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냉전 촉진자’가 된 한국의 미래
[세상읽기]
[세상읽기] 신진욱 |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대통령의 방미 일정이 진행 중이다. 국가 지도자가 해외순방을 떠났는데 국민은 불안하기만 하다. 취임 뒤 줄곧 무능과 무책임을 비판받아온 대통령이 최근 외교에 전력을 다하면서 많은 국가적 문제를 연이어 촉발해왔기 때문이다. 지금 전광석화처럼 급속하고 독단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일들이 한국 사회와 우리의 미래에 미칠 결과를 깊이 숙고해야 한다.
지난 3월 대통령은 일본을 방문하고 일본 우익이 그동안 원해온 거의 모든 것을 조건 없이 다 들어주고 왔다. 4월은 러시아와 중국 차례였다. 대통령은 외신 인터뷰를 통해 우크라이나에 한국이 살상무기를 제공할 가능성을 시사했고, 중국-대만 문제에 개입하는 발언을 했다. 이는 즉각 러시아와 중국의 격렬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그러자 미국 정부는 한국 정부를 비호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 모든 사건 전개는 일관된 방향을 가리킨다. 한·미·일과 북·중·러의 대결 구도가 두달도 안 되는 시간에 급속히 격화됐다. 윤석열 정부의 한국은 한반도, 동아시아, 나아가 세계 정치의 ‘신냉전 촉진자’가 됐다. 한반도 정세가 신냉전으로 가지 않도록 긴장 완화에 힘쓰는 게 아니라, 한국 정부가 앞장서서 신냉전을 강화, 완성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이는 최근 북한의 전략적 방향과 꼭 닮았다.
북한은 그동안 미국을 비난하는 맥락에서 신냉전을 언급해왔는데, 최근 정세 진단을 ‘신냉전’으로 공식화하면서 미-중 갈등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속에서 중·러와 동맹 강화에 힘써왔다. 이 구도가 고착되면 북한은 중국·러시아와 반미·반한 연대 속에 핵 개발을 가속할 수 있다. 대남 적대노선과 한국을 겨냥한 전술핵 개발을 본격화한 지금, 이런 구도는 한국에 실체적 위협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적 상호의존관계가 평화를 보장한다거나, 개방이 체제 변화를 끌어낼 것이라는 자유주의적 낙관은 현실적 토대가 약해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반대 극단에 있는 군사주의는 대단히 위험하다. 국가 간 적대관계가 ‘현실’이라면서 힘의 논리를 내세우지만, 실은 현실의 다른 가능성을 파괴하여 적대성을 고조시키기 때문이다. 합리적 대안은 양극단 사이에 있는 여러 선택지 중에서 모색돼야 한다.
실제로 지금 현실은 복합적이다. 대결 구도가 짙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여러 가능성이 존재한다. 우선 지정학적 구도가 단순 양분되지 않는다. 중-러, 북-중, 북-러 관계가 모두 복잡하고 가변적이다. 또한 경제적 상호의존이 아직 유효하며 미-중, 한-중, 한-러 간에 전면적 탈동조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신보호주의가 강해졌지만 시장행위자들의 이해관계는 훨씬 복잡하다.
하지만 이런 여러 가능성이 모두 제거되고 신냉전 구도가 완성되면, 90년대 이후 북한의 국제적 고립하에 한국이 쓸 수 있었던 많은 전략적 선택지가 사라진다. 국제규범에 호소해 북한을 압박하는 것도 어려워진다. 따라서 지금 한국은 중·러와 적대관계가 되지 않도록 관리해 신냉전 구도를 저지하면서, 미·일과 대등한 동반자로서 안보공조를 강화하는 과제를 달성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윤 정부는 미국·일본의 강경파가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고, 중국·러시아와는 적대관계로 몰아가고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김정은이 원하는 국제질서를 앞장서서 실현해주고 한국의 평화안보와 경제적 이익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대체 윤 정부는 왜 미국과 일본 강경파에 이토록 충성하는가? 두가지 설명이 가능하다.
하나는 정권의 이념이다. 윤 정부는 극우세력의 현실인식과 요구를 대변한다. 실용보수, 공동체보수, 다 밀려나고 냉전이념보수가 중심에 있다. 다른 하나는 정치적 사익이다. 정책적 무능을 상쇄할 방책으로 강대국의 인정을 받아 위상을 높이려는 것이다. 그 욕망을 아는 미국 엘리트들은 윤 대통령을 환대해줄 것이다. 하지만 그에 감읍하는 우리 대통령이 갖고 돌아올 것은 이 나라에 닥쳐올 위험이다.
노르웨이 사회학자 스테인 로칸은 중심과 주변의 비대칭적 관계에서 주변부의 속성을 이렇게 정리했다. 첫째, 주변부는 자기 운명에 대한 통제력이 없다. 둘째, 주변부는 중심부의 의사결정에 참여권이 없다. 셋째, 주변부는 중심부의 자원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경제·군사·문화강국 대한민국은 윤석열 정부에 의해 갑자기 아무 통제력도, 참여권도, 자주성도 없는 약소국으로 추락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 미래가 몹시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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