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진 교민 방탄차로 데려와 ‘디데이’까지 컵라면으로 버텼다
북아프리카 수단에서 철수한 우리 국민 28명이 탑승한 공군 수송기 ‘시그너스(KC-330)’가 25일 오후 3시 57분쯤 성남 서울공항에 착륙했다. 지난 15일 이번 사태가 발발한 지 약 열흘 만에 전원이 고국으로 무사 귀환해 정부의 재외국민 보호 ‘약속’을 뜻하는 ‘프로미스(promise) 작전’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것이다. 외교부는 미국, 아랍에미리트(UAE), 튀르키예 등 철수 과정에 조력을 제공한 우방국들에 사의를 표하며 “어려울 때 누가 진짜 친구인지 드러났다”고 했다.
수단 내 한국 대사관은 이번 내전의 최대 격전지 중 하나인 공항에서 불과 1.3km 떨어져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회의 도중 총소리가 들려 대사가 뛰어나가 확인해야 할 정도로 급박한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특히 내전 발발 초기 반경 25km 지역 9곳에 대사관 직원과 가족, 교민들이 산재해 있어 인원이 한곳으로 집결하는 데 상당 시간이 소요된 것으로 전해졌다. “차량이 움직이면 표적이 될 수 있어 직원 대부분이 숙소에서 나오지 못하고 사흘을 꼬박 보냈다”고 했다. 스트레스를 호소하던 현지 행정 직원이 쓰러지자 남궁환 대사가 직접 방탄 차량의 선탑자로 나서 대사관 밖에 있던 사람들을 새벽 마다 데리고 왔다고 한다.
대사관 내 식량과 식수 등 비축분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었고 이후 단수(斷水)까지 됐는데, 주로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워가며 버텼다고 한다. 휴일에 시장에 나갔다 모친, 자녀와 고립됐던 공사참사관은 이탈리아 비정부단체(NGO)의 셸터(보호소)에 머물며 미국·영국·일본 등과 소통하며 정보를 취합해 본부에 보고했는데, 외교부는 이를 토대로 공관 철수를 결정하고 23일을 ‘디데이’로 설정해 철수 작전을 전개할 수 있었다. 대사관에서 포트수단까지 우회 도로로 약 1170km를 9시간 30분 동안 달렸는데 여기에는 개 1마리와 고양이 2마리도 함께했다.
철수 과정에서 UAE가 제공한 정보와 차량, 경호 등이 성공적인 육로 이동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박진 장관과 칼둔 칼리파 알 무바라크 아부다비 행정청장 간 ‘핫라인’이 구축됐는데, 칼둔 청장은 메시지를 보내 “당신의 국민들이 우리 국민들”이라며 “가능한 모든 차원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외교부는 “UAE와의 우정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고 했다. 이와 함께 튀르키예도 “올해 2월 대지진 발생 때 한국이 긴급구호대를 파견한 것을 기억한다”며 조력을 제공했는데, 외교부 관계자는 “우리가 하는만큼 돌아온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외교 소식통은 “정보를 획득하는 과정 전반에 미국 정보기관이 적극 협조했다” “한미동맹이 철수 성공에 큰 기여를 했다”고 전했다.
특히 철수 작전이 시작된 당일인 23일 일본인 5명도 우리가 제공한 차량을 타고 포트수단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25일 기자들과 만나 “일본인 대피 과정에 한국과 UAE, 유엔의 협력이 있었다”며 “감사의 뜻을 전한다”고 했다.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외무상도 박 장관과 실시간 소통하며 사의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관계자는 “거꾸로 우리가 어려운 상황이었더라도 일본이 도와줬을 것”이라며 “이번 과정을 통해 한일 관계가 또 공고화됐다”고 했다. 한일은 코로나가 한창이었던 2020년에도 합작해 양국 국민들을 아프리카에서 귀국시킨 경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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