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ㅎㄱㅎ’에 창원간첩단까지…국보법 위반 사건, 잇달아 국민참여재판 신청
제주 지역에서 북한의 지령으로 이적 단체를 만든 혐의를 받는 이른바 ‘ㅎㄱㅎ(한길회의 초성)’ 간첩단부터 경남 창원의 자주통일 민중전위(자통)까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는 피고인들이 잇달아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하고 있다. 검찰 측은 국가보안법 사건 재판을 공개적으로 진행할 경우 어떤 증거가 확보됐는지 등 중요한 정보를 공범이나 북측에서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며, 국민참여재판을 허용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국보법 위반 혐의를 받는 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 A씨와 진보당 제주도당 위원장 B씨, 전직 진보당 제주도당 위원장 C씨 등 ㅎㄱㅎ 관계자들이 지난 21일 제주지법 형사2부(재판장 진재경)에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다. 같은 날 자통 총책 D씨도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재판장 강두례)에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다.
국민참여재판은 무작위로 선정된 배심원들이 재판에 참여해 유·무죄에 대한 의견을 내는 제도다. 배심원 평결과 양형 의견에는 구속력이 없지만, 재판부가 이를 참작해 선고를 내릴 수 있다.
ㅎㄱㅎ 측 변호인은 전날 제주지법에서 열린 재판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는 북한이 반국가 단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며 “북한이 반국가 단체라는 대법원 판례가 현 시점에서 유효한지, 이들이 국가의 존립 안전과 자유 민주주의 기본 질서를 위협했는지 평범한 국민의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자통 측 주장도 비슷했다. 재판에 출석한 변호인은 “낡은 국보법을 근거로 피고인을 처벌할 가치가 있는지, 국민의 상식적 시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국민참여재판을 여는 건 말도 안 된다는 입장이다. ㅎㄱㅎ 재판에서 검찰 측은 “일반 사건과 달리 보안을 유지할 사항이 많다”며 “(국민참여재판을 할 경우) 앞으로 진행될 안보 수사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사건 관련자들의 신분이 일반에 공개될 경우 국가 안보에 위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내비쳤다.
국민참여재판이 재판 지연을 심화하는 부작용도 초래한다는 게 검찰 입장이다. 검찰 측은 “(ㅎㄱㅎ 사건은) 공소장 분량이 120쪽이고 증거 기록이 1만여 쪽에 달해 심리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측되는데, 이런 상황에서 국민참여재판까지 진행하면 재판이 더욱 길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피고인들이 국민참여재판을 청구하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2014년에는 법원이 북한 보위부 직파 간첩 홍모씨에 대해 국민참여재판을 진행하려다가 배심원 신변 보호 등을 이유로 취소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당시 “피고인 의사를 존중해 5일간 국민참여재판을 진행하려 했으나, 변호인 측이 추가로 신청한 증인과 증거가 너무 많아 며칠 만에 끝내기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공안 사건을 주로 담당했던 검사 출신 변호사는 “피고인들 입장에선 국민참여재판을 하게 되면 좋고,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크게 손해를 보는 것은 없으니 일단 신청은 하고 보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국보법 위반 사건을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할 경우 수사 정보가 유출돼 심각한 안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고위 검사는 “수사기관이 어떤 증거를 확보했는지 등을 공범이나 북측에서 실시간으로 알 수 있기 때문에, 예전부터 간첩 사건 재판은 비공개로 이뤄지는 게 일반적이었다”며 “공개 재판을 넘어 국민참여재판까지 하는 것은 사건의 성격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이 검사는 “국민참여재판을 진행하면 증인 입장에선 위협을 느낄 수 있으며, 간첩 사건은 1심 구속 기간(6개월) 내에 집중 심리하는 게 중요한데 재판 절차가 불필요하게 길어지는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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