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노조도 있는데 노동절에 못 쉰다고?[이슈 산책]

이연호 2023. 4. 25.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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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휴일,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 적용..노동절은 미포함
국회서 공무원 노동절 휴무 법안 발의 잇따라..논의는 '지지부진'
헌재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지위 등 고려할 필요 있어"
MZ세대 중심 불만 폭주.."노동절에 '공노비' 실감"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 다음달 1일 근로자의날(이하 노동절)을 앞두고 공무원들 사이에서 자신들만 쉬지 못하는 문제를 두고 새삼 논란이 일고 있다. 엄연히 노동조합까지 결성한 노동자임에도 노동절이 ‘법정 기념일인 유급 휴일’일 뿐 ‘법정 공휴일’이 아니기 때문에 쉬지 못하는 것은 공정성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경상북도공무원노동조합연맹.
공노총, 국회 방문해 공무원 노동절 휴무 건의...헌법소원 ‘기각’

25일 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공노총)에 따르면 이 단체는 지난 19일 국회를 찾아 공무원의 노동절 휴무 보장을 건의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비단 올해만 나타난 현상은 아니다. 그동안 공무원들은 노조를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이 문제를 제기해 왔다.

현행법상 노동절은 ‘근로기준법’과 그에 따른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에 근거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이 적용되는 사업장만이 대상이기 때문에, 이 법에 우선해 국가공무원법, 지방공무원법 등의 적용을 받는 113만 공무원 노동자들은 노동절에도 쉬지 못한다.

공무원들의 휴일은 국가공무원법 제67조 및 대통령령 제31930호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의 적용을 받는데, 이 법에서 노동절은 공휴일이 아니다.

이와 관련 지난해 9월 헌법재판소는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 때문에 공무원이 노동절 유급 휴일을 보장 받지 못하고 기념 행사나 집회에 참석하지 못해 평등권과 단결권, 집회의 자유를 침해 당했다”는 내용의 헌법소원을 재판관 7대 2 의견으로 기각했다. 청구인인 교육공무원들은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에 따라 5월 1일은 유급 휴일인데 공무원만 그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은 부당하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지난 2015년에도 비슷한 헌법 소원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헌재는 지난해에도 심판 대상인 대통령령에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내놨다. 재판부는 “공무원의 근로 조건을 정할 때는 공무원의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지위 및 직무의 공공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공무원은 관공서의 공휴일(일요일 포함)과 대체 공휴일뿐만 아니라 ‘국가공무원 복무 규정’ 등에서 토요일을 휴일로 인정받고 있다”고 판시했다.

다만 이석태·김기영 재판관은 반대 의견에서 노동절의 취지를 고려할 때 관공서 휴무일로 지정하지 않은 것은 불합리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국회에서도 지난 2020년 국민의힘 전주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이수진(비례) 의원이, 2021년에는 더불어민주당 안호영 의원이 근로자의날 명칭을 노동절로 바꾸고 노동절에 공무원 노동자의 휴일을 보장하는 내용의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각각 발의했지만 논의는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각 지자체, 노동절 ‘특별 휴가’ 부여로 MZ세대 불만 잠재워

그러나 이 같은 상황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특히 권리 침해와 차별 문제에 더욱 예민한 MZ세대 공무원들을 중심으로 공무원의 노동절 휴무 배제 문제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중앙 정부 부처 6급 공무원 A(28) 씨는 “우리들끼리 ‘우리는 공노비’라고 자조하는데 5월이 되면 이 같은 사실을 실감한다. 노동절에 못 쉬니 ‘노동자로서 보호 받지 못하는 신분’이라는 생각에 상대적 박탈감까지 생긴다”고 말했다. 이어 “노동절에 쉬지도 못하는데 올해는 코로나19가 끝났다고 다음 날인 2일엔 사실상 회식이나 다름없는 체육대회까지 한다고 하니 벌써부터 귀찮기만 하다”고 푸념했다.

서울시 자치구청 공무원 B(37) 씨는 “미취학 유아를 자녀로 둔 사람으로서 매년 노동절만 되면 걱정부터 앞선다. 어린이집은 쉬기 때문에 육아 공백이 발생하기 때문”이라며 “휴일이 아니기 때문에 개인 연가를 사용하거나 하루 아이를 봐줄 사람을 찾아야 하는데 그럴 때마다 왜 이런 고생을 해야 하는지 답답하기만 하다”고 토로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에서는 노동절에 단체장 권한인 ‘특별 휴가’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소속 공무원들의 불만을 달래는 모양새를 연출하고 있다. 경기도는 올해 아프리카돼지열병, 산불 대응 등으로 고생한 공무원들에 대한 사기 진작 명목으로 직원들에게 노동절인 5월 1일 특별 휴가 하루를 부여했다. 이 밖에 경기도의회, 제주특별자치도의회도 올해 노동절에 의회 사무처 전 직원을 대상으로 특별 휴가를 부여키로 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관계자는 “공무원도 당연히 노동자이기에 노동절에 쉬는 게 맞고 해외에서도 노동절엔 공무원과 비공무원 구분 없이 노동자는 다 쉰다”며 “요즘엔 특히 ‘공정성’이 화두가 되고 권리 수호에 대한 의지가 명확한 MZ세대들이 많이 들어오다 보니 노동절 휴무 배제에 대한 공무원들의 불만 정도도 심해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작년에 모 광역지자체의 경우 수뇌부가 회의를 통해 노동절에 특별 휴가를 부여키로 결정했음에도, ‘근로자의 날이라서 휴가를 주는 것으로는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려보냈다”며 “실제는 휴가를 주면서도 정작 그 명분을 노동절로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은 어떤 이데올로기적인 측면에 대한 고려가 있지 않은가라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해외 사례를 보면 유럽, 중국, 러시아 등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은 노동절을 5월 1일로 정하고 쉰다. 또한 날짜와 상관없이 노동절에 쉬는 나라들에선 하나같이 공무원들 역시 근무하지 않는다.

이연호 (dew9012@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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