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 표결 이틀 남았는데···정부 달래기에도 의료계 '극한 대치' 지속
25일 '간호인력 지원 종합대책'에도 간호계 냉랭
보건복지의료연대, 간호법 통과시 총파업 강행 의
27일 간호법 제정안의 국회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정부가 막판 달래기에 나섰지만 약발이 듣지 않는 모습이다. 당초 지난 13일 국회 본 회의에서 처리하기로 했던 간호법 제정안의 상정을 2주 연기하면서 시간을 벌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서 ‘의료대란’으로 번질 불씨는 여전하다. 간호사들의 근무환경 개선과 돌봄 역할 확대 내용을 담은 ‘간호인력 지원 종합대책’ 발표에 대해 간호계는 "구체적인 추진 계획과 로드맵이 보이지 않는다"며 비판했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등 보건의료직역 13개 단체가 참여하는 보건복지의료연대는 "간호법이 통과될 경우 총파업에 나서겠다"는 강경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25일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제2차 간호인력 지원 종합대책'에는 간호사 1명이 환자 5명을 돌보는 수준으로 간호사 수를 늘리겠다는 계획이 담겼다. 간호인력수급위원회를 꾸려 간호대학 입학정원을 결정하도록 하고, 그동안 논란이 많았던 PA(진료보조) 간호사의 업무범위도 제도화한다는 방침이다. 간호법 제정 없이도 유권해석으로 가정 방문형 간호 서비스를 활성화하겠다는 당근책도 내놨다.
의료계 안팎에서는 이번 대책이 간호법 제정을 둘러싼 '의료대란'으로 번질 것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해석한다. 더불어민주당이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간호법 제정안을 반드시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쳤고, 의협을 필두로 보건의료직역 13개 단체 400만 회원이 연합한 보건복지의료연대가 간호법이 통과될 경우 총파업에 나서겠다고 선언하면서 달래기에 나섰다는 입장이다. 당초 다음달 12일인 국제간호사의 날에 맞춰 발표될 예정이었지던 간호인력 지원 종합대책 발표 시점이 이날로 앞당겨진 것도 이러한 주장에 신빙성을 더한다.
하지만 간호계의 반응은 냉랭하기만 하다. 대한간호협회는 "과거 발표됐던 대책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예산조차 언급되지 않아 신뢰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보건의료노조 역시 발표 직후 성명서를 통해 "간호사 배치 기준 상향은 2021년 9·2 노정합의의 취지를 재확인하는 수준이다. 내용도 정책적 지향점 설정에 그치고 있어 실망스럽다"며 "갑자기 시기를 앞당겨 발표한 것도 진정성을 의심하게 한다"고 꼬집었다. 충분한 인력확충 없이 교대제 근무를 개선하겠다는 것은 오히려 간호사들의 건강권을 악화시킬 수 있어 위험하다는 지적이다.
간호법을 둘러싼 간호사-의사 단체 간 갈등이 보건의료직역 전체 갈등으로 치닫자 정부는 달래기 행보를 지속하고 있다. 당정은 이달 11일 ‘간호법’ 대신 ‘간호사 처우법’으로 명칭을 바꾸고, 기존 제정안에 담긴 간호 서비스의 혜택 범위인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서 ‘지역사회’를 삭제해 적용 범위를 줄인 중재안을 내놨지만, 간협이 거부하면서 불발됐다. 정부가 내놓은 중재안이 사실상 의사단체 요구를 대폭 수용한 안이라는 게 거부의 이유다. 간협 관계자는 “간호법 원안은 2021년 발의된 이후 공청회와 상임위 법안소위를 거쳐 여야와 정부가 최종 합의한 법안”이라며 “중재안은 (정부가) 간호법을 제정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급기야 김진표 국회의장이 지난 13일 여야 합의를 요구하며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된 간호법 제정안의 상정을 연기하고, 이 기간 조규홍 복지부 장관이 간협, 간무협을 필두로 병원간호사회, 이대목동병원 현장 간호사 등과 연이어 간담회를 가졌지만 뚜렷한 소득은 없었다. 표결을 이틀 남겨놓은 이날 조 장관은 간호인력 지원 종합대책 발표 직후 간호학계의 원로?중진 교수들과 만나 간호 현안에 대해 논의했다. 이날 발표한 대책안의 과제들이 간호학계의 이해와 지지 속에서 이행될 수 있도록 간호학계의 원로?중진 교수들에게 대책의 취지와 주요 내용을 설명하고, 보완이 필요한 사항에 대한 의견을 수렴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간협의 반발이 워낙 강해 사실상 남은 기간 분위기를 크게 반전시키기 힘들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간호사들을 제외한 나머지 보건의료직역 단체들도 강경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대한간호조무사협회는 간호법 제정 추진에 반발해 수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보건복지의료연대의 1인 시위와 별개로 이날 하루 동안 협회 회원 1000여 명이 개인 연가를 활용해 경고성 파업에 돌입했다. 이들은 27일 간호법이 원안대로 국회를 통과할 경우 의사 등 다른 보건의료직역들의 파업 여부와 상관없이 총파업에 들어간다는 방침이다.곽지연 대한간호조무사협회장은 "오늘의 연가 투쟁은 의지를 보여주는 1차 경고파업”이라며 “지금의 간호법은 간무사의 학력제한을 설정해 차별하는 위헌적인 법이다. 법안이 강행처리되면 전국 86만 회원이 총파업에 돌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간무협은 이날 국회의사당역에서부터 민주당사까지 가두행진을 진행하고, 양 당에 '10만 간무협 회원 반대서명지'를 전달하며 집회를 마무리 지었다. 곽 회장은 이날부터 국회 앞 단식투쟁에 돌입했다.
보건의료연대 소속 13개 단체장들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간협과 민주당은 당정의 '간호법 중재안'을 수용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은 “간협이 원안보다 간호사 처우 개선 조항이 강화된 중재안의 수용을 거부하면서 진짜 목적은 처우개선이 아니었음이 확실해졌다”며 “결국 핵심 목적은 기득권 간호사와 일부 노조세력이 돌봄사업을 주도해 막대한 이익을 얻겠다는 것, 그리고 간호사들의 탈병원화를 유도해 국민건강을 지키는 의료기관을 더욱 어렵게 함과 동시에 보건의료계 내에서 간호직역의 이익을 극대화시키려는 것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라고 비판했다.
간호법과 함께 국회 본회의 상정을 앞둔 중범죄의사면허취소법과 관련해선 “의료인 면허취소 사유를 모든 범죄에 대한 금고형으로 하면 과잉입법 문제로 인한 위헌 소지가 커지므로 면허취소 사유에 해당되는 범죄를 중범죄와 성범죄, 의료관련 범죄의 금고형으로 바꾸어 중재안이 마련됐다”며 “국민 법 감정에도 부합하고 과잉입법 논란도 피할 수 있는 중재안이 나왔음에도 민주당이 원안을 고집하는 것은 문제"라고 덧붙였다.
안경진 기자 realglasses@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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