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검찰을 사랑한다면 [아침햇발]
[아침햇발]
이춘재 | 논설위원
‘정말로 사랑한담 기다려 주세요. 사랑한단 그 말들도 당신의 행동 하나 진심만을 원하죠.’ 벚꽃 시즌마다 소환되는 3인조 밴드 버스커버스커(리더 장범준)의 여러 히트곡 가운데 2012년 발표한 ‘정말로 사랑한다면’은 윤석열 대통령이 짬을 내서 자주 들었으면 하는 노래다. 윤 대통령은 검사였던 2013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검찰 조직을 대단히 사랑한다’고 말했다. ‘나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로 유명해진 그 자리였다. 윤 대통령은 집권 뒤 자신이 한 말을 지키려는 듯 검찰 출신들을 대거 요직에 앉혔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박민식 보훈처장, 이완규 법제처장 등 검사 출신 장차관급만 13명이다. ‘검찰 정권’이라는 수식어가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검사들이 잘나가는 세상이다. 대통령실과 여당은 부인하지만, 내년 4월10일 총선을 앞두고 나도는 ‘검사 50명 출마설’도 전혀 근거 없는 뜬소문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버스커버스커는 노래한다. ‘사랑한단 말로는 사랑할 수 없다’고. ‘너무 쉽게 뱉은 말 너무 쉬운 사랑은 다 거짓말’이라고. 윤 대통령이 진짜 검찰을 사랑한다면 검찰을 가만히 놔둬야 한다. 자신이 사랑하는 후배들이 정치권을 기웃거리지 않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데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그래야 검찰이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고, 진짜 ‘공익의 대변자’가 될 수 있다. 그게 검찰을 사랑하는 대통령이 검찰에 진심으로 바라는 모습이 아닐까. 정말로 검찰을 사랑해서 역량 있는 후배들을 정치권에 수혈하고 싶다면, 그들이 정치인의 기본 자질을 갖출 수 있도록 기다려줘야 한다.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과 김진태 강원지사처럼 오랜(!) 정치 경력을 자랑하는 검사 출신들도 대형 사고를 치는 마당이다. 하물며 법복을 벗자마자 국회의원 배지를 단 신참들은 어떨까. ‘검사 물’이 제대로 빠지지 않은 그들이 어떤 사고를 칠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윤 대통령의 ‘말로만 하는 사랑’은 검찰에 엉뚱한 신호를 준다. 대검찰청은 최근 ‘고발사주’ 의혹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손준성 서울고검 송무부장에 대해 3년 가까이 질질 끈 감찰 끝에 비위 혐의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2020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에 비판적인 정치인과 언론인에 대한 고발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에 사주한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의해 기소됐다. 검사가 비위 혐의로 기소되면 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심의를 정지하는 게 일반적이다. 손 검사처럼 1심 재판도 끝나기 전에 봐준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들다. 나중에 법원에서 유죄 판결이 나면 감찰 무혐의 처분과 충돌하기 때문에 최소한 1심 재판은 지켜보는 것이다. 그래야 여론의 후폭풍도 피할 수 있다. 하지만 윤석열 사단이 장악한 검찰은 여론 따윈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대통령을 배출한 조직이라는 자부심이 지나친 탓일까. 손 검사가 건넨 고발장에는 윤 대통령, 김건희 여사,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명예훼손 피해자로 적시돼 있다. 손 검사는 윤석열 검찰총장 시절 총장의 ‘눈과 귀’로 불리는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이었다. 따라서 손 검사를 잘 봐줄수록 정권이 검찰을 사유화한다는 의심을 받게 된다. 그런데도 한 장관은 보임 후 첫 검찰 인사에서 그를 영전시키기까지 했다. 보스에게 충성한 검사는 확실히 챙긴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던 걸까.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 혐의로 기소됐다가 지난 2월 1심 재판에서 무죄가 선고된 이규원 검사와 비교하면 손 검사에 대한 특혜가 더욱 두드러진다. 이 검사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해외도피를 막았다는 이상한(!) 혐의로 문재인 정권 말에 기소됐다. 대검은 곧바로 감찰위윈회를 열어 정직 6개월의 중징계를 의결했다. 그는 문재인 정권이 검찰개혁 차원에서 추진한 ‘검찰 과거사 진상조사단’에 참여한 탓에 검찰에 미운털이 단단히 박혔다. 특히 건설업자 윤중천을 면담한 뒤 작성한 보고서에 윤 대통령의 이름을 넣었다는 이유로 허위공문서 작성 혐의로 별도로 기소된 상태다. 검찰은 최근 ‘김학의 사건’ 1심 무죄 판결에 항소하면서 무려 400쪽 가까운 항소이유서를 제출했다. “기소되면 인생 절단(결딴)난다”는 윤 대통령의 후보 시절 발언처럼, 검찰은 지금 이 검사의 인생을 결딴내고야 말겠다는 결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대통령의 말로만 하는 검찰 사랑은 이렇듯 부작용이 크다.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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