러 배상 합의)가 결정적 사유가 됐다고 분석했다.
실제 칼슨은 음모론 확산의 ‘스피커’ 역할을 했다. 회당 평균 332만 명의 시청자를 TV 앞에 불러모은 그는 뉴스에서 “대선 당시 28개주(州)에 투·개표기를 공급한 도미니언이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 당선을 위해 소프트웨어를 조작했다”는 트럼프 전 대통령 진영의 의혹 제기를 여과 없이, 그리고 반복해서 인용했다. 폭스뉴스에 막대한 손해를 입힌 ‘주범’으로 지목된 셈이다.
"시청률만 잘 나오면 돼" 방송국 병폐는 그대로
하지만 때늦은 ‘꼬리 자르기’라는 지적도 나온다. NYT가 2016~2021년 ‘터커 칼슨 투나잇’ 에피소드 1,150개를 분석한 결과, 칼슨은 예전부터 보수층 입맛에 맞는 음모론을 정설처럼 설파했다. 가난한 백인 남성을 겨냥해 “민주당이 이민자·유색인종 정책과 페미니즘을 내세워 여러분을 차별하려 한다”고 말한 게 대표적이다.
특히 2021년엔 “정부가 이민자들을 수입해 백인보다 ‘순순한 유권자’를 확보하려 한다”는 극우의 ‘인구 대체론’까지 보도했다. 사임 요구가 빗발쳤으나 건재했다. 시청률 때문이었다. 칼슨의 뉴스 프로그램은 지난해 25~54세 케이블뉴스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이번 해고 조치가 폭스뉴스의 자정 노력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도미니언과의 소송 과정에서 폭스뉴스 설립자인 루퍼트 머독은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더 극우적인 매체로 이탈할까 우려해 칼슨이 계속 음모론을 보도하도록 그를 부추긴 정황이 드러났다. WP는 “(칼슨이) 재판 중 경영진의 왜곡 보도 지시를 비판한 게 밉보여 잘린 것”이라고 전했다. NYT는 “칼슨 해고에 트럼프 전 대통령 측과 지지자들도 충격을 받았다. ‘터커 뉴스 네트워크’ 출범을 바라는 목소리도 나온다”고 보도했다.
CNN 앵커 "여성 전성기, 40대까지"... 선 넘은 공화당 저격
공교롭게도 CNN 앵커 돈 레몬도 이날 회사에서 쫓겨났다. 8년간 황금시간대 프로그램을 진행해 온 레몬은 ‘반트럼프’ 성향을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는데, 공화당 인사와 인터뷰를 하던 중 성차별 발언을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문제의 발언은 지난 2월 공화당 대선주자 중 한 명인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와의 인터뷰에서 나왔다. 헤일리 전 대사가 ‘75세 이상 정치인의 정신 능력 검사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하자, 레몬은 “여성은 20~30대, 혹은 40대가 전성기”라고 맞받았다. 공동 진행자의 만류에도 “사실을 말했을 뿐”이라며 버텼고, 뒤늦게 사과했으나 때는 늦었다. 뉴욕포스트는 레몬이 공화당의 또 다른 대선 도전자 비벡 라마스와미와 흑인 역사 문제 토론을 하던 중 “너희들이 얘기하면 생각을 도통 할 수 없다”면서 짜증을 낸 점도 퇴출 결정에 영향을 줬다고 전했다.
이유진 기자 iyz@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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