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이 숲 와봤다면 공항 짓겠다 했겠습니까”
인간의 무관심이 만들고 욕망이 파괴하는 나무들의 천국
동쪽 멀리 대한해협 난바다가 시야에 꽉 찼다. 산등성이 따라 남북으로 국수봉(해발 264m)까지 소사나무 수천 그루가 덩실덩실 숲바다를 이뤘다. 2023년 4월13일 오전 11시 부산 가덕도 외양포마을에서 동남쪽으로 한 시간 산길을 타고 가덕도 최남단 봉우리 남산봉(해발 188m)에 올랐다. 목청 큰 까마귀가 초록 물결을 헤엄치듯 활공하며 울었다. 깊은 숲에서 큰오색딱따구리 소리가 울렸다. 박새들이 재잘댔다.
소사나무는 다 커도 높이 5m가량으로 별로 안 큰 나무다. ‘작은 서어나무’라는 이름은 소서목(小西木)이 변해 만들어졌다. 굵게 한 줄기를 뻗어 가지를 내지 않고, 뿌리 쪽에서 여러 줄기를 뻗는 것이 특징이다. 어느 줄기 하나 곧게 자란 것 없이 바람에 몸을 맡긴 듯 자유롭다. 수피(나무껍질)는 흰 피부에 검은색 핏줄이 터질 듯 튀어나온 꼭 힘센 보디빌더의 근육 같다. 소사나무와 그 친척인 서어나무·개서어나무·까치박달나무 등 서어나무속(屬)에 머슬트리(Muscle Tree·근육나무)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다.
100년 된 소사나무가 이룬, 유일한 거대 자연군락지
영어 이름은 ‘코리안 호른빔’(Korean Hornbeam·한국 서어나무)이지만 우리나라에 소사나무 군락은 흔치 않다. 이런 거대한 소사나무 자연군락지는 가덕도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다. 인천 강화도 참성단 옆 소사나무는 홀로 서 있는데, 2009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인천 영흥도 십리포해변에 소사나무 군락이 있지만 300그루 규모에 150여 년 전 사람들이 바람막이 용도로 조성한 인공숲이다.
동행한 이성근 부산그린트러스트 상임이사와 이곳 소사나무들의 크기를 측정했다. 큰 개체들은 뿌리 쪽 둘레가 3~4m, 10개 안팎 되는 줄기의 가슴높이 둘레는 각각 20~70㎝였다. 참성단 소사나무(뿌리 부분 둘레 2.7m, 약 150살) 정도 되거나 그 이상인 소사나무가 수두룩했다.
“(외양포마을에서) 올라오며 봤던 서쪽 숲하고 여기 동쪽 숲의 나무 밀도가 다른 거 확인했나요? 이쪽 숲(국수봉 동사면)은 빽빽하지 않아요. 오랜 경쟁 과정에서 숲이 안정화한 거죠. 100년 가량 된 거로 보고 ‘가덕도 100년 숲’이라고 부릅니다.” 2021년부터 환경운동연합 조사위원 등으로 가덕도 국수봉 일대를 40회 이상 다니며 육상생물을 조사·연구한 이성근 상임이사가 설명했다.
숲은 초기에 여러 식물이 빼곡하게 자리잡아 서로 경쟁한다. 기후와 토질 등 식생이 잘 맞아 쑥쑥 크는 나무가 승기를 잡는다. 수관(나무의 가지와 잎)을 뻗어 자기 자리를 점차 넓힌다. 수관으로 볕을 막으면 그 아래 다른 나무들의 생육이 제한된다. 그렇게 숲은 성장·성숙한다.
“산불이 나거나 해서 나지(맨땅)가 되면 처음엔 선구자인 초본류가 오죠. 침엽수가 뒤를 따르고 활엽수가 옵니다. 몇십 년이 지나야 침엽수가 자생지를 뺏기면서 내륙에는 참나무류가 번성하고 섬지방에서는 거기서 잘 자라는, 이를테면 소사나무가 우점하는 거예요. 시간이 지나 비슷한 시기에 뿌리내린 나무들이 노령림이 돼 쓰러지면 그동안 잘 자란 어린나무들이 자리를 대신하면서 숲은 유지되죠.”(허태임 식물분류학 박사)
이곳 가덕도 남산봉·국수봉 일대 소사나무숲은 어른 나무 수관을 적당히 뻗을 정도인 대여섯 걸음 이상 공간이 나 있고, 그 사이로 작은 나무와 풀이 자랐다. 아직은 봄이라 볕이 가지 사이로 스며들었지만 한두 달 더 지나면 대낮에도 어둑어둑하다고 한다.
일본 통신사 도모코 알림이 떴다
소사나무 군락뿐 아니다. 국수봉·남산봉 사이 계곡부 쪽 아래로 발길을 옮기니, 개서어·고로쇠·단풍·굴참·졸참·느티 등 겨울에 잎을 떨구는 낙엽활엽수가 소군락을 이루거나 어우러져 하늘을 나눠쓰며 숲을 지배했다. 5월이면 하얀 꽃을 피울 마삭줄 덩굴이 나무를 타고 올라가 초록 잎 사이로 드문드문 붉은 잎을 피웠다. 가덕도 북쪽 산에 흔한 곰솔·적송 등 소나무류는 가슴높이 둘레 3m 이상 거목 정도만 한 열 그루쯤 될까.
“(국수봉·남산봉 일대에) 바닷바람이 강한 능선부에 열악한 조건을 뚫고 소사나무 군락지가 선형으로 발달해 있어요. 가덕도 숲은 인간이 건드리지 않은 100년 정도 된 오리지널 숲입니다. 1910년를 보면 그때까지만 해도 이곳은 무입목지(나무가 없는 지대), 즉 황무지였거든요. 황무지가 사람이 건드리지 않고 그냥 뒀을 때 어떻게 되는지, 숲의 원형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입니다. 이렇게 오래된 오리지널 숲은, 설악산 고지대의 200~300년 된 숲을 제외하면 우리나라에선 거의 보기 힘듭니다.”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는 이렇게 평가했다.
가덕도 ‘100년 숲’은 인간의 무관심으로 우연히 만들어졌다. 1904년 러일전쟁 직후 일제는 대한해협의 군사거점 확보를 위해 가덕도 외양포마을 주민들을 내쫓고 ‘진해만 요새 사령부’를 설치했다. 그때부터 사람 출입이 제한됐다. 미군·국군이 군사 기지를 이어받아 운영하면서 지금까지 이르렀다. 특히 국수봉·남산봉의 동쪽은 경사가 가팔라 걸어다니기 어렵고, 해안가 쪽은 해식애(낭떠러지)가 발달해 배가 접근하기도 어렵다.
계곡 아래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늘 푸른 잎의 ‘가덕도 동백군락지’(부산시 지정 기념물 제36호)가 낭떠러지 위에 펼쳐졌다. 군인들의 순찰로를 동백나무 지붕이 감쌌다. 길 좌우로 너덜 지형을 따라 저절로 형성된 50~100살 2500여 그루의 동백 군락이 가덕도 동남쪽 해안에 띠를 만들었다. 하얀 수피에 두툼한 짙은 초록 잎, 그리고 노래 가사처럼 ‘울다 지쳐서 빨갛게 멍’든 꽃잎과 그 속에 촘촘하게 박힌 샛노란 수술이 색의 대비를 이뤘다.
바지 주머니 속 휴대전화가 요란했다. ‘현재 사용 중인 이동통신사 도코모(DOCOMO)’라고 알림이 떴다. 도코모는 일본 이동통신사다. 로밍 안내 문자메시지도 떴다. 가덕도는 한국 통신사들로부터도 ‘버려진 섬’ 취급을 받는 걸까.
산과 숲에 사는 생명을 죽여야 지역경제가 산다니
이 100년 숲에 사형선고가 내려졌다. 10여 년 전부터 표 가 궁한 정치인들이 기회만 되면 ‘가덕도 신공항 개발’ 이슈를 띄웠다. 2021년 2월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가덕도 신공항 건설 때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해주는 특별법을 제정했다. 사업성이 없어도 공사를 강행할 수 있는 터를 팠다. 같은 해 5월 프랑스에선 2시간30분 안에 이동할 수 있는 구간의 비행기 운항을 금지하는 ‘기후 복원 법안’이 통과됐다. 서울~부산은 고속철도 KTX로 2시간30분 거리다.
국수봉·남산봉·성토봉 산을 깎아 그 돌과 흙으로 앞바다를 메워 활주로를 놓는 방안이 확정됐다. 공사를 빨리 그리고 저렴하게 짓기 위한 방법이란다. 애초에 소사·동백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멀쩡한 산과 숲과 여기에 기대 사는 숱한 생명체를 수장시켜야 침체된 지역경제가 산단다. 2023년 4월14일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로 가덕도 신공항 개항 시기가 2035년에서 2029년으로 크게 앞당겨졌다. 2024년 12월 공사가 시작된다. 흐드러지게 핀 이곳 동백도, 바람을 닮은 소사나무도 이제 살날이 1년 남짓….
“목소리를 내줘야 할 전문가도, 환경단체도 가덕도 신공항 문제에는 말을 아낍니다. ‘어쩔 수 없지 않으냐’는 태도예요. (신공항 반대 운동) 동력이 안 생깁니다. 직접 이 숲을 보고서야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을 가집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 숲에 와봤다면 신공항을 짓겠다고 했겠습니까. 제일 두려운 건 이런 거죠. 지역을 살린다면서 가덕도를 없애는 데 동의할 수밖에 없는 정서들. 언제든 또 자기 팔 하나 자르는 데 동조하리라는…. 사실 이건 지역경제 활성화다, 국토 균형발전이다라는 미명 아래 행해 지는 대학살이거든요.” 40년가량 부산에서 환경운동을 해온 이 성근 상임이사가 활주로가 들어설 바다를 한참 바라봤다.
국수봉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하트 모양의 얼룩덜룩한 잎 아래 짙은 보랏빛 종 모양 꽃을 단 족두리풀, 쫑긋 난 잎 뒷면이 노루의 귀처럼 털로 덮였다고 이름 붙은 노루귀가 지천에 자랐다. 오랜 세월 잎이 떨어지고 미생물이 분해하기를 반복해 쌓인 부엽토를, 도토리 찾는 멧돼지가 코로 까뒤집어 젖은 흙이 곳곳에 드러나 있었다. 능선부에 다다르니 이곳 멧돼지들이 등긁이로 쓰는 소나무 한 그루의 밑동 쪽에 껍질이 벗겨져 반질반질했다. 군데군데 털이 끼어 있었다. 아랑곳도 않겠지만 천연기념물 수달과 삵의 가족, 팔색조·솔개·매·새호리기 등 수십 종의 새가 이 숲에 기대어 산다
법대로 주민 밀어내? “우린 안 나갈 낀데…”
죽은 나무도 이 공간에선 쓰레기가 아니다. 죽은 갈참·졸참엔 딱정벌레류가 알을 까 애벌레를 길렀고, 딱따구리가 찾아 허기를 채웠다. 어린나무들의 양분이기도 하다. 초록색 풀잎 위에 보란듯이 새빨간 홍날개가 더듬이를 곧추세웠다. 외양포마 을로 돌아가는 고갯길에서 이성근 상임이사가 말했다.
“이 고개에 아직 이름도 없습니다. 곧 없어질 테지만 이름 하나 붙여줍시다. 희망고개? 아니면 절망고개?”
말 한번 제대로 못하고 밀려나갈 운명에 처한 건 가덕도 동식물만이 아니다. 2023년 4월18일 국토교통부가 대항동(대항포·외양포·새바지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전략환경영향 주민 설명회’를 열었다. 김영석(62) 대항동 주민대책위원장이 “착공 일정까지 나왔잖아요. 그런데도 아직 주민 이주 대책이 안 나왔어 요. 물어보니 기본설계가 나와야 한다네요. 순서가 잘못된 거 아닌가요? 환경영향평가도 목표를 정해놓고 걸림돌이 되는 걸 제거할 생각이잖아요. 일사천리로 가겠다는 거잖아요. 그냥 법대로 (주민들을) 밀어내면 된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라고 말했다.
“우린 안 나갈 낀데….”
글·사진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도움말: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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