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서세원 허망한 마지막 길

2023. 4. 25.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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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근 문화평론가

서세원의 죽음이 갑자기 미스터리가 됐다. 국내 언론에서 의혹보도를 계속 내놓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엔 프로포폴 투약 의혹까지 제기됐다. 디스패치가, 서세원에게 주사를 놓은 간호사와 통화하며 프로포폴이라는 단어를 들었다는 것이다. 그후 연락이 끊겼다고 했다. 현지 병원이라는 곳에 디스패치 측이 직접 갔을 때 프로포폴 병을 발견했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박현옥 전 캄보디아 한인회장은 "프로포폴 투약설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내 두 눈으로 봤다. 내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서세원이) 팔에 링거를 꽂고 있었고 오렌지색이었다"고 주장했다.

진실은 알 수 없고 현지에서 수사를 한다고 하니 사실관계가 드러나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다만 지금 언론이 미스터리 파헤치기 식으로 잇따라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조금 과도해보인다. 타살 정황이 있다면야 확실하게 밝혀야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서세원의 모든 것을 '일단 털고 보자'는 식으로 파헤쳐야만 할까?

어쨌든 정확한 사인과 별개로 서세원이 생전에 당뇨 합병증으로 고생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작년 말에 건강하게 설교하는 듯한 영상이 공개돼서 많은 이들이 서세원이 건강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4조 투자설이 알려져서 자본이 상당할 것으로도 추측됐다. 하지만 실제론 당뇨병으로 고생하고 있었고 사업이 순조롭지 않았으며, 재정적으로도 힘든 상황이었다고 한다. 당뇨는 식이요법으로 잘 다스려야 하는 병인데 캄보디아 상황이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고 사업에 매달리는 과정에 더욱 당뇨 관리는 힘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업이 잘 됐어도 마음 편히 요양할 분위긴 아니었을 텐데,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사업이 어려워지기까지 해서 더욱 심신이 피폐해졌을 것이다. 사기까지 당했다고 한다. 그래도 본인의 재기를 위해서, 그리고 새로 꾸린 가족의 미래를 위해서 사업에 전념했던 것 같다.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 환갑에 얻은 딸이 자신의 삶의 전부라며, 그 딸이 인생의 기로에서 자신에게 빛을 안겨준 천사라고 했다. 그러면서 "온갖 어려움을 견디며 캄보디아 사업을 따낸 것도 알고 보면 어린 딸을 둔 아버지의 절실함으로 이해하시면 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절실함으로 낯설고 기후조건도 우리와 매우 다른 곳에서 사업에 매진했던 것일까. 만약 그가 캄보디아에 가지 않고 한국에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일이 일어났을까? 이미 벌어진 일에 가정은 무의미하지만, 그래도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1980년대에 서세원은 당대의 톱스타였다. 당시 젊은 개그맨들이 '우리는 바보연기나 몸으로 웃기는 코미디언이 아니라 말로 웃기는 개그맨'이라며 전 세대 코미디와 차별화를 시도했는데, 그 개그맨 흐름의 정점에 있었던 사람이 서세원이었다. 당시 '산 넘고 물 건너 바다 건너셔'라고 하는 그의 유행어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이 성공에 자신감을 얻었는지 1986년에 영화 '납자루떼' 연출에 도전하기도 했다. 인기 개그맨으로 누리면서 살 수 있는데 굳이 감독에 도전한 것을 보면, 확실히 안주하지 않고 위험을 감수하며 꿈을 좇는 성격인 것 같다.

1990년대엔 '서세원쇼'를 진행하며 토크쇼 사회자로 우뚝 섰다. 과거엔 예능프로그램 사회를 아나운서나 전문 진행자가 많이 봤었다. 가수 출신 사회자들도 있었다. 그러다 '서세원쇼'부터 개그맨 사회자들이 토크쇼 예능계를 주름잡기 시작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유재석과 탁재훈이 예능계 신성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그러다 2001년에 영화 '조폭 마누라'를 제작해 성공시키면서 인생의 정점을 맞이했다. 당시 방송에선 서세원을 성공한 연예인의 상징처럼 부각시켰다. '납자루떼'로 영화계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후 '조폭 마누라'로 기어이 성공하고야 만 이야기가 집념어린 성공스토리의 대표격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하지만 '조폭 마누라' 이후 곧바로 몰락이 찾아왔다. 손대는 영화 족족 실패했고 금품로비, 횡령, 세금 포탈 등의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부인인 서정희를 폭행했다고 해서 사회의 공적이 되었다. 한국에선 제대로 살기 힘든 상황이 되다보니 외국으로 간 측면도 있을 것이다. 하필 간 곳이 의료 등 사회 인프라가 미비한 캄보디아였다. 20여 년간이나 한국 최고 방송인으로 국민에게 웃음을 줬던 사람의 마지막 가는 길이 너무나 허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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