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 지정학 분쟁의 경제적 나비효과
당장 경제적 충격 크지 않아도
통상관계 붕괴 후폭풍은 걱정
특히 금융시장 움직임이 중요
이번주부터 러시아에 대한 수출통제 품목이 57개에서 798개로 확대된다. 미국의 제재에 보조를 맞춘 것이다. 우리 수출과 수입에서 러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이 1~2% 수준이니 그 경제적 충격이 크지는 않을 것이다. WTO에 따르면 G7 및 EU를 중심으로 이미 43개 나라가 러시아에 대한 무역제재를 실시하고 있다. 상당수 국가는 특정 품목의 수출이나 수입을 금지하는 경제제재 조치를 넘어, WTO 회원국으로서 러시아가 누리던 최혜국대우(MFN)도 철회하겠다고 결정했다. 러시아도 이에 맞서 WTO 제소와 함께 다양한 보복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이처럼 지정학적 분쟁에 따른 경제적 제재가 시작되면 국제통상질서와 국가 간 통상관계가 파괴된다. WTO가 사용하는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제11조는 원칙적으로 수출허가와 같은 수출규제 조치를 금지하고 있다. 국가별로 무역을 차별하는 조치는 그 제1조 최혜국대우 원칙 위반이다. 그렇지만 당장 총탄이 오가고 안보가 명분이 되면 이러한 규범들은 쉽사리 무시된다. GATT 제21조도 전쟁 등 안보상의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이른바 WTO 제소는 그저 상징적인 조치다. 논의가 워낙 오래 걸려 결론이 나기 전에 분쟁이 먼저 해소되는 지경이다. 그나마 지금은 WTO 상소기구의 활동이 아예 정지돼 있다.
결국 일단 지정학적 분쟁이 과열되면 경제제재와 보복제재가 등장하고 국가 간 무역이 훼손되어도 이를 방지할 수단이 없다. 작년에 세계경제포럼(WEF)에서는 지정학적 분쟁과 경제제재 때문에 최혜국대우 원칙이 너무 자주 무시되어 WTO 자체가 분열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온 가족이 함께 탄 차가 지정학적 분쟁이라는 험로로 접어드는데 그 경제적 충격을 막아줄 범퍼도 현가장치도 브레이크도 다 믿을 수가 없다. 거꾸로 일단 분쟁에 연루되면 제재와 보복의 악순환을 타고 경제적 피해가 극대화되는 가속기가 장착되어 있다.
최근 우리는 러시아, 중국과 서로 날 선 언사를 주고받았다. 무기 수출이나 대만 문제는 원래부터 예리하게 날이 서 있는 이슈다. 세상이 거칠어지는데 우리만 조용히 밖에 머무를 도리가 없는 사정도 있을 것이다. 다만 중국처럼 우리와 경제적 연결이 긴밀한 나라와의 지정학적 긴장이 시작될 때는 길의 입구만 보지 말고 들어선 다음에 펼쳐지게 될 길을 끝까지 다 내다보고 미리 염려해야 한다. 특히 그 길의 맨 초입에서부터 국제금융시장이 중요한 변수로 등장할 수 있다는 데 유의해야 한다. 일단 지정학적 분쟁에 연루되면 경제적 제재와 보복으로 이어지고 결국 상대국과의 통상이나 공급망 협력이 파괴될 수 있다는 것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시장이 익히 잘 아는 정보다. 그 과정에서 작동하는 브레이크도 별로 없다. 국제금융시장은 이런 정보를 놓치지 않는다. 그 조짐이 어디선가 감지되면 먼저 자금이 빠져나가고 환율이 영향을 받는다. 실제 지정학적 사태가 전개되거나 실물경제가 충격을 받는 것은 그다음이다.
가령 세계 제조업과 무역 1위 국가인 중국에 대한 공급망 의존이 큰 나라가 중국과 수출통제를 주고받을 위험이 커진다면 시장은 그 위험을 반영하기 시작할 것이다. 2020년 한국의 수입 의존 품목 중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50% 이상인 제품이 전체 5300개 품목 중 1088개에 달한다. 거의 전 업종에 걸쳐 있다. 국제금융시장은 이를 너무 잘 알고 있다. 이미 무역수지 적자가 13개월째 지속되면서 최근 원화 환율이 불안정하다. 여기에 지정학적 위험이 추가되면 설상가상이 될 수 있다. 혹여라도 지정학적 결정이 기업과 국민 경제를 불안하게 만들지 않도록 만전을 다해야 할 때다.
[지만수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돈 안갚으면 성관계 영상 유포한다”…사채업자 빚 독촉 대처법은 - 매일경제
- 100억에 팔렸다던 반포 재건축아파트, 3개월만에 거래취소, 집값 띄우기? - 매일경제
- “이틀연속 하한가라니”…SG증권發 매도폭탄에 개미들 패닉 - 매일경제
- 윤대통령 ‘日 무릎 발언’ 오역 주장에…원문 공개한 WP 기자 - 매일경제
- “대기업에 취업하지 말라”...1조 굴리는 연봉킹이 본 ‘부자되는 법’ [신기자톡톡] - 매일경제
- 애플 홀로서기 나서지만...“한국산 이 부품은 차마 못뺄걸?” - 매일경제
- “미국이 찍으니 무섭네”…중국기업 결국 사업 접는다는데 - 매일경제
- [단독] “너는 얼굴은 연예인급인데 눈치가 없다”... 막말 행진 펼친 대학강사 - 매일경제
- “주차장에 세워둔 내차 사라져”…이웃 주민이 몰래 팔았다 - 매일경제
- 멀티골 폭발한 이강인 2경기 연속 최우수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