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루브르박물관 '룸 711'에서 모나리자는 무얼 본 걸까

오현주 2023. 4. 25.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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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아티스트 제우스 한국 첫 개인전 '룸 711'
다빈치 '모나리자' 전시된 '룸 711'서
루이비통·제프 쿤스 벌인 만찬 꼬집어
실제 퍼포먼스 옮긴 '이미지 도둑' 등
'흘러내리는 로고' '명화 재해석' 망라
일명 '호크니 수영장' 연작 마지막 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7월6일까지
프랑스 아티스트 제우스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서 연 한국 첫 개인전 ‘룸 711’에 내놓은 자신의 작품 ‘이미지 도둑: 루브르박물관의 마법’(2022) 앞에 섰다. 자본·권력의 도구가 된 예술의 실태를 비판하기 지난해 7월 12일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 룸 711에서 벌인 퍼포먼스의 결과물을 그대로 옮겨왔다(사진=노진환 기자).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지난해 7월 12일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박물관. 마지막 관람객까지 빠져나가고 오롯이 명화와 명작만이 남아 적막감마저 감돌던 그때, 웬 수상쩍은 한 남자가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큰 키의 그 남자는 노란색 레인코트 차림에 얼굴 전부를 가리는 표범 문양의 마스크를 쓰고 머리엔 중절모까지 눌러 썼다. 그런 그가 날렵하지만 조용하게 찾아든 곳은 루브르박물관의 ‘룸 711’.

아니, 잠깐만. 박물관에 룸넘버가 있다고? 그래, 있단다. 루브르박물관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그 방을 ‘알 만한 사람들’은 그렇게 부르고 있다는 거다.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1503∼1506 추정), 파울로 베로네세의 ‘가나의 결혼식’(1563) 등이 걸려 있는 이탈리아관이다. 연간 600만명, 하루 2만명씩 보고 간다는 ‘모나리자’의 유명세야 다 아는 바이고, ‘가나의 결혼식’ 역시 만만치 않은 작품이다. 루브르가 소장한 미술품 중 가장 큰 그림(667×994㎝)이라니까. 그런데 야심한 시간, 노란색 레인코트 남자는 왜 그 중요한 방에 ‘잠입’한 건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서 연 제우스의 한국 첫 개인전 ‘룸 711’ 전경. 안쪽으로 루브르박물관에서 ‘모나리자’ ‘가나의 결혼식’ 등이 걸린 방을 지칭하는 ‘룸 711’에서 제우스가 실제로 벌인 퍼포먼스의 결과물을 그대로 옮겨온 ‘이미지 도둑: 루브르박물관의 마법’(2022)이 보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퍼포먼스를 하기 위해서였다.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루브르박물관, 그것도 바로 그 ‘룸 711’에서 벌어졌던, 어떤 지극히 사적인 모임의 실체를 세상에 폭로하려 한 일종의 고발 퍼포먼스였다.”

이것 봐라. 말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명화가 줄지어 걸려 있는 루브르박물관 ‘룸 711’에서 사적인 만찬이 벌어졌다는 것도 놀라운데, 그 만찬을 꼬집는 퍼포먼스를 바로 그 장소, 룸 711에서 했다고?

“루이비통과 제프 쿤스의 야합이랄 수밖에”

노란색 레인코트의 그 남자는 프랑스 작가 제우스(Zevs·46). 어린시절부터 시작한 ‘낙서’로 여전히 그래피티 아티스트로 소개되기도 하는 그가 미스터리한 스토리를 몰고 한국에 왔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국내 첫 개인전 ‘룸 711’을 열고 바로 그날 밤 루브르박물관 룸 711에서 있었던 ‘사건’을 펼쳐내고 있다.

지난해 7월 12일 루브르박물관 룸 711에서 퍼포먼스를 벌이기 직전의 제우스(위)와 퍼포먼스 중인 제우스(아래). 4년 전쯤 루브르박물관 룸 711에서 명품기업 루이비통과 미국 미술가 제프 쿤스가 벌인 사적인 만찬을 꼬집는 내용이다. 아래 줄인형처럼 나체로 매달린 쿤스를 조정하는 나무손잡이 자리엔 L과 V로 상징한 루이비통 로고가 선명하다. 전시에 나온 영상을 다시 촬영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그렇다면 그 ‘룸 711’에선 두 차례에 걸쳐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처음은 이거다. “지난해 우연찮게, 4년 전쯤 루브르박물관 룸 711에 있었던 사적 모임에 대해 알게 됐다. 루이비통이 친분 있는 유지를 초대해 저녁식사를 대접한 일인데. 그 자리에는 미국 유명 미술가 제프 쿤스가 있었다.”

루이비통과 제프 쿤스라. 어쩌면 그날 모임은 루이비통과 쿤스의 컬래버레이션을 기념한 자리였을 수도 있다. 2017년 루이비통은 쿤스와 함께 루브르박물관의 작품을 복제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고 다빈치, 반 고흐, 고갱 등의 그림이 그려진 상품을 만들어내기도 했던 터. “손님들에게 쿤스의 작업이 들어간 상품을 하나씩 나눠줬다”는 제우스의 ‘증언’이 이를 뒷받침한다.

왜 그 장면이 제우스의 눈에 그토록 거슬렸을까. “아티스트와 기업 간의 협업은 하이레벨에서만 이뤄진다. 스트리트 아트에선 그런 일이 없다. 게다가 가장 공적인 위치여야 할 루브르박물관조차 고급 사교의 장으로 공간을 내준 게 아닌가.” 루이비통은 루브르박물관의 막강한 후원자로 알려져 있다. 그런 이유로 루브르가 루이비통에게 내주지 말아야 할 것까지 내줬다는 게 제우스의 문제의식이다. 자본과 결탁하는 예술, 권력의 대상으로 도구화한 예술을 그대로 목도할 수 없었던 거다.

제우스가 한국 첫 개인전 ‘룸 711’에 내놓은 자신의 작품 ‘이미지 도둑: 루브르박물관의 마법’(2022) 앞에 섰다. 자본·권력의 도구가 된 예술의 실태를 비판하기 위해 지난해 7월 12일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 룸 711에서 벌인 퍼포먼스의 결과물을 그대로 옮겨왔다. 액자 안에 연결한 두 장의 ‘만찬’ 이미지 중 위쪽은 ‘그날’을 연상시키는 만찬장이고, 아래는 (룸 711에 걸려 있는) 파올로 베로네세의 ‘가나의 결혼식’이다(사진=노진환 기자).

과연 제우스의 대응은 어땠을까. 이번 개인전에 메인작품으로 내건 대작 ‘이미지 도둑: 루브르박물관의 마법’(2022)이 그 답이다. 루브르박물관 ‘룸 711’에서 두 번째로 벌어진 그 일, 제우스가 실제로 벌인 퍼포먼스의 결과물을 그대로 옮겨왔다. 제우스는 위아래로 나뉜 두 장의 ‘만찬’ 이미지(그날을 연상시키는 만찬장과 베로네세가 그린 ‘가나의 결혼식’)가 든 커다란 액자 중앙에서 사람 형태를 오려내고 그 팔과 다리에 줄을 연결해, 다시 액자 앞에 매다는 퍼포먼스를 했더랬다.

졸지에 줄인형이 돼 나체의 뒷모습으로 매달린 인물은 쿤스, 그를 조정하는 나무손잡이 자리엔 L과 V로 상징한 루이비통 로고가 선명하다. “1년여간 구상하고 완성했다. 나체사진은 2014년 쿤스가 어느 피트니스센터에서 나체로 운동하던 모습을 구해 페인팅한 거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서 연 제우스의 한국 첫 개인전 ‘룸 711’ 전경. 한 관람객이 제우스의 대표작업인 ‘리퀴데이티드 로고’로 제작한 ‘흘러내린 애플’(2021) 연작을 둘러보고 있다(사진=노진환 기자).

“특정 기업 죽이자는게 아니라 시스템 고장 보여준 것”

제우스는 무분별한 소비·개발을 고발하는 예술가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글로벌 유명 기업·브랜드 로고를 소환해 ‘흘러내리기 기법’으로 만든 작품은 그를 일약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올려놨다. 우연찮은 계기였단다. 비가 쏟아붓던 어느 날 밤. 창밖으로 그 비를 다 맞고 있던 샤넬, 루이비통, 코카콜라 등의 광고판이 보였던 건데. 어째 그 로고들이 눈물을 흘리는 듯했다는 거다. 순간 머리에 스치는 게 있었고 ‘리퀴데이티드 로고’(Liquidated Logo) 작업은 그렇게 시작했다. 이후 ‘눈물 흘리는 로고’가 분기점을 맞은 건 미국 작가 데이비드 호크니의 수영장 명화에 예의 ‘흘러내리는 로고’를 접목하면서다. 호크니의 ‘더 큰 첨병’(1967)의 맑은 물이 석유회사 셸의 로고에서 빠져나온 검은 기름으로 더럽혀지는 장면(‘오일 페이팅 셸’ 2015)은 세상을 적잖은 충격에 몰아넣었다.

제우스의 한국 첫 개인전 ‘룸 711’ 전경. 제우스의 회화작품 ‘오일 페이팅 셸’(2015·왼쪽)과 그림 속 배경을 꺼내 조형물로 세운 설치작품이 나란히 놓였다. 제우스는 서울전을 끝으로 일명 ‘호크니 수영장’으로 불린 이 연작을 마무리한다고 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번 개인전에 제우스는 이 모든 작업을 망라했다. 리퀴데이티드 로고의 대표작 ‘샤넬’(블랙&화이트·2018)을 앞세워 ‘흘러내린 애플’(2021)을 7가지 색버전으로 내걸었다. 서울전을 기념하듯 ‘LG’ ‘삼성’ ‘현대’ ‘기아’ ‘카카오’ ‘네이버’ ‘롯데’ ‘포스코’(모두 2023) 등 국내 기업의 로고에서도 죄다 눈물을 뽑아냈다. 또 ‘오일 페이팅 셸’을 9가지 색 버전으로 만든 ‘에볼루션 셸 페인팅’(2022)에 더해 아예 그림 속 배경을 입체설치작품으로 꺼내놓기도 했다.

루브르박물관 퍼포먼스 이후 본격화한 새로운 연작도 대거 선보인다. ‘누드 모나리자’ ‘목욕하는 여인’ ‘세 가지 은총’ ‘에바 프리마 판도라’(모두 2023) 등, 명화에 대한 재해석이 될 작품 속 누드 여인의 몸에는 하나같이 명품 브랜드의 로고가 새겨져 있다.

프랑스 아티스트 제우스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 펼친 한국 첫 개인전 ‘룸 711’ 전경. 제우스의 대표작업인 ‘리퀴데이티드 로고’로 제작한 ‘흘러내리는 LG’(2020·왼쪽)와 ‘샤넬’(블랙&화이트·2018) 연작이 보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제우스의 한국 첫 개인전 ‘룸 711’ 전경. 제우스의 대표작업인 ‘리퀴데이티드 로고’로 제작한 ‘흘러내리는 삼성·현대·기아·카카오·네이버’(2023). 서울전에 맞춰 국내 기업의 로고들을 대상으로 삼았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제우스의 한국 첫 개인전 ‘룸 711’ 전경. 루브르박물관 퍼포먼스 이후 본격화한 새로운 ‘명화 재해석’ 연작을 한 관람객이 둘러보고 있다. 앞쪽에 ‘목욕하는 여인’(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원작·2023), 안쪽에는 ‘가브리엘 데스트레와 그녀의 자매 중 한 명’(퐁텐블로 파 화가 원작·2023)이 걸렸다. 누드 여인의 몸에는 하나같이 명품 브랜드 로고가 새겨져 있다(사진=노진환 기자).

대중의 눈을 가리는 것도 모자라 이젠 예술의 눈까지 가리는 상업주의 대한 통렬한 비판. 이렇게 기업들을 못살게 굴다가 수차례 불평을 들었을 법도 한데. 그런데 “아니”란다. “한 번도 없다”며 웃는다. “특정 기업을 죽이자고 덤벼드는 게 아니라 시스템이 망가졌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거니까. 이대로 가다간 다 흘러내려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것뿐이다. 기업들이 그 지점을 잘 이해해줬던 거고.”

그래, 오죽했으면 루브르박물관을 정면으로 꼬집는 퍼포먼스를 하겠다는데도 루브르는 기꺼이 ‘룸 711’까지 내줬을까. 작가 한 사람의 곧은 역량이 진짜 세상을 바꾸는 모양이다. 그 결정적 계기가 된 ‘오일 페인팅 셸’ 연작은 이번 서울전을 끝으로 “접는다”고 했다. 제우스가 변화시킨 세상 그 끝, 또 다른 시작을 여기 한자리서 본다. 전시는 7월 6일까지.

프랑스 아티스트 제우스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서 연 한국 첫 개인전 ‘룸 711’에 내놓은 자신의 설치작품 ‘오일 페인팅 셸’(2023) 안에 들었다. 이른바 ‘호크니 수영장’으로 불린 회화작품 ‘오일 페인팅 셸’(2015) 속 배경을 조형물로 세운 거다. 제우스는 서울전을 끝으로 일명 ‘호크니 수영장’으로 불린 이 연작을 마무리한다고 했다(사진=노진환 기자).

오현주 (euanoh@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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