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사범 검거 보도, 질병명과 성적지향 정보는 필요할까
[비평] 마약사범 검거 보도에 '성소수자', '에이즈 감염' 강조해 혐오 조장한 KNN
'마약과의 전쟁 선포'에 쏟아지는 마약 보도…혐오 조장 범죄보도 근절돼야해
[미디어오늘 윤유경 기자]
KNN <환각파티 60명 검거, 모두 에이즈 감염>, <에이즈에 감염된 채 모텔서 집단 마약파티한 마약사범 60명 무더기 검거>
부산일보 <마약 판매·투약 60여 명 무더기 검거>, SBS <필로폰 직접 만들어 판매·투약한 마약사범 등 61명 검거>
부산경찰청 마약수사대가 지난 20일 마약사범 총 61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부산경남지역민영방송사 KNN은 당일 홈페이지와 유튜브에서 연속으로 두 개의 보도 영상을 내놨다. <환각파티 60명 검거, 모두 에이즈 감염>, <[적발 현장] 에이즈에 감염된 채 모텔서 집단 마약파티한 마약사범 60명 무더기 검거>란 제목의 기사에서 KNN은 '에이즈'란 정보를 밝혔다. “마약투약자는 모두 성소수자 남성들”이라는 자막에서 이들이 모두 '성소수자'라는 성정체성까지 밝혔다.
사안의 핵심은 마약사범 검거 사실이다. 마약이란 범죄의 원인이 에이즈 감염이나 특정 성적지향이 아님에도, KNN은 '에이즈 감염상태', '성소수자'라는 불필요한 정보를 앞세워 '성소수자들은 마약을 하고 에이즈를 퍼뜨리는 문란한 사람들'이라는 혐오와 편견을 보도에 담아내 에이즈 감염인과 성소수자 등에 대한 혐오를 조장했다.
선정적 썸네일부터 댓글모음 영상까지, 혐오 만들어 재확산하는 보도패턴
KNN 보도를 뜯어보면 자극적인 요소들이 더 발견된다.
유튜브에 올라온 보도 영상의 썸네일과 자막에서도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씌우고 있다. <환각파티 60명 무더기 검거>란 영상의 썸네일은 절반 이상이 붉은 색이고 자막으로 “클럽 집단 마약 파티 남성 60명 모두 에이즈”라고 썼다. '클럽', '마약 파티', '남성 60명', '에이즈'라는 단어를 열거하며 보도를 보는 독자들로 하여금 '마약'보다 '에이즈', '성소수자'에 주목하게 만든 보도다. 실제 댓글에도 마약범죄보다 에이즈 감염 사실이 더 충격적이라거나 성소수자를 비난하는 혐오 내용이 상당수다.
KNN 기사에서 사건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은 점도 문제다. '환각파티', '마약', '에이즈', '성소수자', '60명 전원 남성 검거' 등을 맥락을 삭제하고 나열해 마치 60명의 성소수자들이 환각파티 현장에서 검거됐다는 뜻으로 오해할 소지가 충분하다. 실제 검거된 61명은 한 장소에서 약물을 하고 감염된 것이 아니고, 경찰은 몇 년에 걸쳐 이들을 개별적으로 검거했다. 댓글을 보면 '마약보다 에이즈가 더 큰 문제이며 이들 마약범죄자 60명이 클럽에서 불특정다수를 감염시켰을지 모른다'는 등 60여명이 클럽에서 한 번에 검거된 상황으로 시청자들은 이해하고 있었다.
유튜브 영상에는 '#에이즈', '#성소수자'라는 해시태그까지 게시했다. 해시태그로 인해 유튜브에 '에이즈', '성소수자'를 검색하면 KNN의 보도가 나타나는 것이다. KNN이 마약사건과 무관한 정보를 공개한 순서를 보면 첫 리포트에서는 '성소수자'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는데, 이후 유튜브 영상을 통해 게재한 [적발현장] 영상에서는 자막과 해시태그에서 '성소수자'를 명시했다. 공식 기사에서 다루지 않은 정보를 유튜브 등 다른 채널을 통해 공개하는 것은 책임있는 보도 자세라고 보기 어렵다. 마약 관련 보도에 부적절한 해시태그를 달았기 때문에 에이즈나 성소수자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려던 이들은 다시 혐오 보도에 노출된다.
KNN 기사 자체에 혐오표현이 없을지 모르지만 이러한 보도는 시청자들에게 혐오를 선동한다는 점에서 문제다. KNN의 보도에는 성소수자와 에이즈 감염인들에 대한 수많은 혐오 댓글이 달렸는데, KNN은 혐오 댓글을 다시 '댓글뉴스'라는 영상으로 만들어 내보냈다. KNN은 영상을 통해 '60명 마약사범 검거보다 60명 전원 에이즈 감염이라는 게 더 충격이다', '모두 에이즈 기가찰 노릇이다' 등 혐오댓글을 중계했다. 자신들이 유발시킨 혐오 표현들을 재생산한 꼴이다. 해당 영상 댓글에는 또다시 에이즈 감염인과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댓글이 달렸다. 혐오를 만들어내고, 재확산하는 보도패턴이다.
범죄보도는 시민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면서 범죄피해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하지만 KNN 보도는 선정적이고 과장, 왜곡된 보도로 인해 예방의 효과가 아닌 불안감 내지 분노를 조성하고 있다. 선정성을 이용해 시민들을 '마약'이라는 범죄가 아닌, 자극적인 소수자 혐오 자체에 집중하게 했다. 마약범죄 사건 원인과 무관한 이들의 성적지향이나 병명 정보를 공개해 클릭수를 늘리는 전형적인 선정적 범죄보도의 사례다.
KNN 인용해 혐오보도 함께한 언론…혐오 조장하며 여론 왜곡해
타 매체들 또한 KNN 보도를 인용하면서 혐오보도를 함께했다.
여성조선 <집단 마약환각 파티男 60명 전원 에이즈…코레일 직원도 포함>, 쿠키뉴스 <집단 환각파티 남성 60명 검거…모두 에이즈 감염자>, MBN <'집단 마약환각 파티' 벌인 男 60명…에이즈 감염자도>, 이투데이 <'집단 환각파티' 벌인 60명, 모두 에이즈 감염자>(2023.4.21)등 매체들은 '집단 환각 파티를 벌인 남성 60명이 경찰에 검거될 당시 모두 에이즈에 감염된 상태였다는 보도가 나왔다'며 KNN 보도를 인용했다. 제목에도 KNN처럼 모두 '에이즈 감염'을 명시했다.
반면, 부산일보와 SBS, YTN 등은 같은 사안에 대해 마약 범죄와 관련한 정보 위주로 보도했다.
부산일보는 지난 20일 기사에서 “부산경찰청 마약수사대는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마약 사범 61명(제조사범 2명·판매사범 25명·투약자 34명)을 검거해 30대 A 씨 등 17명을 구속 송치하고 나머지 44명을 불구속 송치했다고 밝혔다”며 “앞서 경찰은 2021년 7월 경북 주택가 원룸에서 필로폰을 제조한 마약사범 B씨를 붙잡았으며, 이후 A 씨가 공범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추가 수사를 벌여왔다”고 설명했다.
지난 20일 YTN 기사 <모텔 화장실에서 필로폰 제조…클럽에서 집단 투약>, SBS 기사 <필로폰 직접 만들어 판매·투약한 마약사범 등 61명 검거>에도 '에이즈 감염'과 '성소수자'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마약사범 검거 사건을 전달하기에 이 정도 수준의 정보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하지만 앞선 선정적인 보도 때문에 마약범죄 관련 정보전달에 충실한 기사에도 오히려 혐오를 조장하는 댓글이 달렸다. '에이즈 환자라는 사실은 왜 기사에서 쏙 빼냐'며 지적하는 댓글을 보면 KNN의 보도와 파생된 다른 매체들의 보도가 오히려 혐오를 조장하는 방식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마약과의 전쟁 선포'에 쏟아지는 마약 보도…혐오 조장 범죄보도 근절돼야해
최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마약 검거의 중요성 강조하면서 언론은 한 장관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마약범죄에 대한 경각심과 관심도가 높아진 상황에서 언론의 마약 검거 보도는 더 신중해야하는데, 오히려 이러한 분위기와 소수자 혐오를 이용해 언론사가 클릭 장사를 해선 안 된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HIV·에이즈 감염인 등 사회적 차별을 받는 소수자도 입장을 냈다.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는 지난 23일 성명을 내고 “언론이 성소수자과 HIV감염인을 겨냥하여 악의적으로 보도하고 있다”며 “윤석열 정부가 최근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자 언론도 부화뇌동 중인가. 게다가 이들은 사건을 하나같이 자극적으로 과장하고 성소수자와 HIV감염인 혐오로 연결한다. '검거당시 단체 에이즈 감염'이라니, 검거당시에 HIV테스트라도 했단 말인가. KNN 뉴스는 책임질 수 있는 보도인가”라고 반문했다.
아울러 “검거한 이들의 HIV감염사실을 밝힌 까닭은 무엇인가. 기사는 약물에 HIV감염을 가져다 붙이면서 '환각파티'라고 부른다. 직접적인 연관성을 갖지 않는 질병사실과 약물사용을 애써 이어붙이면서 문란하고 위험한 이들로 과잉 묘사하는 것”이라며 “여기에 적발된 이들의 직종을 하나하나 열거하면서 위험한 이들이 당신 곁에 있는 이웃이라는 점을 굳이 밝히는 전형적인 레토릭은 공포를 조장하는 의도가 아니고 무엇인가. 사건을 어떻게든 선정적으로 연출하는 언론은 위기를 예방하고 불식하기보다 위기를 조장하고 위기에 취약한 이들을 사회에서 고립시킬 뿐”이라고 비판했다.
질병관리본부(현 질병관리청)는 지난 2006년 언론인을 위한 에이즈 길라잡이를 발표하고 업데이트 중이다. △감염인을 범죄자로 취급하는 용어 △자극적이고 위협적인 용어 △공포감을 조성하거나 에이즈와 관련 없는 혐오적 이미지 △감염인의 감염 경로 △성 정체성 △사생활 보도 등을 자제하라고 권고했다.
지난 2020년 1월 한국기자협회·국가인권위원회 등 10개 단체가 만든 혐오표현 미디어 반대 실천선언은 “'동성애가 에이즈를 유발한다'거나 '난민때문에 범죄가 늘어난다'는 식의 보도는 사회적 소수자 때문에 다수 국민이 손해를 보고 고통을 받게 되므로 이들을 사회에서 배제 또는 추방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진다”며 소수자를 열등한 존재로 규정해 이들에 대한 편견을 확산시키거나 이들이 위험을 야기할 것이란 공포를 부추기는 표현에 대해 비판했다.
소성욱 한국청소년·청년감염인커뮤니티알 활동가는 25일 미디어오늘에 “이 뉴스들은 성소수자, HIV 감염인들을 욕하고, 비난하고, 헐뜯으며 혐오를 부추기는 용도로만 사용되고 있어 당사자인 감염인 동료들이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어하고 있다”며 “어떤 질병이나 약물에 취약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성소수자든 아니든 그 취약함을 어떻게 지원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게 사회의 역할이지, 비난하는 것이 언론과 사회의 역할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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