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 거부권 가닥 잡았나…표결 이틀 앞두고 처우 개선책 발표(종합)
탄력 근무제 도입하고, 방문형 간호 확대
임상 간호 교수제 도입하고, 재정 지원도
조규홍 “간호법 제정 반대...의료계 혼란”
윤재옥 “대통령에 간호법 거부권 건의할 수밖에”
정부가 25일 간호사들의 근무 환경을 개선하고 방문 간호사 등으로 돌봄 역할을 확대하는 내용의 ‘간호인력 지원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오는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간호법 제정안이 처리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나온 대책이라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간호법은 간호사의 업무 규정을 별도 법률로 분리해 간호사 자격 처우 등을 개선하는 법안인데, 간호사를 제외한 다른 의료분야 직군은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등 13개 의료 직군 단체는 간호법이 통과되면 총파업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 간호사 인력 확대 병원에 인센티브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간호사 수 부족과 지역 편중을 해소하기 위해 간호사 배출을 지속적으로 늘리는 한편 지방 병원의 간호사 채용에 대한 보상을 강화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2차 간호인력 지원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정부는 간호사 1명당 간호하는 환자 수를 현재 16.3명(상급종합병원)에서 5명까지 줄이는 목표를 세웠다. 지방 소재 의료기관의 간호사 배치 확대를 유도하기 위해 지역 가산 등 수가를 지원하고, 간호·간병 통합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의 간호인력 배치도 확대한다.
간호사들이 일과 삶의 균형을 누릴 수 있도록 ‘데이-이브닝-나이트’의 3교대 근무 방식 외에 낮 저녁 고정 근무, 12시간씩 2교대 근무 등을 선택할 수 있는 교대제 개선 시범사업도 전면 확대하기로 했다. 24시간 진료를 유지하기 위한 3교대 근무는 간호사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제도로 지적을 받아왔다.
정부는 또 간호사들의 돌봄을 확대할 수 있는 기반도 마련하기로 했다. 간호법에서는 “지역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을 받는다”고 명시해 간호사들이 의료기관 밖에서 돌봄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이번 정부 대책에서는 돌봄 확대를 위해 방문 간호를 확대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방문 간호는 3년 이상 간호사 경력을 갖춘 뒤 전문간호사 등만 할 수 있었으나, 앞으로는 병·의원급의 방문형 간호는 일정 교육을 이수한 간호사도 할 수 있도록 기준을 완화하기로 했다. 또 간호사들이 주축이 되는 방문형 간호 통합제공센터 시범사업을 3년간 실시하고, 방문 간호사 업무 범위를 단계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밖에 병원 신규 간호사는 1년 동안 임상 교육 훈련을 통해 병원 근무 적응을 돕기로 했다. 이를 위해 교육 전담 간호사를 뽑고, 병원에 근무하는 겸임교수인 임상 간호사 교수제를 도입하게 된다. 아울러 병원 현장에서 의사의 진료 보조 역할을 하는 PA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정하고, 관리 방안도 마련키로 했다.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대책은 수십년 동안 간호계가 요구한 숙원을 담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 “현행 제도로 충분” 대통령 거부권 행사 포석
정부가 간호법 국회 본회의 표결을 이틀 앞두고 이런 대책을 발표한 배경을 두고는 여러 해석이 나온다. 더욱이 정부는 이번 대책을 당초 일정보다 보름 가량 앞당겨 발표했다.
복지부는 간호법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내 왔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전날(24일)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간호법이 통과되면) 협업을 어렵게 하고 의료현장 혼란이 발생해 결과적으로 국민 건강권을 침해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조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도 “국회 표결 전까지 간호법에 대해서 중재를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틀 앞으로 다가온 간호법 국회 본회의 표결을 중재를 통해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보인다. 169석의 민주당은 간호법 제정안과 의료법 개정안(의사면허박탈법) 강행 처리를 예고한 상태다. 그러니 이번 대책 발표가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대비한 포석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이번 대책 발표는 간호법 제정안 없이 기존 의료법의 틀 안에서 간호계가 요구하는 간호사 근무 환경과 처우 개선, 돌봄 역할 확대 등을 추진할 수 있다고 공표한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간호계가 요구한 제도 개선을 이미 충분히 했으니, 대통령이 간호법에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그에 따라 받을 정치적 부담은 덜 수 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야당이 간호법을 강행 처리하면 의료현장에 상당한 혼선이 예고된다”라며 “(야당이) 간호법을 강행처리할 경우 대통령께 재의요구권(거부권)을 건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간호법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을 공식 거론한 것을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임강섭 복지부 간호정책과장은 “간호법에 대한 갈등이 악화된 가운데, (간호계에서) 간호사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에 대한 정부의 진정성 있는 대책을 강력하게 요구했다”라고 대책 발표의 배경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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