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투 광풍'에 증권사 신용거래 한도 줄줄이 소진
한국증권, 업계최초로 신용거래서비스 중단
이복현 "과도한 레버리지투자 손실위험 증가"
신용거래융자 잔고가 20조원대로 치솟으면서, 증권사들의 '빚투'(빚내어 투자) 한도가 가파르게 줄고 있다.
이에 한국투자증권은 업계 최초로 신용거래 한도가 소진되자 서비스를 전면 중단했다. 다른 증권사들은 증권금융 차입금이나 자기자본을 활용해 신용거래 재원을 추가로 확보하는 움직임도 나타난다.
신용거래잔고가 많이 쌓인 종목에 대해선 일시적으로 신용거래와 담보대출을 중단하는 조치도 나오고 있다. 금융당국도 레버리지 투자 과열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증권사 신용거래 한도 빠르게 소진
2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하나증권은 오는 28일부터 신용거래 재원으로 유통융자를 도입한다고 공지했다.
유통융자란 증권사가 한국증권금융으로부터 대출을 받아 투자자에게 신용공여를 하는 것이다. 자기융자는 자기자금으로 신용공여를 내주는 것을 뜻한다. 증권사들은 통상 두 가지 중 선택해 신용거래 재원으로 활용하다가 한도가 소진되면 다른 재원으로 갈아타는 방식을 취한다.
하나증권이 신용거래 재원으로 도입하기로한 유통융자도 증권금융으로부터 차입해 투자자에게 매수대금과 매도주식을 제공하는 방식을 추가한다는 의미다.
반대로 증권금융으로부터 조달한 유통융자를 소진하고 자기자본으로 신용융자를 내주기로 한 곳도 있다. NH투자증권은 21일부터 신용거래 매수 재원을 유통융자에서 자기융자로 변경하기로 했다. IBK투자증권도 유통융자를 다 쓰자 향후 신용거래에서 자기자본을 사용하기로 했다.
이처럼 증권사들이 잇달아 신용거래 재원을 급하게 추가한 건 몇 달 새 신용거래량이 폭증하면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4월 21일 기준 코스피와 코스닥 신용거래 잔고는 20조4018억원으로 집계됐다.
올초 16조원 수준이었던 잔고는 3월 22일 18조원대에 진입했으며 한달 만에 2조원 가까이 늘었다. 이에 신용거래량이 각사가 정해둔 한도까지 차오른 곳들이 등장했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종합금융투자사업자는 개인 고객 대상 신용공여 합계가 자기자본을 초과해서는 안된다.
아예 신규 신용거래나 증권담보대출을 틀어막은 곳도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업계 최초로 신용융자 매수 주문과 주식, 편드, ELS, 채권 등을 담보로 하는 예탁증권담보대출 신규 접수를 중단했다.
다만, 보유 중인 융자와 대출 잔고에 대해선 요건을 충족할 시 만기 연장은 가능하도록 했다. 재개 일정은 추후 공지를 통해 안내할 예정이다.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유통융자와 자기융자 모두 활용하고 있으며 두 군데 모두 한도가 다 찼다"며 "과거 사례를 봤을 때 보통 재개까지 1~2주가 걸렸다"고 전했다.
신용거래잔고가 많이 쌓인 일부 종목에 대해 신용거래나 대출을 중단한 곳도 있다. 삼성증권, 키움증권, 이베스트투자증권은 △선광 △하림지주 △대성홀딩스 △세방 △다우데이타 △삼천리 △서울가스 △다올투자증권 등 8종목에 신용거래를 중단했다.
이들 종목의 공통점은 최근 주가가 가파르게 올랐다가 24일 SG증권에서 매도 물량이 쏟아지며 하한가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KB증권은 해당 8종목과 함께 금양에 대해 신용거래가 불가하다고 공지했다. 금양은 '배터리아저씨'로 알려진 박순혁 IR이사가 소속된 회사로, 전날 한국거래소가 불성실공시법인 지정을 예고한 곳이다.
미래에셋증권은 서울가스, 삼천리, 다우데이타, 대성홀딩스, 하림지주, 우리넷 등 6종목에, NH투자증권은 포스코DX, 포스코스틸리온, 알엔투테크놀로지 등 3종목에 대한 신용거래를 제한했다.
당국 "과도한 레버리지 투자, 손실위험 높아"
이같은 증권사들의 조치는 신용거래가 위험수준까지 누적됐음을 의미한다. 시장 변동성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증권사가 담보로 주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반대매매를 통해 자금을 다시 회수할 수 있어 회사 재무안정성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며 "그러나 특정종목에 신용거래 잔고가 많이 쌓여있을 경우 반대매매가 시행됐을 때 주가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도 테마주에 쏠리고 있는 빚투 광풍을 주시하고 있다. 신용거래에 유의하라는 메시지를 낸 동시에 이에 따른 테마주 관련 불공정거래를 엄단하겠다는 의지를 표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25일 임원회의에서 "주식과 채권시장 변동성이 큰 상황에서 과도한 레버리지 투자로 인한 손실 위험이 증가할 우려가 있다"며 "금융당국의 적극적인 시장감시 뿐만 아니라 금융회사도 시장 분위기에 편승한 부당권유 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잘 살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이어 "2차전지 등 미래성장 신사업 테마주 투자열풍으로 신용거래가 급증하는 등 주식시장이 이상 과열되고 있는 상황에서 테마주 투자심리를 악용한 불공정거래가 기승을 부릴 우려가 있다"며 실무진에 불공정거래 혐의가 목격된 종목에 신속히 조사에 착수할 것을 지시했다.
백지현 (jihyun100@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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