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파괴한 ‘임금의 길’...100년만에 되살려 10월 공개된다

김슬기 기자(sblake@mk.co.kr) 2023. 4. 25. 18:2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30년대 日전차선로 공사로 파괴
문화재청, 광화문 월대 복원나서

일제강점기 시절, 땅속에 묻혔던 광화문 월대(月臺)가 100년만에 복원된다. 월대는 궁궐의 정전과 같이 중요 건물에 넓게 설치한 대(臺)를 뜻한다. 창덕궁, 경희궁 등에도 월대가 있지만, 난간석을 두르고 기단을 쌓은 경우는 광화문 월대가 유일하다.

문화재청(청장 최응천)은 25일 작년 9월부터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가 광화문 월대의 복원․정비를 위해 진행 중인 발굴조사의 성과와 향후 복원계획을 공개했다.

한성부 주부 원세철이 기록한 경복궁 영건일기(營建日記)의 기록과 1890년대 이후로 전해지는 사진자료에 따르면 광화문 월대는 길게 다듬은 장대석을 이용한 기단석과 계단석, 그리고 난간석을 두르고 내부를 흙으로 채워 만든 건축구조물이다. 1866년 3월 3일 영건일기에는 “광화문 앞에 월대를 쌓았다. 모군이 궁 안에 쌓아둔 잡토를 지고 왔는데, 실로 4만여 짐에 이르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날 기자들에게 공개된 월대의 터는 켜켜이 쌓인 세월과 역사의 영욕이 중첩된 공간이었다. 현재 사직로보다 1m 가량 낮은 터가 당시 백성들이 다니던 길이었고, 월대는 1m 가량 높이 솟아 있었다. 당시 사진 자료에 따르면 월대는 3차례에 걸쳐 변형이 이뤄졌는데 1930년대 일제강점기 시절, 전차선로가 복선으로 깔리면서 월대가 파괴되고 난간석 등이 철거되며 땅 속에 묻혀 100여년의 세월을 견뎠다. 광화문의 이건과 함께 최근까지는 도로로 사용됐다.

이번 조사를 통해 밝혀진 월대의 전체 규모는 남북길이 48.7m, 동서너비 29.7m에 달한다. 광화문 중앙문과 이어지는 너비 약 7m의 어도(御道·임금이 지나도록 만든 길)의 흔적도 발굴됐다. 월대의 서편과 달리 비교적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동편의 모습을 통해 고종 때 경복궁 중건 시 월대의 전체 모습도 확인됐다.

광화문 월대는 동·서 외곽에 잘 다듬어진 장대석(길이 120~270cm, 너비 30~50cm, 두께 20~40cm)을 이용하여 2단의 기단을 쌓고, 그 내부는 서로 다른 성질의 흙을 교차로 쌓아 주변보다 높게 대를 만들었다. 월대의 남쪽에는 장대석을 이용하여 계단을 조성하였는데, 그 중 어도와 연결되는 중앙부는 소맷돌을 이용하여 동·서 계단과 분리하였다. 특히 어도계단지의 경우 일제강점기 전차선로에 의해 일부 훼손되었으나 소맷돌을 받쳤던 지대석이 확인되어 월대의 원형을 복원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신희권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는 “임금이 다니는 어도지를 포함해 지하에 묻힌 기단지가 완전하게 발굴됐다. 고증자료인 사진이 있어 월대 복원은 문제가 없을 것으로 기대된다”면서 “조선시대의 월대는 일종의 스테이지였다. 외국 사신들이 왔을 때 영접하고, 일부 무대로서 사용됐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백성들이 임금을 바라볼 수 있는 소통 공간도 겸하지 않았을까”라고 설명했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본부장 정성조)는 이번 발굴조사 성과를 바탕으로 고종시대 축조된 월대의 형태를 되살리는 방향으로 복원을 진행한다. 1920년대에 훼철된 이후 동구릉 등에 이전돼 있던 월대 부재(난간석, 하엽석 등)를 재사용하고, 문화유산수리장인 등의 전문가와 함께 전통재료·기법을 적용하여 월대를 진정성 있게 복원할 예정이다. 서울시와의 업무협조를 통해 월대 주변부 정비사업(삼군부 및 의정부 터 일부)과도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며, 복원공사가 마무리되는 오는 10월에는 ‘광화문 월대 복원 기념행사’를 궁중문화축전 등과 연계하여 개최할 예정이다.

광화문 월대 유적 전경. 우측 선로 하단부에 19세기 월대의 어도지와 기단 원형 흔적이 일부 발굴됐다. [문화재청]
1890년대 광화문과 월대 전경 [서문당]
월대 남쪽계단지 전경. 흰선으로 구획된 왼쪽 유적이 19세기 어도 계단지와 소맷돌 지대석의 모습이다. 중앙의 3층 계단은 일제강점기에 다시 쌓은 계단의 흔적이다. [문화재청]
광화문 월대 복원 예시도 [문화재청]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