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타이틀 보유 이종찬 교수…"췌장암 치료, 곧 큰 거 온다"
[편집자주] 머니투데이가 아직 젊지만 훗날 '명의(名醫)'로 성장할 가능성이 큰 차세대 의료진을 소개합니다. 의료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질환과 치료 방법 등을 연구하며 국민 건강 증진에 기여하는 젊은 의사들에 주목하겠습니다.
"최초는 많은데 아직 '최고'가 없어서 문제죠."
이종찬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그가 개발한 웹사이트 'RDIcalc.com' 화면을 보여줬다. 이 교수는 세계 최초로 복합 항암화학요법 약제의 누적 상대 용량을 자동으로 계산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해 해당 사이트에 적용했다. 연구 결과가 유럽 암학회지(European journal of Cancer·EJC)에 실리기도 했다. 누적 방문자 수는 39만명. 그는 "서버를 옮기느라 이틀 정도 사이트를 닫았는데 프랑스 연구자로부터 '언제 복구되느냐'는 메일이 온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의학 관련 컴퓨터 프로그램을 상당수 개발했다. 국내 최초로 '근거 맵핑(Evidence mapping)' 기법을 이용한 연구를 출간했다. 최근에는 세계 최초로 의료 논문 검색 사이트인 PubMed의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API)를 이용해 인용 횟수에 가중치를 둬 시각화하는 'EEEvis.com'이라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췌장암 치료제 폴피리녹스(FOLFIRINOX) 용량의 세계적 트렌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RDI-map.com' 프로그램도 개발해 관련 연구가 최근 SCI 저널에 출간됐다. 이런 경험의 연장선상에서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로 장기 연수도 떠날 예정이다.
이 교수의 주된 연구·진료 분야는 췌장암이다. 5년 생존율 13.9%. '진단이 곧 사망'이라는 말처럼 췌장암은 대중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눈으로 보이는 증상이 나타날 때는 이미 병기가 상당히 진행했을 확률이 높다. 이 교수는 췌장암을 "여행 가방 깊은 곳에서 커피 우유가 터진 것과 같다. 주위로 퍼져나가는데 깊이 있어서 알기도 어렵다"고 비유했다.
그럼에도 의심해볼 수 있는 몇 가지 증상이 있다. 이 교수는 "살이 터무니없이 빠진다거나, 혈당이 갑자기 조절이 안 되거나, 오줌색이 진해지거나, 황달이 생기고 미지근하게 복부와 등 통증이 있다면 의사 상담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자신이 췌장암 고위험군인지 인지하는 것이다. 췌장암 관련 변이 유전자를 갖고 있다면 정기적으로 검사하는 게 조기 진단율을 높일 수 있다. 또한 직계 가족에 환자가 있거나, 췌장에 낭성 종양이 있거나, 만성 췌장염이 있다면 고위험군에 속한다. 부모 중 한 명이 췌장암 환자였다면 1~2% 확률 미만으로 자식에게도 병이 생길 수 있다.
이 교수는 "췌장암 첫 진단에서 이미 4기 판정을 받는 환자가 50%를 넘는다"고 말했다. 4기는 아니지만 혈관으로 암이 전이돼 수술이 불가능한 3기(국소진행성) 췌장암으로 진단받는 환자 비율도 35%다. 췌장암 완치는 오직 수술로만 가능하지만 첫 진단에서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진단받는 환자 비율이 85%에 달한다. "이것이 췌장암의 가장 어려운 점"이라고 이 교수는 말했다.
4기 환자의 중간 생존 기간은 12개월이다. 3기 환자는 평균 18~24개월, 1~2기 환자는 평균 3년 이상으로 본다. 그러나 이 교수는 "이것은 통계적인 중간값일 뿐"이라며 "드라마에서 몇개월 남았다고 시한부 선고하는 장면은 상당히 잘못됐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 반 수학 점수 평균이 50점이라고 해서 내가 50점인 건 아니듯이, 평균에 대한 정보를 예언치로 착각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이 교수는 "췌장암 4기임에도 완전 관해를 보였다거나, 크기가 큰 췌장암 3기인데 오랜 항암을 잘 이겨내고 수술까지 진행해 결국 완치된 분들이 계시다"며 "이분들의 공통점은 환자 본인이 긍정적이고, 정성스러운 보호자가 반드시 있었다는 점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두 가지가 있다고 모든 환자의 결과가 좋은 것은 아니지만, 결과가 좋은 분들은 대부분 이 두 가지가 충족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덧붙였다.
췌장암은 다른 암종보다 항암제 개발이 유독 더 어렵다. 최근 3세대 항암제로 각광받는 '면역항암제'조차도 췌장암에서는 치료에 성공했다는 사례가 별로 없다. 이 교수는 "면역항암제의 기본 원리는 우리 몸의 백혈구 세포 빗장을 풀어 암세포를 공격하는 것"이라며 "그러므로 암종별로 종양 미세환경에서 암세포와 림프구 세포 각각의 분율이 중요하다. 미세환경의 림프구 즉 군대가 많은 암은 보통 핫 튜머(hot tumor), 적은 암을 콜드 튜머(cold tumor)라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문제는 췌장암은 콜드 튜머 중에서도 일명 '사막(Desert)'이라고 불릴 정도로 림프구가 적고, 섬유세포가 마치 덩굴이 성을 감싸듯 암세포를 감싸고 있어 공격이 잘 안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폴피리녹스'와 '젬시타빈'+'냅-파클리탁셀' 병용 요법이 나오기 전까지 췌장암 치료는 중세 암흑기와 같았다. 4기 진단을 받으면 몇 달 안에 사망해야 했다. 두 약제의 등장으로 4기 췌장암 환자 생존 기간이 평균 12개월 전후로 늘었다. 이 교수는 두 약제를 두고 "마치 선동열과 최동원 같은 존재"라고 비유했다.
이 교수는 2023년 지금의 췌장암 항암 치료 수준을 '산업혁명 직전'으로 비유했다. 유전체 연구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각종 국소 치료 등 정밀의학 기반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몇 년 새 급격히 제시되고 있다. 그는 "마치 산업혁명 직전처럼 (췌장암 치료 분야에서) 뭔가 끓어오르는 게 느껴진다"며 "조만간 근대를 여는 혁신적인 치료가 나올 것 같다. 뭔지 모르지만 큰 게 온다"고 전망했다.
"지금까지 해 온 연구, 그리고 앞으로 해나갈 많은 일 중 이종찬 개인의 역할은 15% 미만이라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이 교수는 이 말을 꼭 전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85% 이상은 내가 속한 조직(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역량이고 나는 여러 퍼즐 중 하나일 뿐"이라며 "특히 스승이신 황진혁 교수님께 받은 가르침이 절대적이다. 처음 지도교수와 제자로 연을 맺은 2014년, 황 교수님께서는 이미 20년의 로드맵을 가지고 계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팀원 모두 힘을 합쳐서 그것을 현실화하는 중이다. 훌륭한 선후배 동료와 함께 향후 우리 팀을 췌장암·담도암 분야에서 세계 최고로 일구어 가는 게 목표이다"고 밝혔다.
[프로필]이종찬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전임의·조교수·부교수 등을 역임했다. 2016년 대한 소화기암학회 우수 구연상, 같은 해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 국제학술대회(International Digestive Endoscopy Network)에서 우수 포스터 발표상을 받았다. 2019년에는 대한 췌장담도학회 우수 구연상을 수상했다. 올해 5월부터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부에서 연수를 받는다.
이창섭 기자 thrivingfire2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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