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근의 낮은 목소리] 내 반제품 인생이 품은 질문들

한겨레 2023. 4. 25.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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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근의 낮은 목소리]지난 토요일 또 동네 남정네들이 들이닥쳤다. 나는 동네 책방지기를 하러, 처는 서울 약속으로 집을 비웠다. 저녁에 돌아와 보니 마당에 부려진 모래더미 1.8톤과 돌무더기들이 정돈된 채 힘든 일들이 얼추 끝나 있었다. 판석 까는 일만 남았다. 날로 먹은 셈이다. 남의 집 일을 해주고 뭐가 그리 즐거운지 열댓명이 우리 마당에서 막걸리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일러스트레이션 노병옥

조형근 | 사회학자

‘인생은 미완성’이라는 노래가 있다. 이렇게 시작한다. “인생은 미완성. 쓰다가 마는 편지. 그래도 우리는 곱게 써가야 해. (…) 사람아 사람아, 우린 모두 타향인걸. 외로운 가슴끼리 사슴처럼 기대고 살자.” 친근한 멜로디에 공감 가는 가사여서인지 오래 사랑받는 노래가 됐다. 요즘 내 생활이 딱 이 노랫말 같다. 완성되는 것 하나 없이 늘 어수선한데, 서로 기대는 덕분에 산다.

긴 아파트 생활을 끝내고 지난 2월 말,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왔다. 그동안 이웃살이를 해온 익숙한 동네다. 집은 작고 마당이 넓다. 집이 마당에 딸렸다. 단독주택에선 일이 끝이 없다며 이웃들이 누차 경고했다. 글줄이나 읽었지 몸 쓸 줄 모르는 나에 대한 걱정이었다. 어떻게 되겠지 하며 일을 벌였다. 살아보니 일이 끝나기는커녕 할수록 늘어난다. 역시 먼저 살아본 선배들 말이 맞다. ‘인생은 미완성’ 같은 멋진 말은 못 되고, ‘영원한 반제품 인생’ 같다. 단독주택의 로망을 갖고 있다면 참고하시라.

힘들어서 10년은 늙는다는 집짓기는 외려 수월했다. 건축업자 겸 현장소장이 바로 앞집 사는 이웃이다. 보아온 성품대로 오만 걱정을 사서 하며 건축주보다 더 신경 써서 집을 지었다. 작년 여름 준공 후 아직 하자가 없다. 장마에 비 한 방울 안 새고, 북풍한설에 따뜻했다. 하자 생기면 한밤중에라도 달려가 깨우겠다고 놀려대면 “아이고, 얼른 이사 가야지” 하며 툴툴대는 품이 유쾌하다.

집짓기는 쉬웠지만 가구 제작이나 마당 가꾸기 같은 일들이 어렵고 오래 걸린다. 집이 작으니 가구가 마땅찮다. 다행히 취미 목수인 옆집 이웃이 나섰다. 안성맞춤으로 책장, 탁자, 시디(CD)장, 주방 선반, 음향 장비, 마당의 그늘쉼터, 데크, 창고 등을 만들어주었다. 큰 소파를 대신하는 벤치 겸 침상 겸 엘피(LP)장이 압권이다. 떼고 붙이면 용도가 바뀌는 세상에 하나뿐인 가구다. 여러 이웃이 ‘시다’를 자처하며 돕는다. 마음만은 장인이라 무척 꼼꼼한데 작업 속도가 한없이 느리다. 덕분에 집이 늘 공사판이다. “끝내기 전에 죽겠다”며 서로 웃는다.

세계 유일, 벤치, 침상, 엘피장으로 변신하는 다목적 가구를 만드느라 어수선한 집안. 조형근

2주 전부터는 봄맞이 마당 일이 시작됐다. 텃밭에 진심인 처가 한동안 궁리하더니 ‘틀텃밭’을 만든다고 선언했다. 쿠바의 도시농업에서 유래했다는데 토양과 비료의 유실을 막고 잡초 예방에도 좋단다. 보기 좋은 건 덤이다. 휴일에 동네 장정 여럿이 출동해서 나무틀 열한개를 짜고, 땅을 골라 텃밭을 만들었다. 틀 하나씩 분양받은 이웃 중에는 여성이 많다. 콩, 배추, 고추, 가지, 감자, 루콜라, 스피어민트, 바질, 캐머마일(카밀러) 등 여러 작물이 자라고 있다. 대문도 담도 없으니 우리가 없어도 수시로 드나들며 작물도 돌보고 함께 쉬기도 한다. 현관 비밀번호를 아는 이도 적잖아서 필요한 게 있으면 집에도 드나든다. 도둑 걱정이 없다.

며칠 전부터는 틀텃밭 사이로 돌과 판석을 깔아 길과 쉼터를 만드는 중이다. 이웃과 둘이서 쉬엄쉬엄할 요량이었는데 지난 토요일 또 동네 남정네들이 들이닥쳤다. 나는 동네 책방지기를 하러, 처는 서울 약속으로 집을 비웠다. 저녁에 돌아와 보니 마당에 부려진 모래더미 1.8톤과 돌무더기들이 정돈된 채 힘든 일들이 얼추 끝나 있었다. 판석 까는 일만 남았다. 날로 먹은 셈이다. 남의 집 일을 해주고 뭐가 그리 즐거운지 열댓명이 우리 마당에서 막걸리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틀텃밭 사이로 돌을 깔고 빈 곳에 판석을 깔아 얼추 모양이 완성돼 가는 중이다. 조형근

나와 처가 일을 벌이면 이렇게 이웃이 수습해준다. 완성되지 않는 반제품 인생이지만, 나머지 절반을 채워주는 이들이 있다. 절반과 절반이 합쳐져 완성된다거나 충일감을 얻는 것 같지는 않다. 무언가 완성되기도 전에 꼭 새로운 일이 시작되는 탓이다. 그중 상당수는 이웃들의 ‘말참견’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늘 어수선하다. 몸도 마음도 게으른 내가 이 뒤숭숭한 반제품 인생을 그런대로 즐기는 게 신기하다. 따지고 보면 우리 대부분의 삶도 반제품 인생이다.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할 수는 없다. 나머지 절반을 채워주는 건 대개 돈이다. 돈이 풍족하면 천국이다. 끝나지 않는 집안일도 돈이면 간단하다. 돈이 없으면 지옥이다. 그 욕망과 공포에 돈을 좇는다.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동력이다. 나도 그 천국과 지옥 사이에서 살아왔다.

이웃끼리 기대고 사는 세상 바깥에, 돈의 법칙이 지배하는 세계가 있다. 지난주 목요일에 출연한 라디오 시사 방송 주제는 전세사기였다. 방송 준비 내내 마음이 울적했다. 젊은이들이 전재산 몇천만원을 날리고 목숨을 끊었다. 신혼집 전세금을 못 받고 나와 몇년간 마음 졸이던 시절이 기억났다. 그나마 나는 선순위 채권자였다. 후순위로 밀린 이들의 마음을 떠올리면 아득해진다.

금요일에는 텃밭 사이에 깔 돌과 모래가 트럭으로 왔고, 지게차를 불러서 내렸다. 토요일 페이스북에 중대재해 발생을 알리는 포스팅이 떴다. 단독주택 공사 현장에서 화물차 운전기사가 지게차를 쓰지 않고 철근을 직접 내리다 깔려 사망했다는 소식이다. 내 경우엔 앞집 소장이 사람이 내릴 수 있는 무게가 아니라며 돈 주고 지게차를 부르라고 알려줬다. 도대체 왜 기사가 직접 내려야 했는지 묻게 된다. 돈의 법칙이 만들어낸 (한국식) 자본주의의 민낯들이다.

작년 가을, 이웃들이 마당에 그늘쉼터를 만들고 있다. 콘크리트 기초에 쇠기둥을 박아 매우 튼튼하다. 조형근

내가 이웃과 함께 재미나게 만들어가는 반제품 인생의 세계와 전세금을 날린 이들, 산재로 쓰러져가는 노동자들의 세계는 얼마나 가깝고 멀까? 사실은 그리 멀지 않다. 큰 걱정 없는 중산층 같아 보이는 내 이웃의 세계도 가까이서 보면 울퉁불퉁하다. 파산한 사람, 실직한 사람, 몸 아픈 이, 마음 아픈 이가 적지 않다. 작은 동네라고 해서 세상의 모순과 불평등이 비껴갈 리 없다. 이웃끼리 기댄들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는다. 우리 동네 같은 곳이 늘어나는 것이 해결책도 아니다. 거시 세계의 모순은 미시 세계에 고스란히 투영되지만, 미시 세계의 노력으로 거시 세계의 문제를 고칠 수는 없다. 자본주의는 엄연하고 강고하다. 그렇다면 이 작은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자문하게 된다.

요즘 우리 마당에 매일같이 오는 일꾼은 깊고 위태로운 삶의 골짜기를 오래도록 건너고 있는 동네 후배다. 마음의 병을 고치려 애쓰는 중이다. 배달 일을 하다가도 종종 마당에 와서 일하고 간다. 내가 말로 주지 못하는 무언가를 마당 위 노동에서 스스로 얻어 가는 것 같다. 동네 사회학자를 자처하면서도 나는 아직 이웃공동체가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어떻게 만나고 갈라지는지 모르겠다. 내 글에 “우리 잘살고 있어요”라는 자족 이상의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다만 이렇게 절반의 고민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다. 나머지 절반은 마당의 몸 노동에 맡겨보자. 후배가 우리 마당에서 가져가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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