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중개사'인 척하는 '중개보조원'… 최근 2년간 실형 단 한 명도 없다 [뉴스+]
서울에 거주하는 이모(29)씨는 지난해 초 원룸 전세계약을 맺기 위해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찾았다. ‘공인중개사’라고 생각한 사람으로부터 여러 매물을 소개받았는데, 계약서를 쓰기로 한 날은 사무실의 다른 사람이 계약서를 작성해줬다.
이씨가 ‘왜 매물을 소개해준 분 말고 다른 분이 계약서를 쓰냐’고 묻자 “매물을 소개해준 사람은 공인중개사가 아니라 중개보조원이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공인중개사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중개사는 아니었던 것이다.
부동산을 계약할 때 ‘믿을 구석’인 공인중개사 제도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떨어지고 있다. 계약서를 작성할 수 없는 중개보조원을 전면에 내세워 영업하는 경우가 늘어났는데 이들의 ‘이기적’ 영업이 횡행하면서다. 최근 전세사기 국면에서도 범행에 가담한 중개보조원 4명이 입건됐다.
이런 실정인데 최근 2년간 공인중개사법 위반으로 실형을 확정 받은 중개보조원은 단 한 명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본인이 공인중개사인 척 매물을 보여주고 계약을 주도해도 감옥에 갈 일은 없는 셈이다. 중개보조원 제도에 대한 대대적 손질이 필요하단 지적이 나온다.
25일 세계일보가 중개보조원이 공인중개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최근 2년간(2021년 4월~2023년 4월) 유죄판결이 확정된 32건의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29건이 벌금형이다. 나머지 3건은 징역형 집행유예로, 실형을 선고받은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32건엔 중개보조원 관련 문제로 기소된 공인중개사들도 포함돼 있다.
우리나라 부동산 공인중개 제도에서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것 중 하나가 ‘중개보조원’ 제도다. 중개보조원은 공인중개사를 보조하는 사람인데, 이들 역할을 명시해둔 뚜렷한 규정이 없다. 현장에서 이들은 주로 고객을 매물현장으로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중개보조원이 되려면 4시간가량 직무교육만 받으면 되며 별다른 자격증은 필요 없다. 진입장벽은 낮은데 비해 이들을 관리할 가이드라인은 촘촘하지 못한 셈이다.
2020년 5월 15일, 매수자 A씨는 경기 파주에 위치한 한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찾았다. 최근 봐왔던 한 다가구주택에 대한 매매계약서를 쓰기 위해서였다. A씨는 매물을 볼 때 사무실에서 나온 B씨와 동행했다. A씨는 당연히 B씨가 공인중개사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B씨가 A씨와 매도자간 매매대금을 조정해주는 등 매매과정에서 실질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A씨는 줄곧 B씨를 ‘사장님’이라 불렀지만, 알고 보니 B씨는 중개보조원이었다. 매물 중개를 하면 안 되는 인물이 중개를 한 것이었다.
사건을 심리한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재판부는 2021년 8월 B씨에게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명의를 빌려준 공인중개사에게도 벌금 200만원이 선고됐다.
최근 전세사기 국면에서도 전세사기에 가담한 중개보조원들이 문제가 됐다. 서울시 민생사법경찰단은 ‘깡통전세’ 피해를 제보 받아 수사한 결과 전세사기에 가담한 중개보조원 4명을 공인중개사법 위반 혐의로 형사입건했다. 이들은 공인중개사와 결탁해 주로 시세를 파악하기 어려운 신축빌라 매매가격을 부풀려 전세계약을 유도하는 방식을 통해 세입자 보증금을 편취했다.
이에 중개보조원 제도에 대한 대대적 손질이 필요하단 지적이 나온다. 중개보조원이 매물을 보여주는 경우가 흔하지만, 이를 중개보조원이 할 수 있는 업무로 볼 수 있는지도 명확하지 않은 상태다.
양지영 R&C연구소장은 “매물을 보여준다는 건 매물에 대해 향후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라며 “그렇기에 중개보조원이 공인중개사와 동반해서 고객에게 매물을 보여주는 건 괜찮지만, 단독으로 고객에게 매물을 보여주는 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중개보조원의 역할에 대한 분명한 가이드라인을 줄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희진 기자 he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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