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의 지도자’ 꿈꾼다…바이든 긁는 3인방 마크롱·빈살만·룰라의 속내는?

손우성 기자 2023. 4. 25. 14:4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탈미국·친중국’ 행보 가속화
미국 중심 질서 벗어나 지역 맹주 노려
내부 혼란 수습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진행된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도중 생각에 잠겨 있다. EPA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반러시아’ 체제를 공고히 하려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전략에 미묘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지난 1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 유엔 총회 투표 성향, 러시아 제재 이행 여부, 러시아와의 경제 협력 정도 등을 종합해 분석한 결과 무려 127개국이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는 국가’로 나타났다. 친서방 국가로 분류되더라도 결속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를 덧붙였다.

미국으로선 전통적인 우방이라고 여겼던 국가들의 변심이 뼈아프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최근 ‘독자 노선’을 강조하며 바이든 대통령의 속을 긁고 있다. 무엇보다 중국과의 접점을 넓혀가고 있는데, 대부분 외신과 전문가들은 이 같은 친중 행보를 실용 외교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 에너지 대란 등에 대응하기 위해 전 세계 경제의 큰손인 중국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이들이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바로 ‘대륙의 지도자’ 자리를 꿈꾼다는 설명이다. 세 사람의 최근 발언을 보면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에서 탈피해 각 지역의 맹주가 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여기에 프랑스와 사우디, 브라질 모두 극심한 정치적 혼란을 겪고 있거나 경제·사회 시스템 변혁기에 놓여있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미국과 각을 세워 내부 갈등을 정리하겠다는 의중이 읽힌다.

연이은 폭탄 발언 프랑스 마크롱…“자신을 유럽 지도자로 내세우려는 시도”
에마뉘엘 마크롱(오른쪽)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 7일(현지시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함께 시 주석 아버지 시중쉰이 머물렀던 광둥성 총독 관저 정원을 둘러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9일 중국 방문을 마치고 프랑스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진행된 폴리티코 등과의 인터뷰에서 대만 문제를 언급하며 “최악의 상황은 유럽이 추종자가 돼 미국의 장단과 중국의 과잉 대응에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두 초강대국 사이에 긴장이 고조된다면 우리는 ‘전략적 자율성’을 구축할 시간이나 재원을 마련하지 못한 채 미국에 종속되고 말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미국과 유럽 각국의 비판이 쏟아졌지만, 12일 네덜란드를 국빈 방문해서도 마크롱 대통령은 “동맹이 곧 속국이 되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며 소신 발언을 이어갔다. 이에 미 CNN은 “마크롱 대통령의 발언은 자신을 유럽연합(EU) 지도자로 내세우려는 시도”라고 평가했다.

앞서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호주에 핵잠수함 기술을 이전키로 한 거액의 계약을 미국에 뺏긴 것도 마크롱 대통령이 프랑스의 독립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도록 한 요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마크롱 대통령의 측근을 인용해 “그는 영향력에 대한 야망이 없다면 지금의 프랑스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라 믿고 있다”고 전했다.

마크롱 대통령의 불안한 국내 입지가 깜짝 발언을 부추겼다는 시각도 있다. 그가 이끄는 중도연합은 지난해 6월 총선에서 과반 확보에 실패했고, 정년을 62세에서 64세로 연장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연금 개혁안 강행 처리 후폭풍도 거센 상황이다.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그의 중국 방문과 일련의 발언에 대해 “떨어지는 인기와 연금 개혁 반대 시위에 대응하는 차원”이라면서도 “이 모험은 프랑스의 전형적인 외교 정책을 뛰어넘는 도박”이라고 지적했다.

‘앙숙’ 이란과 관계 회복…중동 역학 재구성 노리는 사우디 빈살만
모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지난해 11월 15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모습. AP연합뉴스

무함마드 왕세자의 광폭 행보는 더욱더 놀랍다. 지난달 중국의 중재로 ‘앙숙’ 이란과 관계 정상화에 시동을 걸었고, 2011년 내전으로 아랍연맹(AL)에서 퇴출당한 시리아 복귀에 앞장서고 있다. 예멘 분쟁 해결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반면 오랜 우방인 미국엔 냉랭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에너지 가격 대응을 위한 바이든 대통령의 증산 요청을 계속 거부하고 오히려 감산을 결정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매우 느린 외교로 악명 높은 사우디의 놀라운 진전”이라며 “미국의 미래가 불확실한 시기에 사우디의 맹렬한 외교 노력이 중동 지역의 역학을 재구성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외신들은 이란이 수개월 동안 계속된 반정부 시위와 서방 제재로 흔들린 틈을 이용해 무함마드 왕세자가 중동·아랍 리더로서의 지위를 확실히 매김하려 한다고 본다.

석유 등 에너지 일변도의 산업 구조 재편에 나서며 내부 개혁을 추진 중인 빈살만 왕세자가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란·시리아 등과 손을 잡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WP는 “국내 개혁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선 해외에서 안정을 추구해야 한다”며 “천문학적인 비용이 드는 군사적 얽힘을 빈살만 왕세자는 풀고 싶어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미국 때리는 브라질 룰라…‘남미 리더’ 존재감 과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왼쪽) 브라질 대통령이 지난 14일(현지시간)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룰라 대통령 또한 미국 때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그는 지난 14일 중국에서 시진핑 국가주석과 만나 미국 1강 체제 거부와 다자주의 강화를 천명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서도 “미국 등 서구 열강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해 분쟁을 연장하고 있다”는 등 날 선 발언을 쏟아냈다.

WP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 시절 약해진 브라질의 남미 영향력을 회복하기 위한 전략의 일부”라고 진단했다. 남미를 뒷마당 취급한 미국에 맞서 ‘남미 지도자’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 또한 “룰라 대통령이 조만간 아프리카를 방문할 예정”이라며 “그곳에서도 브라질의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그는 지난 1월 취임하며 남미판 EU로 불리는 우나수르(Unasur) 재건을 외교 정책 1순위로 꼽았다. 2008년 남미 12개국이 참여해 출범한 우나수르는 현재 사실상 기능이 정지된 상태다. 룰라 대통령은 지난 16일 마리오 압도 베니테스 파라과이 대통령과 함께 브라질 남부 포스두이구아수 수력발전소를 찾아 “우나수르를 다시 일으켜 남미의 번영과 안정을 위한 계획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 파라과이 등과 함께 하는 무역공동체 메르코수르(남미경제공동체)의 단합도 언급했다. 그는 “국제사회에서 남미의 더 큰 협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룰라 대통령은 남미 화폐 통합을 추진하겠다는 뜻도 내비친 상태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