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사로 보는 세상] 개의 머리를 다른 개에 이식하다

예병일 연세대원주의대 의학교육학과 교수 2023. 4. 25.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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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제공

● 인간복제보다 더 엽기적인 머리이식의 선구자

1997년 2월 복제양 돌리가 태어나서 7개월째 잘 자라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사람들이 충격에 휩싸였다. 복제에 의해 동물이 태어난다면 사람도 복제가 가능할 것이고, 복제된 사람들이 내 주변에 돌아다닐 수 있다는 사실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복제’라는 말에 사람들이 끔찍한 생각을 가진 것은 복제기술을 소재로 한 '블레이드 러너', '저지 드레드', '가타카'와 같은 1980-90년대에 화제를 모은 영화에서 모두 복제에 의해 일어나는 끔찍한 상황을 소재로 했기 때문일 것이다. 

복제양 돌리가 어떤 방법으로 태어났는지를 이해한다면 영화나 소설 속의 복제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일란성 쌍둥이도 경험이 다르면 서로 다른 사람처럼 보이듯이 나를 복제한다 해도 생김새만 아주 비슷할 뿐(그나마 영양적으로 다르게 음식을 섭취하면 키 차이가 날 수도 있다) 나와 완전히 똑같은 사람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지만 일반인들이 복제기술을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시 필자가 복제양 돌리의 탄생과정이 엽기적이 아니라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 다른 예를 든 적이 있다. 발생과정에 있는 개구리의 배세포를 일부 파괴하여 머리가 없는 올챙이를 탄생시킬 수도 있고, 원숭이 두 마리의 머리를 서로 바꿔서 몸에 붙이는 머리 이식수술도 성공했음을 지적한 것이다. 

이 두 가지 기술이 더 발전하면 사람의 발생과정에서 배세포의 특정부위를 파괴하여 머리가 없는 사람이 태어나도록 한 후 내 머리를 이어붙여 새로운 몸을 얻는 것이 가능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미 강산이 두 번 반이 넘게 바뀌었지만 더 새로운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머리 없는 개체를 만들어 머리를 이식하는 것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고, 실제로는 연구과정에서 부딪히는 엄청난 난관을 여러 번 극복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원숭이 머리 이식이 성공한 것은 과연 사실일까?

Robert Joseph White. 위키미디어 제공

● 원숭이 머리이식을 시도한 화이트

미국 신경외과 의사 화이트(Robert Joseph White, 1926~2010)가 원숭이의 머리 이식을 처음 성공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성공여부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단 머리이식을 시도한 것만은 사실이다.

화이트는 1953년에 하버드대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그는 평생 1만회 이상 수술을 했고, 신경외과 의사뿐 아니라 생명의료윤리 전문가로 활발한 활동을 한 학자다.

가장 유명한 그의 업적은 1970년에 원숭이의 머리를 다른 원숭이 몸에 이식한 것이다. 목 부위 척추를 절단했으므로 원숭이는 목 아래에 마비가 생겼지만 뇌는 잘 보존되었으므로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맛보는 감각을 유지할 수 있었다. 원숭이는 9일만에 죽었으니 성공이라 해야 할지 실패라 해야 할지 판단하기가 어렵다.

단 원숭이가 사망한 이유가 수술 실패라기보다는 면역 거부반응이 원인이었으므로 머리 이식이 성공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화이트는 그 후로 더 깊이 있는 연구를 중지했지만 1990년대가 되자 하반신을 못쓰는 유명인을 상대로 다시 수술을 이용하여 치료하려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그는 40년 동안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학교(Case Western Reserve University) 의과대학에서 신경외과 교수로 일하며 능력으로는 크게 인정받았지만 윤리적으로는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화이트는 말년에 당뇨병과 전립선암으로 고생하다 84세이던 2010년에 세상을 떠났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 머리 이식수술보다 먼저 시도된 심장이식 수술

장기이식의 초기 역사에 대해서는 1월 3일자에 올린 “수천년 이어진 장기 이식...'이식용' 부족 해결해야(https://www.dongascience.com/news.php?idx=57853)”라는 글에서 이미 소개한 바 있다.

피를 뿜어 온몸 곳곳으로 보내는 기능을 하는 심장은 5분 이상 기능이 정지되면 세포와 조직이 죽어가기 시작하고, 더 시간이 지나면 결국 죽게 된다. 따라서 콩팥, 조혈모세포, 피부 등과 비교하면 연구가 늦은 편이었다. 

중국의 고대 기록에서 기원전 3세기에 죽은 사람을 살려 낸 기록이 있는 편작(BC 407~310)이 심장이식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믿기는 어렵다. 그는 병든 군인 두 명에게 약을 써서 정신을 잃게 한 후 수술로 여러 장기를 바꾸었다고 한다. 두 병사들은 3일 후 아무 문제 없이 깨어났다고 하지만 진실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심장 수술중에 온몸으로 피를 보내기 위해서는 심장으로 연결된 혈관을 인공펌프에 연결하여 심장을 제거하고 새로 넣어주는 동안 인공펌프가 피를 뿜어 수술받는 사람의 혈관으로 보내야 한다. 1912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카렐(Alexis Carrel, 1873~1944)의 업적은 혈관의 길을 바꾸는 혈관 문합술을 개발한 것이었다.

이 카렐의 연구팀은 1905년에 개의 심장을 이식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카렐은 수술 후 개가 잠시 생존하는 것을 확인했고, 그 후로 많은 학자들이 반복하여 실험을 했지만 오랜 기간 성공을 하지 못했다.

1933년에 미국 메이요 클리닉에서 일하던 만(Frank C. Mann, 1887~1962)은 카렐의 연구를 응용하여 개를 이용한 실험을 했다. 그는 여러 번 실험하여 최고 8일까지(평균 4일) 심장 박동을 유지하게 할 수 있었다. 그 후로 여러 의학자들이 개의 심장을 이식한 후 수일 동안 생존하게 할 수는 있었지만 큰 발전이 없는 가운데 당시 소비에트연방(아래 소련)의 중심국이었던 러시아에서 데미코프(Vladimir Petrovich Demikhov, 1916~1998)가 좋은 결과를 얻고 있었다.

그가 이미 1940년대부터 다양한 장기의 이식수술을 시도했다는 사실은 오랜 기간 다른 나라에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 1960년에 쓴 책 '생체 장기의 실험적 이식수술 (Experimental Transplantation of Vital Organs)'이 1962년에 영어로 번역되면서 그의 업적이 알려졌다.

그는 콩팥, 부신, 췌장, 간장, 전체 위장관 등 다양한 장기의 이식수술을 시도했다. 개의 하반신 전체를 이식하기도 하고, 다리를 다른 개에 이식하기도 했으며, 머리와 심장이식도 시도했다.

데미코프는 1946년에 개의 심장이식을 성공하기 위해 약 250차례나 연습을 했고, 최대 32일까지 생존하게 할 수 있었다. 자신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미래에는 심장이 고장난 환자를 심장이식수술로 치료가능할 것이라는 예언을 했다.

심장이식수술을 최초로 성공했다고 알려져 있는 이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바나드(Christiaan N. Barnard, 1922~2001)다. 1922년에 네델란드 출신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1946년에 케이프타운의과대학을 졸업한 그는 30대 초에 미국 미네소타대학에서 연수를 하고 모교로 돌아왔다. 마침 데미코프의 책이 발행되자 1960년과 1963년에 데미코프의 연구실을 방문했고, 평생 그를 멘토이자 스승으로 받들었다.

바나드는 저체온법을 이용하여 성공률을 높였으며, 1967년에 당뇨병을 동반한 허혈성 심장질환 환자에게 교통사고로 뇌사에 이른 젊은 여성의 심장을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 수술 후 환자는 온몸의 많은 부위가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었으나 13일째에 발생한 녹농균감염이 치료되지 않는 바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1968년 1월 2일, 바나드에게 두 번째로 심장이식을 받은 환자가 593일간 생존하면서 심장이식수술이 널리 이용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도 1992년 11월에 첫 수술이 시행된 후 지금은 이용가능한 장기만 확보되면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기 위한 심장이식이 시행되고 있다.

개머리 이식에 성공한 데미코프. 위키미디어 제공

● 머리이식 수술의 진짜 선구자와 이를 가능하게 한 원동력은

머리이식 수술의 진짜 선구자는 화이트보다 훨씬 빨리 개의 머리를 다른 개의 몸에 옮겨 붙인 데미코프가 그 주인공이다.

1916년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데미코프는 3세 때 아버지가 사망을 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동물과 가까이에서 지내고, 같은 나라 의학자인 파블로프(Ivan Petrovich Pavlov, 1849~1936, 개를 이용한 조건반사 실험을 토대로 1905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의 실험에서 큰 영감을 받아 평생 개를 이용한 실험을 많이 했다는 의견도 있다. 

데미코프는 대학재학중인 1937년에 세계 최초로 인공 심장을 만들어 개에 이식하여 2시간 생존하게 함으로써 계속해서 심장이식에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다. 1940년에 모스크바주립대를 졸업하고, 제2차 세계대전에 군의관으로 참전하기도 한 그는 전쟁이 끝난 후 모스크바주립대학교로 돌아왔다. 

그는 주로 개를 이용하여 1946년부터 심장, 폐, 간 이식을 시도했다. 동물의 생존 기간이 늘어났고, 그는 이식수술방법을 변형시켜 가면서 성공가능성을 계속 높여갔다. 
 

개머리 이식 수술. 위키미디어 제공

1953년에 심장이식을 한 원숭이가 7년간 생존함으로써 장기이식의 성공확률이 점점 높아지는 가운데 원숭이를 이용한 머리 이식이 처음 성공한 것은 1954년이었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개의 목 부분에 다른 개의 머리를 옮겨 붙이는 그의 실험은 심장이식수술시 심장의 혈관을 문합하는 기술을 응용하여 진행되었으며, 윤리적으로 큰 비판을 받기도 했다.

1950년대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냉전이 심했던 시기였으므로 그의 업적이 서방세계에 알려지지 않은 것이 그나마 비판을 덜 받는 이유가 되었다. 그는 이식술에 대한 자신의 업적을 모아 1960년에 논문으로 발표했고, 이 논문은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사람의 장기를 이식하여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일에 관심이 많았지만 소련의 특성상 동유럽 일부 국가를 방문하여 시범적으로 수술법을 보여주는 것 외에 외국 학자들과 활발한 교류를 할 수는 없었다. 대신 자신의 실험실을 방문하는 이들을 환대해 주었다.

1960년대부터 전세계적으로 그의 업적이 인정되면서 많은 이들이 그의 실험실을 다녀갔다. 그를 흠모한 바나드는 세계최초로 심장이식수술을 성공하기도 했다.

그는 1998년 11월 22일에 동맥류 파열로 세상을 떠났다. 소련의 학자라는 점이 그의 명성을 더 크게 할 수 있는 기회를 막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윤리적으로 큰 비판을 받아 마땅할 그의 연구가 다른 연구자들에 비해 조용하게 진전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전성기를 보낼 때의 소련이 외부와 어느 정도 차단된 사회였다는 점도 중요한 요인이라 할 수 있다.

※ 참고문헌
1. Robert M. Langer. Vladimir P. Demikhov, a pioneer of organ transplantation. Transplantation Proceedings. 43(4):1221-2, 2011
2. Paul Craddock. Spare Parts: The Story of Medicine Through the History of Transplant Surgery. St. Martin's Press. 2022
3. Grant Segall. Dr. Robert J. White, famous neurosurgeron and ethicist, dies at 84. Sep. 16, 2010, https://www.cleveland.com/obituaries/2010/09/dr_robert_j_white_was_a_world-.html
4. 황필홍 외. 낙태, 포르노, 인간복제. 도서출판 고원. 1999

예병일 연세대원주의대 교수

※필자소개

예병일 연세대학교 의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C형 간염바이러스를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텍사스 대학교 사우스웨스턴 메디컬센터에서 전기생리학적 연구 방법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의학의 역사를 공부했다.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에서 16년간 생화학교수로 일한 후 2014년부터 의학교육학으로 전공을 바꾸어 경쟁력 있는 학생을 양성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평소 강연과 집필을 통해 의학과 과학이 결코 어려운 학문이 아니라 우리 곁에 있는 가까운 학문이자 융합적 사고가 필요한 학문임을 소개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주요 저서로 『감염병과 백신』,  『의학을 이끈 결정적 질문』, 『처음 만나는 소화의 세계』, 『의학사 노트』, 『전염병 치료제를 내가 만든다면』, 『내가 유전자를 고를 수 있다면』, 『의학, 인문으로 치유하다』, 『내 몸을 찾아 떠나는 의학사 여행』, 『이어령의 교과서 넘나들기: 의학편』, 『줄기세포로 나를 다시 만든다고?』, 『지못미 의예과』 등이 있다.

[예병일 연세대원주의대 의학교육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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