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가디슈 탈출보다 험난"... 1170㎞ 아비규환 뚫고 '약속' 지켜 고국으로

유대근 2023. 4. 2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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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동 작전 빛난 수단 교민 탈출극 
대사관 식량 떨어지고, 물도 끊겨 
방탄차 타고 흩어진 교민 찾아나서  
칼둔 UAE 청장 "당신 국민이 우리 국민"
수단을 탈출한 우리 교민 어린이가 25일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 도착해 인형을 안은 채 웃고 있다. 성남=사진공동취재단

봄비가 추적추적 내린 25일 성남 서울공항 활주로. 육중한 몸집의 공군 다목적 급유수송기(KC-330)가 미끄러지듯 내려앉았다. 전쟁터로 변한 아프리카 수단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온 교민 28명이 하나둘 내렸다. 51시간 동안 땅과 하늘로 9,000여㎞를 이동해 고국 땅을 밟은 저마다의 얼굴에는 피로와 안도감이 뒤섞여 묻어났다. 구출작전 '프라미스'(Promise·약속)는 그렇게 성공했다. 정부 관계자는 "최고의 협동작전 덕에 최악의 상황을 뚫어냈다"며 기뻐했다.


우리 군 "육해공군 모두 투입된 최초 작전"

"모가디슈 때보다 상황이 어려웠다. 최고 난이도였다."
외교부 관계자

외교당국 관계자는 "(최악의 조건이 결합된) 종합선물세트 같은 상황"이었다고 현지 상황을 설명했다. 1991년 1월 내전 중이던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서 남북 대사관 직원들이 탈출할 때보다 훨씬 열악했다는 것이다.

작전 당일 뿔뿔이 흩어져 있던 교민과 공관원 28명이 수도 하르툼의 대사관저로 집결하는 것부터가 만만치 않았다. 정부군과 신속지원군(RSF)의 교전으로 4,000명가량 죽거나 다친 상황. 대사관의 비상식량은 5일 치 컵라면이 전부였고 수도까지 끊겼다.

국가안보실, 외교부, 국방부 등으로 꾸려진 비상대응 태스크포스(TF)는 이슬람 최대 명절인 '이드 알피트르'를 계기로 총성이 잦아든 23일을 '디데이'로 정했다. 하지만 휴일을 맞아 장을 보러 간 대사관 직원이 시장에 고립되는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이에 남궁환 수단 주재 대사가 직접 나섰다. 남궁 대사는 방탄차를 타고 교민과 직원을 데리러 갔다. 대사관에 모인 이들은 김밥을 싸며 탈출 채비를 마쳤다. 23일 오전(현지시간) 공관원과 교민, 도움을 요청한 일본인 5명과 고양이 2마리, 강아지 1마리가 버스 6대에 나눠 타고 동트는 틈을 타 대사관을 빠져나갔다.

아비규환의 도시를 뚫고 다음 집결지인 포트 수단으로 이동하는 것도 문제였다. 두 도시 사이의 거리는 1,174㎞. 달리는 차로 언제 총탄이 날아들지 알 수 없었다. 이때 아랍에미리트(UAE)가 큰 도움이 됐다. 지역 사정에 밝은 UAE는 자신들이 파악한 안전한 경로를 따라 우리 버스를 호송했다. 곳곳에서 설치된 검문소에서 무장 군인들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차안을 들여다봤지만, 다행히 길을 막지는 않았다.

24일 오후, 버스가 포트 수단 국제공항에 진입했다. 미리 대기하던 우리 군이 맞이했다. 교민들은 공군 수송기 C-130에 올라탔고, 홍해 건너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KC-330으로 옮겨 탄 뒤 한국으로 떠날 수 있었다. 현지에 급파된 '특전사 중의 특전사' 707 대테러특수임무대와 공군 최정예 요원인 공정통제사가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해상 대피 가능성도 열어두고 청해부대 구축함을 수단 인근으로 이동시켰다. 우리 군 관계자는 "육해공군 합동 전력이 모두 투입된 최초의 작전"이라고 말했다.


튀르키예 "대지진 때 도와준 한국…이번엔 우리 차례"

프라미스 작전에서는 '협업의 힘'이 빛났다. 가장 큰 힘이 돼준 건 UAE였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압둘라 빈 자이드 알 나흐야 외교·국제협력부 장관, 칼둔 칼리파 알 무바라크 아부다비 행정청장 등과 긴밀히 소통했다. 특히 '실세'로 알려진 칼둔 청장은 박 장관에게 "당신의 국민은 우리 국민이다"(Your people are our people)라며 뭐든 돕겠다는 뜻을 전했다고 한다. 대지진 당시 우리의 도움을 받은 튀르키예도 "이번에는 우리가 도울 차례"라며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외교당국 관계자는 "위기상황이 되면 의견이 갈라지기 마련인데 우리 교민들이 정부를 믿고 끝까지 따라줬다"며 고마워했다.

수단을 탈출한 우리 교민이 25일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 도착해 환영 인사를 받으며 활짝 웃고 있다. 성남=사진공동취재단

서울공항에 무사히 도착한 50대 교민은 "살던 집 주변에 총알과 포탄이 쏟아지는 상황이 벌어지니 죽다 살아난 기분"며 안도했다. 30대 남성은 "이동 중 폭탄소리가 들리고, 다른 나라 버스가 습격당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정부의 도움으로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었다"면서 "수단에 다시 평화가 찾아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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