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보기] 부모님이 올린 내 흑역사 ㅠㅠ...'셰어런팅'의 그늘

이지현 기자 2023. 4. 25.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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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욕하며 노는 아이들 신체가 동영상 속에 그대로 다 드러나 있어요. 아이가 나중에 동영상을 보면 당황하고 혼란스러워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 아이 양육 과정을 담은 브이로그(Vlog)영상에 아이가 배변 하는 모습을 그대로 촬영해 게시했습니다. 아이가 커서 친구들이 이 영상을 본다면 정말 창피할 것 같습니다.

국제아동권리 NGO 세이브더칠드런에 제보된 내용들입니다.

부모가 자녀의 양육 과정을 사진·영상으로 찍어 소셜미디어(SNS)에 공유하면서 발생한 일들이죠.

■ 아이 동의 없이 올린 사진…'자기결정권, 초상권' 침해

부모가 아이의 모습을 찍어 공유하는 걸 '셰어런팅(Sharenting)'이라고 합니다. 공유(Share)라는 영어 단어와 양육(Parenting)이란 영어단어가 합쳐진 신조어죠. 아이의 성장 과정을 기록하거나 가족, 친구들과 공유하려는 의도일 겁니다.

SNS에 공유된 아이들의 양육 과정. 〈사진=SNS캡쳐〉

지난 2021년 세이브더칠드런이 만 11세 이하 자녀를 둔 부모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그 결과 86.1%의 부모가 자녀의 사진이나 영상을 SNS에 올리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나이가 어릴수록 게시물을 올리는 경향은 더 컸습니다.

그런데 사진을 SNS에 올리는 것에 대해 '자녀와 이야기해본 적이 있다'고 답한 부모는 44.6%에 불과했습니다. 과반수가 자녀 동의 없이 자녀의 모습을 공개하고 있는 거죠.

문제는 자녀의 동의 없이 올린 게시물이 아동의 자기결정권과 초상권 등을 침해할 수 있다는 겁니다.

또 아이들을 범죄로 내몰 수도 있습니다. 무심코 올린 사진에 아이의 이름, 성별, 나이, 주소 등이 공개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알몸 사진이 성범죄에 이용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영국의 다국적 금융서비스 기업 바클레이즈는 2030년에 성인이 될 현재의 아동들에게 일어날 신분 도용의 3분의 2는 셰어런팅 때문에 발생할 것이라는 예측을 하기도 했습니다.

■ '셰어런팅 제한법' 발의된 프랑스…자녀-부모 간 소송도 가능

해외에서는 일찍이 셰어런팅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습니다. 관련 법들도 이미 만들어졌죠.

프랑스는 동의 없이 사진을 올렸을 때 자녀가 부모를 상대로 소송을 낼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부모 잘못이 인정되면 최고 1년 이하 징역 또는 한화로 6600만 원(4만 5000유로) 넘는 벌금을 내야 합니다.

최근에는 '셰어런팅 제한법'도 발의됐습니다. 부모가 자녀의 초상권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이의 사진을 올릴 땐 나이와 판단력을 고려해 아이를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시켜야 합니다.

유럽연합(EU)은 개인정보보호법(GDPR) 제17조를 통해 '잊힐 권리 및 삭제권'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아동·청소년을 포함한 모든 정보 주체가 자신과 관련된 개인정보 삭제 요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죠.

독일 아동법은 신생아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인간의 권리를 갖는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산모들의 출산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제작이 금지되기도 했습니다. 아이가 커서 자신의 출생 순간이 담긴 방송을 보고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느끼면 아동 인격권 침해라고 본 겁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의 '셰어런팅 다시보기 캠페인' 홈페이지 〈사진=세이브더칠드런 캡쳐〉


■ 이제 막 논의 시작한 한국…2024년까지 '잊힐 권리' 법제화

우리나라는 이제 막 아동·청소년의 권리에 대한 논의와 법제화를 시작했습니다.

최근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아동·청소년의 '잊힐 권리'를 지원하겠다고 나섰습니다. 만 24세 이하 아동·청소년이 만 18세 미만일 때 썼던 인터넷 게시물 중 스스로 지울 수 없는 게시물을 대신 지워주는 겁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내가 쓴(올린) 게시물'에 한정됩니다. 부모나 제3자가 올린 게시물 삭제는 지원 대상이 아닙니다.

개인정보위 관계자는 “셰어런팅이나 제3자가 올린 글을 지우는 건 표현의 자유나 기본권도 같이 고민해야 한다”며 “법 개정안에 내용을 담아야 해 현재 논의 중에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정부는 부모나 친구가 허락 없이 올린 사진이나 영상도 지울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인 아동·청소년 개인정보보호법을 2024년까지 만들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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