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반드시 국민을 지킨다" ···작전명 '프라미스'의 기적
육로 1170km·항공로 16개국 지나 무사귀환
수단 공항 파괴에 상황 악화 속
형제국 UAE 제안으로 육로 이동
호송 지원 속 34시간 만에 탈출
각국 영공통과 하루만에 이끌어
빠른 교민 철수···외교력 등 빛나
무력 충돌이 벌어진 북아프리카 수단에 체류하던 우리 국민들이 국군의 완벽한 탈출 작전 덕분에 25일 무사히 귀국했다. 단 하루 만에 무려 16개국의 협조로 해당 국 영공을 통과하면서 군 수송기는 왕복 1만 6000㎞의 작전을 수행했다.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에는 지상 교통편으로 공항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형제 국가’인 아랍에미리트(UAE)의 호송 지원까지 받았다. 이 같은 우방들의 도움에 힘입어 우리 군은 혈전이 벌어지고 있는 수단에서 인명 피해 없이 교민들을 무사히 구출해오는 기적적인 작전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작전명 ‘프라미스(promise·약속)’로 명명된 이번 구출 임무는 21일 수단 수도의 한국대사관에 교민이 집결하면서 시작됐다. 당일 오후 공군 수송기 C-130J ‘슈퍼 허큘러스’가 김해 공항을 이륙하면서 군 자산의 전개가 본격화했다. 25일 국방부와 외교부가 전한 브리핑을 토대로 긴박했던 철수 작전을 재구성해 본다. 외교부는 “요르단 등 인접국을 빼고 교민을 제일 먼저 데리고 나온 게 우리나라”라며 “아시아 중 처음”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프라미스라는 작전명은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작전 직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 당국의 원래 철수 시나리오는 한국대사관에 집결한 우리 교민을 인접국 지부티 미군기지에서 대기 중인 공군 수송기를 수도 하르툼국제공항으로 보내 이송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하지 않았다. 국방부와 외교부 등 해외 정보망을 풀가동한 결과 하르툼공항은 교전 상황이 벌어져 항공기 이착륙이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군은 최종 판단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하르툼공항에 수송기로 이송하는 게 가장 안전하고 신속한 방식이었으나 공항 관제 시설과 활주로를 사용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며 “결국 최종 판단은 육로 이동 외 다른 방안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군은 또 다른 공항 시설과 항만이 있는 홍해에 접한 포트수단으로 이송하는 작전을 세웠다. 이때 만약 상황이 악화해 포트수단의 공항 시설도 이용할 수 없다면 해상 철수라는 ‘플랜B’가 22일 세워졌다. 오만 살라라항 해역에 활동 중이던 청해 부대가 홍해 쪽으로 전개한 시점도 이때다. 외교부 당국자는 “교전이 장기화할 수 있고 라마단 직후 72시간을 놓치면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 판단 하에 철수 시점으로 23일(현지 시간)을 마지노선으로 설정했다”고 설명했다. 이때 일본 국민 5명도 우리 교민 일행과 같이 철수길에 올랐다.
관건은 어떻게 육로로 안전하게 교민을 수도에서 동쪽으로 800㎞ 떨어진 포트수단으로 이송할 것이냐였다. 해답은 수단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형제국’ UAE였다. 군이 여러 방면의 육로 수송을 고민하던 차에 UAE가 육상 이송 루트를 구체적으로 제안했던 것이다. 박진 외교부 장관과 전화 협의를 한 칼둔 알 무바라크 UAE 아부다비 행정청장은 “당신네 국민은 우리 국민(Your people are Our People)”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루트는 당초 군이 생각했던 북부 루트가 아닌 남쪽으로 우회하는 것으로 이송 거리가 1170㎞에 이른다. 이 루트는 산악 지역과 협곡 지대를 통과하는 험로로 호송 도중 차량 고장으로 이송 시간이 지체되기도 했다고 한다. 외신에 따르면 다른 루트를 이용하거나 앞서 이송한 일부 국가는 도중에 피격을 당하는 일도 있었다. UAE 주도의 호송 차량은 23일 오후 1시 30분(한국 시각)에 출발해 24일 밤 10시 40분에 1차 목적지 포트수단에 도착했다. 무려 34시간가량을 이동한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포트수단의 공항이 정상적으로 기능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는 점이다. 포트수단 도착 때부터 ‘프라미스’ 작전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포트수단공항 도착 후 단 45분 만에 2차 목적지 사우디아라비아 제다로 향했다. 군은 지부티 미군기지에 대기 중이던 공군 수송기 C-130J ‘슈퍼 허큘리스’를 포트수단으로 급파했고 교민을 태운 수송기는 홍해 건너 사우디아라비아 제다국제공항에 24일 자정 무렵 도착했다. 교민들은 25일 새벽 2시께 공중급유기 시그너스편으로 한국행 길에 올랐다.
군 당국은 “해외 체류 국민 이송 작전에 육해군 합동 전력이 총동원된 것은 처음”이라며 “프라미스 작전의 성공은 외교부와 국방부 등 정부의 대외 외교력과 그를 통한 정보 획득이 가장 결정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수단 인접 지부티의 미군기지 사용을 승락한 미국과 육상 이송 계획을 수립하고 호송 작전을 벌인 UAE, 수송기 갈아타기 장소를 제공한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협력이 큰 도움이 됐던 것이다. 군 당국자는 “수송기의 영공 통과를 승인 받아야 하는 나라가 16개국인데 통상 이를 받는 데 2주일 걸리지만 단 하루 만에 끝났다”며 “C-130J는 10개국 승인을 받고 비행 도중 나머지 6개국의 승인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교민들을 태운 시그너스 공중 급유기가 이날 오후 4시께 서울 공항 활주로에 안착하자 공항에 마중 나온 가족·친지들은 시그너스를 향해 손을 흔들며 환영했다. 철수 당시 28명 교민 가운데 2명은 사우디에 체류할 것으로 전해졌으나 이들이 도중에 마음을 바꿔 28명 전원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날 서울공항에는 이종섭 국방부 장관을 비롯해 임종득 국가안보실 2차장, 한창섭 행정안전부 차관, 이도훈 외교부 2차관 등이 나와 수단 교민들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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