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간호법 강행하면 거부권 행사 건의”
국민의힘이 25일 윤석열 대통령에게 간호법 제정안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기로 입장을 정했다. 간호사·의사 등 보건의료 종사자들과의 중재 노력이 거듭 실패하자 거부권 카드를 뽑아 든 것이다. 여당이 정책에 대한 합의를 이끌지 못하고 양곡관리법에 이어 거부권으로 비토만 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간호법 처리가 예고된 오는 27일 본회의를 이틀 앞두고, 극적인 합의나 처리 연기를 이끌어내려 강수를 뒀다는 분석도 나온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마친 후 기자들과 만나 “(야당이) 협상에 응하지 않고 이 법(간호법 제정안)을 단독으로 강행 처리하면 여당으로서 특별한 대책 없이 이 상황을 지켜볼 수만은 없다”면서 “강행 처리할 경우 대통령께 재의요구권(거부권)을 건의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간호법에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는 당의 입장을 공식화한 것이다. 의총에서도 다수 의원들이 거부권 행사가 불가피하다는 취지로 발언했다고 한다.
정치권에선 그간 국민의힘이 간호법에 거부권을 쉽게 행사하진 못할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윤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간호법 제정을 돕겠다고 약속했고, 내년 총선을 앞두고 50만 회원을 둔 대한간호협회의 반발을 부르는 정치적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양곡관리법에 이어 연달아 거부권을 행사하면 ‘국회 무시’ 프레임을 키울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정부·여당의 중재 시도가 거듭 실패하면서 기류가 바뀌었다. 윤 대통령의 방미를 앞두고 대통령실에서부터 거부권 얘기가 흘러나왔다.
국민의힘에선 거부권 행사의 후폭풍을 줄이기 위한 사전 작업에 착수했다. 양곡관리법 거부권 행사 때 중재 노력이나 선제적인 정책 발표가 부족해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는 자성이 반영됐다.
여당은 협상 실패의 책임은 민주당과 대한간호협회로 돌렸다. 윤 원내대표는 “더불어민주당이 다수의 힘으로 협상에 임하지 않고 입법폭주를 하니 여당으로서는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는 법에 대응할 수단이 재의요구밖에 없다”며 “국민도 이해하리라 본다”고 말했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간호협회 회장이 중재안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는데 2차 만남에서 원점으로 회귀했다”면서 “회장과 함께 온 시민단체 관계자가 강하게 (중재안을) 반대했다”고 시민단체 개입설을 제기했다.
보건복지부는 이날 PA간호사(진료지원인력) 업무범위 규정, 임상간호교수 도입, 방문형 간호통합제공센터 시범사업 등 간호사 처우 개선 대책을 발표했다.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완충재 역할을 할 정책들을 선제적으로 내놓은 것이다.
민주당에 협상도 촉구했다. 윤 원내대표는 “27일 본회의까지 시간이 좀 있으니 계속 협상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이날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는 “간호법이 통과되면 의사협회와 간호조무사협회 등 13개 보건의료단체가 총파업을 할 것”이라며 “마주 보고 달려오는 기차들이 충돌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 기차에 타고 있는 것은 국민”이라고 민주당을 압박했다. 13개 보건의료단체도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간호협회는 정부·여당 중재안을 수용하라”고 측면 지원을 했다.
국민의힘은 내심 거부권 건의라는 강수를 통해 합의를 이끌어내길 원하고 있다. 한 국민의힘 원내 인사는 “거부권으로 배수진을 치고 협상했을 때 극적으로 중재가 성사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끝내 합의가 안되면 거부권 건의를 강행할 분위기다. 만약 간호협회가 거부권 행사 시 파업을 하겠다고 하면 ‘의사 파업 대 간호사 파업’의 대치 국면이 형성될 수도 있다.
이를 두고 당내 비윤석열계에선 우려가 나왔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간호법은 대통령 선거 당시 공약 위키에 올라와 있던 내용”이라며 “자기 공약에 자기가 거부권을 행사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대선 중 했던 공약들의 신뢰도가 한방에 무너질 수 있다”고 적었다.
오영환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에서 “여당의 억지를 받아주지 않으면 대통령의 손을 빌려서라도 입법을 무력화하겠다는 것은 의회 민주주의에 대한 협박”이라며 “대통령이 공약한 간호법 제정안을 대통령 손으로 거부하도록 만들겠다니 코미디가 따로 없다”고 밝혔다.
조미덥 기자 zorro@kyunghyang.com, 문광호 기자 moonli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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