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파시스트 미화 안돼”…스페인, 파시스트 유해 이장
스페인 정부가 독재와 파시즘 유산을 청산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거대한 기념관에 묻힌 파시스트 지도자의 유해를 꺼내 눈에 덜 띄는 장소로 이장했다.
24일(현지시간) 엘파이스 등에 따르면 스페인 정부는 파시즘 정당 팔랑헤당의 창시자 호세 안토니오 프리모 데 리베라의 무덤에서 유해를 꺼내 다른 곳으로 옮겼다.
이는 공공장소에서 프랑코 독재 정권의 상징을 제거하고 관련 인물이 미화되지 않도록 하는 ‘민주주의 기억법’에 따른 조치다. 이 법에 따르면 스페인 독재와 내전과 관련된 어떤 사람도 ‘눈에 띄는 위치’에 묻혀서는 안 된다.
프리모 데 리베라의 유해는 지난 60여년간 스페인 내전에서 희생된 수만명의 유해와 함께 ‘전몰자의 계곡’이라고 불렸던 쿠엘가무로스에 안치돼 왔다. 이는 그의 뒤를 이어 팔랑헤당을 이끌었던 스페인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지시에 따라 만들어진 곳으로, 프랑코 체제의 상징으로 여겨져왔다. 프랑코는 스페인 내전에서 사망한 전몰자들을 기린다는 명목으로 강제노동을 동원해 공동 묘지와 대성당을 만들었다. 이후 프리모 데 리베라의 무덤이 이곳으로 옮겨졌고, 프랑코 역시 사후 그의 곁에 안장됐다.
스페인 정부는 이곳을 독재정권의 암울했던 시절을 기억하고, 50만 명의 내전 희생자들을 기리는 기념관으로 탈바꿈하겠다는 계획이다. 앞서 2019년 프랑코의 유해 역시 다른 곳으로 이장됐다.
이오네 벨라라 사회권리부 장관은 “프리모 데 리베라의 유해 발굴은 민주주의를 위한 희소식”이라며 “파시스트들은 영묘와 거리에서 제거돼야 한다”고 밝혔다.
마리아 헤수스 몬테로 재무부 장관 역시 전날 “파시즘 희생자들에게 ‘정의’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배상하기 위한 법을 준수하기 위해 결정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묘지 이장은 그의 유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비공개로 진행됐다. 그러나 수백 명의 파시스트 지지자들이 모여 현수막을 흔들면서 그의 이름을 외쳤다. 이들은 파시스트식 경례를 하며 팔랑헤당 찬양가를 불렀다. 이 과정에서 일부 지지자들이 묘지에 강제 진입을 시도하다가 경찰과 충돌해 3명이 체포됐다.
펠릭스 볼라뇨스 총리실 장관은 “이번 유해 발굴로 독재 정권을 미화하지 않는 장소로 기념물을 전환하는 데 한 걸음 더 나아갔다”며 “독재정권과 연관된 그 어떤 사람이나 이데올로기도 그곳에서 존경받거나 칭찬받아선 안 된다”고 밝혔다.
최서은 기자 ciel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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