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간이 절대적 기준 아냐…주38시간 콜센터노동자 ‘과로’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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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와 산업재해의 인과관계를 판단할 때 절대적인 근로시간뿐 아니라 교대제 및 야간근로 등 근무형태 등을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2018년 2월 파견직 노동자로 무인 주차장 안내 콜센터에서 일하던 ㄱ씨는 일한 지 7개월째 되던 2018년 9월 근무 중 갑자기 오른쪽 반신 마비와 실어증 증상을 보이며 병원으로 실려가 ‘뇌기저핵 출혈’ 진단을 받았다. 600여개 무인주차장 가맹업체 전화 문의 응대 업무를 했던 ㄱ씨는 당시 3교대 근무에서 ‘석간조’였는데, 매일 오후 2시부터 밤 11시(목·일 휴무)까지 야간근무를 했다. ㄱ씨가 일하는 시간은 무인주차장 이용객들의 퇴근 및 귀가 시간과 겹쳐 다른 시간보다 업무 강도가 높았고, 폭언이나 성희롱 등 악성 민원도 많았다. 다만 발병 전 ㄱ씨의 12주 동안 1주 평균 업무시간은 37시간49분으로 주 40시간이 되지 않았다. 뇌출혈 진단 뒤 ㄱ씨는 업무로 인한 질병이라며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 신청을 했지만 공단은 두차례 이를 거절했다. 결국 ㄱ씨는 법원에 요양불승인처분 취소 소송을 냈다.

1심을 맡은 서울행정법원은 ㄱ씨의 질병과 업무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ㄱ씨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ㄱ씨의 근무시간이 ‘과로 기준’에 해당하지 않을뿐더러 고혈압이 뇌기저핵 출혈의 직접적 원인이라며 1심 판결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고혈압임에도 고혈압 약을 복용하지 않은 게 발병 가능성을 높인 중요한 원인이었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고혈압과 격무 모두 뇌기저핵 출혈에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ㄱ씨의 업무와 뇌기저핵 출혈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며 산업재해 요양급여 신청을 인정하지 않은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25일 밝혔다. 대법원은 “만성적인 과중한 업무나 과도한 스트레스가 고혈압과 겹쳐 뇌기저핵 출혈 질병을 촉진·악화시켰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이어 대법원은 2심 법원이 고용노동부 고시를 근거로 업무와 질병 간 인과관계를 지나치게 엄격하게 해석했다고 판단했다. 고용노동부 고시는 발병 전 12주 동안 1주 평균 업무시간이 52시간을 초과하는 경우 업무시간이 길어질수록 질병과의 관련성이 증가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대법원은 “‘업무시간’은 업무상 과로 여부를 판단할 때 하나의 고려요소일 뿐 절대적인 판단 기준이 될 수 없다”며 “(고용노동부 고시에서의) ‘만성적인 과중한 업무’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업무의 양·시간·강도·책임, 휴일·휴가 등 휴무시간, 교대제 및 야간근로 등 근무형태, 정신적 긴장의 정도, 수면시간, 작업 환경, 그밖에 근로자의 연령, 성별 등을 종합하여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