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리퍼블릭은 '좀비' 은행" 한달새 예금 1천억弗 엑소더스
지난달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여진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파산설이 나돌며 '제2 SVB'로 꼽혔던 퍼스트리퍼블릭은행에서는 지난달 한 달 새 1000억달러(약 133조원) 예금 인출이 일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시장 예상치를 뛰어넘는 액수로 은행 불안을 가중하고 있다. 아울러 미국 상업용 부동산은 공실률이 2008년 금융위기 당시를 넘어서며 새로운 뇌관으로 떠오르고 있다.
24일(현지시간) 블룸버그와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은 1분기 실적 보고서를 통해 예금 보유액이 작년 말보다 약 720억달러(40.8%) 감소한 1045억달러(약 140조원)라고 밝혔다. 금융권의 1분기 예상 예금액 전망치는 1450억달러로, 고객의 현금 대량 인출(뱅크런) 사태 규모가 훨씬 더 컸던 것으로 나타났다. 예금 보유액은 작년 말 1764억달러에서 40%가량 떨어졌다.
특히 퍼스트리퍼블릭은행 예금 보유액에는 JP모건 등 대형 금융사 11곳에서 긴급 유동성을 지원받은 금액 300억달러가 포함됐다. 유동성 지원이 없었다면 예금 보유액이 작년 말 1764억달러에서 1분기 745억달러로 1000억달러 이상 줄어든 셈이다. 대규모 뱅크런 사태가 지난달 10일 전후 발생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 달 새 전체 예금 가운데 58%가 인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수익성도 나빠졌다. 영업이익은 2억6900만달러로 전년 동기(4억1100만달러) 대비 33% 감소했다. 같은 기간 매출은 13% 줄어든 12억달러였다.
예금 인출이 예상을 뛰어넘었다는 점이 퍼스트리퍼블릭은행 주가를 다시 끌어내렸다. 시간 외 거래에서 20% 이상 하락했으며, 올해 초에 비해서는 90% 가까이 떨어졌다. 정규장을 기준으로 121.54달러(올해 1월 3일 기준)였던 주가는 이날 16달러로 마감했다.
마이클 로플러 퍼스트리퍼블릭은행 최고경영자(CEO)는 "전례 없는 예금 유출을 경험했지만 이달 21일 예금 보유액은 1027억달러로 1분기 말보다 1.7% 하락하는 데 그쳤다"며 "이는 고객이 정기 세금을 내는 시기와 맞물린 것"이라며 지역은행 예금 인출 사태가 둔화됐다는 의미로 진화에 나섰다.
닐 홀랜드 퍼스트리퍼블릭은행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실적 보고서에서 "지출과 단기 차입금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구조조정 계획을 밝혔다. 임직원을 20~25% 줄이고 임원 급여도 삭감할 예정이다. WSJ는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이 외부 자본 유치나 매각을 위한 투자은행(IB) 담당자를 고용했다고 전했다. 다만 은행 측은 "전략적 옵션을 추구하고 있다"고만 답했다.
WSJ는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을 '산송장(Living Dead)'에 비유했다.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은 금리 인상에 따라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연방주택대출은행 등에서 1000억달러 이상 고금리 차입금을 보유하고 있는 데 비해 고객에게 빌려주고 받는 이자율이 이에 못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블룸버그는 퍼스트리퍼블릭은행 외에도 코메리카, 시온스뱅코프 등 지역은행이 예금 보유액 감소 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다며 시장에 우려를 표했다. 시장에서는 미국 상업용 부동산이 새로운 경기 침체의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WSJ에 따르면 코스타그룹이 집계한 미국 오피스 공실률은 지난 1분기 12.9%까지 올랐다. 이는 2000년 집계를 시작한 이래 최고치로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높다. 경기 침체 우려와 재택근무 확산 등에 따른 여파로 풀이된다.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면 최대 대출기관인 은행과 연기금, 자산운용사들의 연쇄 타격이 우려된다. KBW 리서치에 따르면 상업용 모기지는 미국 은행권 대출 보유분의 약 38%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진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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