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플러스]'교육이 없는 나라' 저자 이승섭 KAIST 교수 "입시전쟁으로 교육이 사라져"

2023. 4. 25.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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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교육이 없는 나라'가 화제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 교육 상황에서 학교는 학원을 이길 수 없다"며 "교육 기관인 학교와 입시 준비 기관인 학원이 입시 준비 장에서 경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에듀플러스는 '교육이 없는 나라' 저자인 이 교수를 만나 왜 교육이 없다고 생각하는지, 그럼 해법은 무엇인지를 물었다.

-엘리트 코스를 밟은 교수가 '교육이 없는 나라'를 썼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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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분야요? 좋아하는 걸 오랫동안 하면 그게 첨단이 돼요”
이승섭 KAIST 교수는 "한국의 학생들이 배움의 즐거움을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마송은 기자 running@etnews.com

신간 '교육이 없는 나라'가 화제다. 세계 최고 교육열을 자부하는 대한민국. 자녀 교육에 최선을 다하고, 학생들 학습량은 세계적으로 손꼽히고, 학업 성취도도 세계 1~2등을 차지한다. 사람들은 지난 세월 우리나라가 이룬 급격한 경제 성장도 교육열 덕분이라 한다. 그런 우리나라가 '교육이 없는 나라'라니. 왜 일까.

이 책에서는 우리나라 교육은 입시만을 위해 설계됐다고 지적한다. 교육은 없고 입시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초·중·고생 전체 사교육비 총액은 26조원으로 역대 최고치다. 드라마 '스카이캐슬'로 묘사되는 입시전쟁으로 진정한 교육은 사라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서열화된 대학, 경쟁력 없는 교육, 이로 인해 불행한 사회. 오늘날 우리나라 교육 현장에서 이뤄지는 일들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책 저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 최고 이공계 대학인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4년간 입학처장을 지낸 이승섭 기계공학과 교수다. 이 교수는 서울대 기계설계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에서 석·박사를 마친 전형적인 엘리트다. 삼성종합기술원 연구원과 포항공대 기계공학과 교수를 거쳐 2003년부터 현재까지 KAIST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KAIST에서 학생처장·입학처장·글로벌리더십센터장·교학부총장을 역임했다.

2019년부터 써온 칼럼과 교육 강연 내용을 정리했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 교육 상황에서 학교는 학원을 이길 수 없다”며 “교육 기관인 학교와 입시 준비 기관인 학원이 입시 준비 장에서 경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당연히 KAIST 입학처장을 역임했기에, 입학 비법도 물었다. 학부모에게는 허탈한 얘기지만, 의외의 말이 돌아왔다. “첨단을 따라가면 영원히 첨단 못해요.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하면 그게 첨단이에요.” 백종원과 강형욱씨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회에도 공헌해야 한다는 말이다. 에듀플러스는 '교육이 없는 나라' 저자인 이 교수를 만나 왜 교육이 없다고 생각하는지, 그럼 해법은 무엇인지를 물었다.

-첨단만을 따라가지 말라고 했는데요.

▲제가 첨단을 해봤잖아요. 이렇게 말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덧없어요. 사실 저는 운이 좋았어요. 30여년 전에 제가 연구했던 MEMS(Micro Electro Mechanical System) 기술이 세계적으로 관심을 모았어요. 지금 인공지능(AI)처럼요. 물론 국내 연구자는 제 위로는 없었죠. 그런데 미국, 일본, 독일에는 오래전부터 연구한 사람들이 많았어요. 제가 새로운 것을 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이미 연구하던 분야였던 거죠. 지금 AI가 첨단이지만 이미 30~40년 전부터 연구한 이들이 많아요. 오랜 연구 끝에 지금 성과가 나온거죠. 그런데 지금 첨단분야라고 해서 따라가면 영원히 첨단 못해요. 대신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하면 언젠가 한 번은 첨단을 하게 될 거예요. 저는 마이크로(Micro)라는 단어를 아주 좋아해요. 학문적인 첫사랑이죠. 대학 때 우연히 읽은 미국 잡지 리더스 다이제스트(Reader's Digest)에서 마이크로 관련 글을 읽고 매료가 됐어요. 그때부터 나는 이 분야를 연구해야지 생각했어요. 제가 좋으니까 계속 연구했던 거죠. 첨단이어서 뛰어든 건 아니었어요.

-엘리트 코스를 밟은 교수가 '교육이 없는 나라'를 썼는데요.

▲책을 내면서 이 책을 누가 읽을까 생각했어요. 누가 읽을지는 모르겠지만 많이 팔릴 것 같지는 않았어요. 대학가는 방법도 아니고. 하하하. 그런데 누군가는 말해야 하는 이야기라고 봤어요. 만약 건물에 불이 났다고 생각해 보세요. 일반 사람은 불을 보고 지나갈 수 있죠. 그런데 쉬는 날이라도, 119대원이 불을 봤다면 뛰어가겠죠. 교육 문제에 대해 제가 말을 안하면 직무유기라고 생각했어요. 이 책을 내고 나니 제 인생 큰 숙제를 내려놓은 기분이에요. 제가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니까요.

사실 저는 공부 하나로 성공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제가 생각해도 우리나라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과거에 만들어 놓은 교육제도로 아이들을 길러내고 있는 현실에 대한 답답함도 있었고요. 공부 외 재능이 있는 아이들은 공부가 모든 것의 기준이 되는 지금의 교육제도가 얼마나 억울하겠어요. 사교육비로 허리 휘는 학부모의 억울함은 또 어떻고요. 지금 한국은 학생들 신경쇠약 걸리게 하는 교육만 있어요. 나쁜 교육이죠. 실생활에서 도움되는 교육은 없고 변별력 높인다고 어렵고 까다로운 문제만 내죠. 교육에서 공정 과정이 돼야 하는데 목적이 돼 버렸어요.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은 무엇인가요.

▲학생에게 배움의 즐거움을 가르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죠.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배웠을 때 희열, 즐거움 그런 것이 우리 교육에서는 찾아볼 수 없죠. 학교 공부를 미리 배우는 학원에서는 즐거움이 있을까요? 학원에서도 배움의 즐거움은 없죠. 억지로 배우거나 외웠기 때문이에요. 배운다는 것은 즐거워야 해요. 이스라엘에서는 아이들이 새로운 것을 배우면 초콜릿을 줘요. 배움이 이렇게 달콤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의미라고 해요.

-챗GPT 등장 후 질문 능력이 중요시 되는데요.

▲질문하기 전에 더 중요한 것이 있어요. 바로 재미와 상상력이에요. 학생이 왜 질문을 할까요. 재밌으니까 자기가 상상한 것이 맞는지 궁금하니까 묻는 거예요. 저는 미래 세대가 열정, 상상력, 재미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어요. 그래야 어떤 것에 대해 질문하고 싶은 마음이 들거든요. 독서도 마찬가지죠. 아이가 책을 읽고 싶을 때 읽어야 하는데 억지로 책을 읽으라고 하면 안돼요. 물론 독서의 중요성은 더 설명할 필요가 없죠. 그런데 자칫 학생에게 독서가 목적이 될까 걱정이 되는 것이죠. 저는 아이가 책을 읽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읽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줄 것 같아요.

이승섭 카이스트 교수. 사진=마송은 기자 running@etnews.com

-책에서 교육은 없고 입시만 있다고 했는데요.

▲요즘 초등학생은 학원 휴강하는 날에만 놀러간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충격적인 이야기죠. 중·고등학생은 중간·기말고사 끝나면 밀린 학원 숙제를 해야 한다고 하고요. 초등학교 때부터 입시에 매달리는 사회에 교육이 있을리 없죠. 교육이 없는 나라예요.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사회 공감대가 형성되고 정부 결정권자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입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민간위원회를 만들어 사회적 공론의 장이 마련돼야 해요. 저는 현재 입시 문제 대안으로 대학 차별화를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거점 국립대 등록금을 파격적으로 낮추고 대신 수업 퀄리티를 명문대처럼 높인다면 어떻게 될까요. 예를 들면 대전에서 1등하는 학생이 서울대 대신 충남대 입학을 선택할 수 있도록 만들자는 거죠.

-최근 반도체 학과 신설이 늘고 있는데요.

▲반도체 학과를 만드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반도체 학과 설립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자는 거죠. 사실 반도체 인력이 부족하면 대학에서 학생을 더 뽑아서 육성하면 된다는 논리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런데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가장 좋은 해결책이 아닐 확률이 높아요. 한번 더 생각해 보고 심도 있게 타당성을 검토해 보자는 이야기죠. 학과를 만든다는게 뭘까요. 학과를 만들기 위해 커리큘럼부터 교수 채용 등 준비해야 할 것이 많은데 단기간에 학과를 만들었을 때 교육 질이 담보될 수 있을까요. 사실 학과 신설을 논의한 이들 중에서도 실제로 반도체학과를 운영해 본 경험을 가진 사람은 없을 거예요. 졸업생이 나오는 시기의 반도체 경기가 어떻게 될지도 고민해 봐야 할 문제라고 봐요. 삼성전자가 경기가 나쁘면 인력 채용을 안 할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저는 반도체 인력 강화를 위한 대안으로 입시제도를 바꾸고 학과를 만드는 것보다 직업 전문학교를 만들어 반도체 인력을 집중 양성하는 방안이 어떨까 생각해요.

-요즘 인재가 갖춰야 할 자질은 무엇인가요.

▲재미있는 얘기를 하나 할게요. 제 지인의 자제 분이 외국 사모펀드 회사에 다녀요. AI 때문에 금융 분야도 일자리가 줄지 않겠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말하더래요. 일자리는 줄겠지만 어떤 AI도 클라이언트랑 골프는 칠 수 없다고요. 무릎을 탁쳤어요. 기술이 발전할수록 결국 인간의 소통 능력은 더욱 중요해 질 수밖에 없다는 거죠. 기술 연구도 혼자서는 할 수 없어요. 여러 사람들과 올바른 소통하면서 연구해야 해요.

-학부모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걱정하지 말고 여유를 가지세요. 자녀 학업 문제로 걱정하는 마음 알아요. 하지만 길게 봤으면 좋겠어요. 아이를 꼭 과학고에 보내야 하고, 이번 시험은 꼭 잘 봐야 하고, 좋은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면 대학 진학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학부모가 많죠. 실제 그렇지 않아요. 초등학교 1학년 때 공부 잘한다고 끝까지 잘하는 것도 아니에요. 마지막으로 더 중요한 이야기인데 만약 현재 아이가 서울대나 KAIST 등에 뜻이 있다면 박사 학위까지 생각하세요. 혹여 원하는 대학 학부에 진학을 못해도 정말 학문에 뜻이 있다면 대학원 가면 돼요. 학부 입학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대학원에 진학해 연구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봐요. 명문대 학부 진학을 못해도 그 안에서 스스로 열심히 연구하고 노력하면 길은 열려 있어요. 정말이에요.

이승섭 KAIST 교수. 사진=마송은 기자 running@etnews.com

-우리나라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요.

▲교육이 있는 나라로 만들어야 해요. 그 교육은 경쟁력이 있어야 하고 학생, 학부모, 사회가 행복한 교육이 돼야 하죠. 최종적으로 우리나라가 미래 사회를 이끄는 선진국이 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교육의 힘이고 역할이에요.

-아이를 어떻게 키우면 좋을까요?

▲20년 후에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바뀔까요. 지금 현재 첨단 분야가 20년 뒤에도 첨단일까요.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하세요. 자기가 원해서 선택한 일을 하는 것만큼 근사한 일은 없어요.

이승섭 KAIST 교수가 에듀플러스 독자들에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사진=마송은 기자 running@etnews.com

마송은 에듀플러스 기자 runni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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