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민들이 전한 수단 탈출기…"집 앞서 교전" "죽었다 살아난 느낌"
(성남·서울=뉴스1) 박응진 기자 국방부 공동취재단 = 최근 군벌 간 무력충돌로 다수 사상자가 발생한 북아프리카 수단에서 대피·철수한 우리 교민들이 25일 긴박했던 '수단 탈출기'를 전했다.
교민 김현욱씨는 이날 오후 공군 다목적 공중급유수송기 KC-330을 타고 경기도 성남 소재 서울공항을 통해 입국한 뒤 취재진과 만나 수단의 자택 앞에서 정부군(SAF)과 반군인 신속지원군(RSF) 간 교전이 벌어져 탈출을 결심하고 우리 대사관에 구출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수단 현지에서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과 함께 쥐·해충 퇴치 사업을 해왔다고 한다.
김씨는 "대사관에서 차량을 보내줬다"며 "수단 군인들이 '어떤 이유로 이 지대로 지나가냐'고 물었을 때 현지 직원을 통해 얘기하고 중간에 잠깐 내려서 소지품 검사도 당하는 일도 있었다. 중간 중간 폭탄 소리도 많이 들렸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주수단 우리 대사관은 운영 중인 방탄차량을 1대를 이번 교민 구출에 투입했다고 한다.
김씨는 "집에 있을 땐 전기가 끊겨 냉장고에 있던 것들을 우선 소모했다"며 "대사관도 식량·식수가 여유로운 상황 아니어서 최대한 많이 대사관으로 옮겨서 (교민들과) 나눠먹고 지냈다"고 전하기도 했다.
유엔 기구에서 근무한다는 김지은씨는 "내가 있던 지역은 밤에 계속 전투기가 날아다니고 총격 소리도 많이 들리는 격전지였다"며 "6일 정도 집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지냈다. 나중에 (집 밖으로) 나왔을 땐 일반인들도 길거리에서 무기를 들고 다니는 심각한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수단 내 제약공장에서 재무 업무를 담당했다는 반용우씨는 고국 땅을 다시 밟은 소감을 묻자 "죽었다 살아난 느낌"이라며 "(귀국 때 우리 군 수송기를 보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답했다. 반씨는 우리 대사관의 구출 활동에 대해선 "총알이 막 날아다니는 데 목숨을 걸고 왔다. 정말 고맙다"고 거듭 사의를 표시했다.
이와 관련 남궁환 주수단대사는 외교관이 차량에 동승해야 이동이 비교적 원활했기 때문에 교민 대피·철수를 위해 자신과 주은혜 참사관이 현지 교민들을 일일이 찾아다녔다고 설명했다.
남궁 대사는 "교민들이 사는 곳이 서로 떨어져 있었고,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경우도 상황이 녹록지 않아 우회해 가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그러나 그들을 다 모아야만 철수할 수 있었다. 끝까지 교민들을 모은다는 일념이었다"고 전했다.
남궁 대사 또한 다른 교민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군 수송기을 보고는 '이제 살았구나'라는 안도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교민 28명의 무사귀환을 기원해준 우리 국민들께도 감사 말씀을 드린다"며 "10여일 넘는 기간 나와 함께 해준 직원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수단에선 지난 15일(현지시간)을 기점으로 정부군과 반군의 무력충돌이 격화되면서 현재까지 최소 430여명이 숨지고 3500~3700여명이 다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에 우리 정부는 21일부터 공군 수송기 등을 투입해 우리 교민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철수시키기 위한 '프라미스'(Promise·약속) 작전을 진행했다. 그 결과, 우리 공관원을 포함한 수단 내 한인 29명 가운데 잔류 의사를 밝힌 현지 국적 취득자 1명을 제외한 28명이 이날 KC-330 수송기를 타고 무사히 귀국할 수 있었다.
주 참사관은 이날 귀국에 앞서 현지에서 미국·아랍에미리트(UAE) 등의 재외공관과 협조해 우리 교민 철수·대피방안을 모색했다고 한다.
주 참사관은 "(수단 내 한인사회는) 굉장히 작기 때문에 사실 대사관이 교민들에게 일방적으로 도움을 줬다고 말할 수 없다. 대사관도 교민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이런 가운데 이번 '프라미스' 작전을 수행한 KC-330 조종사 조주영 공군 제5공중기동비행단 제261공중급유비행대대장(중령)은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군인으로서 수단 교민들을 안전한 대한민국으로 모시는 데 일조할 수 있어서 영광"이란 소감을 밝혔다.
서울공항에서 진행된 교민 환영식에 참석한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프라미스 작전은 그 단어 의미에서도 느낄 수 있겠지만, 우리 정부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겠다는 약속을 지켰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며 "또 이런 위기가 있어선 안 되겠으나, 그런 상황이 또 다시 온다고 해도 우리 군은 항상 투입될 준비가 완벽히 갖춰져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pej86@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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