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관과 회의 중 총소리 들리기도"… 수단 교민 대피 '막전막후'

노민호 기자 2023. 4. 25.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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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국자 "1.3㎞ 밖 공항은 이미 격전지… 급박한 상황 계속"
"'진정한 친구'는 어려울 때 알 수 있어… UAE 도움 컸다"
수단 군벌 간 무력 충돌로 고립됐다가 우리 정부의 ‘프라미스(Promise·약속)’ 작전을 통해 철수한 우리 교민들이 25일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 도착해 공군 수송기 KC-330에서 내려 군 관계자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2023.4.25/뉴스1 ⓒ News1 사진공동취재단

(서울=뉴스1) 노민호 기자 = 무력충돌이 벌어진 수단에 체류 중이던 우리 교민들이 25일 공군 수송기를 타고 무사히 귀국했다. 이와 관련 이번 수단 교민 대피·철수를 위한 '프라미스'(Promise·약속) 작전 지원에 나섰던 외교부 당국자들이 그간의 '막전막후'를 전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 작전 과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최고난도의 위기상황이었다"며 "주수단대사관과 (외교부 본부가) 통신으로 회의하던 와중에 총소리가 들린 적도 있다. 남궁환 주수단대사가 회의 중간에 뛰어나가서 상황을 확인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외교부에 따르면 이번 대피·철수작전 전개에 따라 각지에 흩어져 살던 우리 교민들을 수도 하르툼 소재 주수단대사관으로 집결시키는 작업도 쉽지 않았다고 한다.

외교부 당국자는 "9곳에 교민들이 산재해 있었다"며 "식량·연료·식수 등을 미리 비축해두지 못 했던 상황에서 갑자기 단전·단수가 됐다. 외부와의 통신은 다시 연결됐지만 급박한 상황이 계속됐다. 대사관에서 불과 1.3㎞ 거리에 위치한 공항은 이미 격전지였다"고 말했다.

다른 당국자는 "대사관 직원들도 곳곳에 흩어져 있던 상황이었다"며 "휴일에 자택에서 머무는 동안 갑자기 사태가 격변했다. 가족과 함께 시장에 갔던 한 직원은 한때 고립되기도 했다"고 전했다.

수단에선 지난 15일(현지시간)을 기점으로 정부군과 반군의 무력충돌이 심화되면서 현재까지 최소 430여명이 숨지고 3500~3700여명이 다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집계되지 않은 사상자까지 더하면 실제 인명피해 규모는 이보다 훨씬 더 클 것이란 게 관측통들의 설명이다.

무력충돌이 벌어진 수단에서 체류 중이던 우리 교민들이 24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제다 공항에서 서울공항으로 이동하는 다목적공중급유수송기 KC-330(시그너스)에 탑승해 있다. (국방부 제공) 2023.4.25/뉴스1

이에 우리 외교부는 현지 상황 발생 직후부터 재외국민대책반(21일 본부로 격상)을 가동했으며, '무력충돌이 장기화될 것 같다'는 판단에 따라 미국 등 서방은 물론, 수단 인근국가들과도 계속 접촉하면서 필요한 정보를 공유해왔다고 한다.

외교부 당국자는 대사관을 교민 집결 지점으로 정한 데 대해선 "태극기가 휘날리는 공관은 그나마 군사적 (공격) 포인트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며 "또 (하르툼) 중심에 있기 때문에 물자 확보도 비교적 쉬울 것으로 봤다. 사무실이 넓어 교민 28명을 모두 수용할 수 있었고, 큰 발전기가 있다는 것도 고려했다"고 전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23일을 우리 교민들의 현지 철수 작전 개시일로 택한 데 대해선 '이드 알피트르'(이슬람 금식월 종료를 기념하는 명절)를 맞아 사흘 간(21~23일) 간 휴전하는 방안이 논의된다는 소식에 "이 때를 놓치면 '기회의 창(窓)'이 닫힌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대사관에 집결했던 우리 교민 28명은 23일 오전 차량을 타고 직선거리로 840여㎞ 떨어진 수단 북동쪽 항구도시 포트수단로 향했다. 그러나 좀 더 '안전한' 경로를 이용하다 보니 실제론 1174㎞ 거리를 달렸고, 포트수단 도착까지 30여시간이 걸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교민들은 포트수단에 대기 중이던 우리 공군 C-130J 수송기에 올라 경유지인 홍해 건너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 도착했고, 우리 시간으로 이날 오전 2시54분쯤 공군 다목적 공중급유수송기 KC-330을 타고 귀국길에 올랐다. 그리고 KC-330은 이날 오후 3시57분쯤 경기도 성남 소재 서울공항에 안착했다.

다만 수단 내 한인 29명 중 현지 국적 취득자 1명은 우리 대사관 측에 잔류 의사를 밝혀 이들과 동행하지 않았다.

무력충돌이 벌어진 수단에서 체류 중이던 우리 교민 등이 24일(현지시간) 공군의 C-130J '슈퍼허큘리스' 수송기를 타고 사우디아라비아 제다 공항에 도착, 관계자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국방부 제공) 2023.4.25/뉴스1

외교부 당국자는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누가 진정한 친구인지는 어려울 때 드러난다'는 걸 다시 한 번 알 수 있었다"며 "탈출 방법이 막막한 상황에서 유관국들과 신속히 접촉했다. 미국·프랑스·영국 등 서방뿐만 아니라 역내 강국인 아랍에미리트(UAE)·사우디아라비아·이집트 등과 유엔세계식량계획(WFP)도 접촉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박진 외교부 장관은 우리 군 수송기 파견이 결정된 이달 21일 압둘라 빈 자이드 알 나흐얀 UAE 외교·국제협력부 장관과의 통화에서 관련 협조 방안을 협의했고, 이튿날엔 데이비드 비즐리 WFP 사무총장과도 통화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박 장관의 통화 이후 유엔과 UAE 측에서 우리에게 육로 이동을 제안해왔다"며 "여러 고려 끝에 UAE가 현지 세력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점, 그리고 우리에게 공유해준 정보의 질과 우리 측의 준비 정도 등을 감안해 UAE와 움직이기로 최종 결정했던 것"이라고 부연했다. 우리 교민들이 탄 차량은 UAE 주도로 구성된 아랍국가들의 대피 행렬에 합류해 하르툼에서 포트수단까지 이동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UAE와의 '우정'을 다시 한 번 확인한 기회였다"며 "칼둔 UAE 행정청장은 박 장관에게 '당신 나라의 국민이 곧 우리 국민'(Your people are our people)이란 말도 했다. 어려운 상황에서 그런 말을 들으니 울컥했고 상당히 감동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주수단대사관에서 근무하던 공관원들도 교민들과 함께 대피하면서도 현지 우리 대사관 운영은 '잠정 중단'된 상태다. 다만 외교부 당국자는 "주제다 총영사관 직원 1명에게 관련 임무를 부여해 현재 비상 근무체제를 운영하고 있다"이라며 "주요국 동향 파악과 더불어 혹시라도 수단 내에 우리 국민이 남아 있을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미국 등의 수단 내 자국민 대피도 군사작전을 방불케 했지만, 포트수단에 군 수송기를 보내 교민을 데리고 나온 건 우리나라가 제일 먼저"라고도 말했다.

ntig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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