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로 ‘뇌출혈’ 콜센터 상담원…대법 “업무상 재해”
콜센터에서 일하다 뇌출혈로 쓰러진 노동자에 대해 대법원이 업무상 재해를 인정했다. 대법원은 노동시간이 주 52시간을 넘지 않았더라도 감정노동이라는 콜센터 업무의 특성과 근무형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업무상 재해를 인정할 수 있다고 했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콜센터 상담원 A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요양 불승인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5일 밝혔다.
A씨는 2018년 2월부터 서울 영등포구 소재 콜센터 상담원으로 일했다. 전국 600개 가맹업체 무인주차장 이용자를 상대로 상담 업무를 맡아 ‘석간조’로 오후 2시부터 11시까지 주5일 근무했다. 같은 해 9월 A씨는 사업장 근처에서 식사하다 반신마비와 실어증 증세를 보이며 쓰러졌다. 병원에서 뇌출혈 진단을 받았다.
A씨는 업무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뇌출혈이 발생했다며 요양급여를 신청했지만 공단은 거부했다. 정기적인 근무시간 외 업무 부담이 가중될 만한 요인이 없고 발병 전 일주일간 업무시간도 41시간 정도여서 고용노동부의 과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했다. A씨는 이 처분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냈다.
1심은 A씨 손을 들어줬다. 이른바 ‘감정노동자’인 A씨의 업무와 근로 형태 등이 정신적·육체적 부담을 주었을 것으로 판단했다. 반면 2심은 A씨의 업무강도가 뇌출혈을 일으킬 정도는 아니었다며 판단을 뒤집었다. A씨가 전화상담 과정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인정할 만한 자료가 없다고 했다. 지병인 고혈압이 악화돼 뇌출혈에 이르렀을 뿐이라는 것이다.
대법원은 공단이 요양급여를 지급해야 한다는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A씨의 노동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업무로 인한 육체적·정신적 부담이 뇌출혈 발병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노동시간이 주 평균 52시간을 초과하지는 않았지만 ‘정신적 긴장이 큰 업무’를 담당해 높은 수준의 업무 스트레스에 장기간 노출됐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콜센터 상담 업무는 민원인으로부터 심한 항의와 욕설을 듣기도 하는 민원상담·처리 업무로서, 업무량을 떠나 업무 자체가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위험성이 있다”며 “필연적으로 과도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업무 형태에 다양한 요인이 결합해 뇌혈관계 질환 등이 발생할 가능성까지 커졌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대법원은 A씨가 일한 ‘석간조’는 3교대 다른 조들에 비해 업무 부담이 높고 사업장에서 마련한 악성민원 대응 방안도 제대로 운영되지 않았다고 했다. 휴게시간이나 휴게시설이 보장되지 않은 점, 육아와 1시간 이상 걸리는 출퇴근 시간 탓에 A씨의 수면시간이 최대 6시간에 미치지 못한 점도 고려했다.
대법원은 “뇌출혈의 주된 발생 원인을 (A씨의 지병인) 고혈압이라고 보더라도, 적어도 A씨의 만성적인 과중한 업무나 스트레스가 고혈압과 겹쳐서 뇌출혈을 유발했거나 촉진·악화시켰을 가능성이 크다”며 “고혈압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뇌출혈과 A씨의 업무 사이 상당인과관계를 부정할 수 없다”고 했다.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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