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경매 유예됐다지만" 인천 미추홀 '폭풍전야'

안다솜 2023. 4. 25.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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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의동 피해아파트 출입구엔 '경매반대' 문구…공과금 납부 촉구 안내문도
피해자들 다녀간 관할구청은 '고요'…등기부등본 발급 위해 하루 2~3명 방문

[아이뉴스24 안다솜 기자] "예전에 여기 뒤에 아파트 (전세사기로) 난리나자마자 등기부등본 발급하려고 하루에 한 열댓명씩 줄 섰었죠. 지금은 하루에 두세 명 정도 오는데 오늘은 아직 아무도 없네요. 아마 부평 쪽 피해지원센터로 가시는 것 같아요."

25일 오전 찾아간 인천 전세사기 피해지역의 민원을 담당하는 미추홀구청 주변은 고요했다. 민원인 2~3명이 창구에서 직원과 대화하고 있었고 한 명은 은행 ATM기를 이용하고 있었다.

전세사기로 수천명의 세입자들이 집중적으로 피해를 입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는 피해자들의 한숨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사진은 미추홀구청 외관. [사진=안다솜 기자]

해당 구청엔 전세사기 피해 발생 직후 하루 열명을 웃도는 피해자들이 등기부등본 발급을 위해 찾아와 구제 방법, 상담 등을 문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구청 관계자는 "등기부등본을 떼보고서 압류 등 이런 정보를 보시고 도움 요청하시는 분들이 있었다"며 "변호사 상담도 안내하고 있는데 안타깝다. 피해자분들에게 그게 전부니까. 어떡하냐고 막 물어보셔도 제가 해결해줄 수 있는 게 없어 피해지원센터 등으로 안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떤 분은 앉은 자리에서 계산해보시더니 (선순위에 있는) 은행 등이 다 가져가면 (본인은) 수천만원 이상 피해를 본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입주민회 "경매 시 내부박살" 경고

미추홀구청 근처에 위치한 전세사기 피해 아파트는 적막과 함께 빨간색의 현수막, 호소문 등이 가득했다. 아파트 출입구와 주차장 등 곳곳엔 "경매 시 내부박살"이라는 문구를 담은 포스터가 곳곳에 붙어있었다.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아파트 출입구에 경매반대 호소문이 붙어있다. [사진=안다솜 기자]

해당 아파트 입주민회는 "전세대가 건축왕이라 불리는 조직적 깡통 전세사기 피해 아파트로 사회적 재난현장"이라며 "경매꾼 낙찰시 집 내부를 박살내겠다는 내용을 간과하면 안 된다. 쉬운 명도를 기대하지 말라. 우린 생존이다"는 내용의 호소문을 아파트 입구에 붙여놨다.

입주민의 이 같은 조치에도 경매는 진행됐고 일부 세대는 낙찰됐다. 지난 21일 기준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회(대책위)가 자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 가구는 약 3천79가구로 이 중 67%가 넘는 2천83가구가 경매대상 가구로 파악됐다. 대책위에 가입된 1천787가구 중 106가구는 매각이 완료됐고 261가구는 매각이 진행되고 있으며 경매기일이 정해지지 않은 가구는 672가구, 공매대상은 27가구로 확인됐다.

법원 경매로 넘어간 피해자들의 주택은 감정가의 절반 수준으로 낙찰된 것으로 조사됐다. 법원경매정보업체 지지옥션 통계를 보면 최근 미추홀구 숭의동 일대 주거시설 경매 낙찰가율이 올해 들어 50∼60% 수준에 그쳤다. 올해 2월 낙찰된 미추홀구의 다른 피해 아파트는 감정가의 61.4% 수준의 가격으로 낙찰됐다.

김병렬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은 이날 "경매가 유예돼 당장은 안심하시는 분들은 꽤 있다"면서도 "작년부터 해달라고 했는데 요청을 그렇게 했는데 청년 3명이 죽고 나서야 한 게 안타깝다. 대책위 출범 전부터 도와달라고 했는데 듣지도 않더니 이런 사태가 되고 나서야 도와준다"고 말했다.

다만 개인이나 법인이 넘긴 경매물건의 경우, 개입할 근거가 없어 사각지대가 발생한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피해자 두 번 울리는 '관리 부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세사기 피해아파트의 일부 관리업체는 건축왕이라고 불린 남 씨(61)와 얽혀있어 관리업무를 소홀히 한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아파트 엘리베이터와 게시판에는 공과금 미납과 관련한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아파트 게시판에 관리비 납부를 촉구하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사진=안다솜 기자]

대책위는 전세사기 가해자인 임대인이 구속되거나 사망해서 또는 '바지사장'이어서 주택 관리나 수선이 어려운 상황과 관리업체가 임대인으로부터 관리비용을 받지 못해 관리를 포기한 경우 등으로 피해주택 관리문제도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김 부위원장은 "관리비를 꾸준히 냈는데 (지금까지) 아무런 수리를 안해줬다"며 "어느날 갑자기 수도를 끊겠다는 등의 고지서가 붙어서 수도사업부랑 한국전력에 연락해서 미납분이 얼마냐고 봤더니 3개월이 밀려있었다. 관리소에 연락해서 왜 이렇게 됐냐고 했더니 임차인한텐 고지할 의무가 없다고만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관리소가 남 씨와 다 한통속이었던 것"이라며 "(피해를 본) 임차인이 더 악에 받치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한편, 정부는 전세사기 피해지원센터를 운영하는 등 피해자들을 돕겠다고 나섰지만 실질적인 도움은 없었다는 현장의 볼멘소리가 그치지 않고 있다.

김 부위원장은 "다녀오신 피해 입주민 분들이 말하길 피해자인 우리보다 법률을 모른다. 거긴 매뉴얼 대로만 얘기한다"며 "그러다 보니 정부 대책에 대해서 물어봐도 상부에서 지시받은 게 없다, 연락온 게 없다고만 했다"고 전했다.

이어 "긴급지원 같은 경우도 피해확인서를 받아야 신청할 수 있다. 그런데 낙찰이 안 됐으니 피해가 아니라고 하는 부분도 문제"라며 "정부 대책이 느리다. 확실하게 뭔가 (대책을) 제시할 거면 보여주기식보다 대책위, 피해자들과 소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천=안다솜 기자(cotto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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