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사인줄만 알았는데...출루왕이었네, OBP 0.500, "야구장 오는 길이 즐거워졌다"
[대구=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2년 전 쯤이었다.
대구 라이온즈파크 지하 주차장에서 출근길 이원석(37)을 만났다. 반가움 속에서도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또 스트레스 받으러 갑니다."
업(業)이 즐겁기는 많이 어렵다. 남들이 보기에 즐거워 보이는 일이라도 먹고 사는 일이 되는 순간부터 무섭게 달라진다. 책임과 의무감에 무엇보다 '못하면 짤린다' 뭐 이런 식의 압박감이 있기 때문이다. 소위 '덕업일치'가 즐거움 속에서만 지속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퍼포먼스가 매일 수치화되는 야구가 직업인 개인사업자 프로야구 선수의 스트레스는 말할 것도 없다.
이원석 역시 마찬가지였던가 보다.
실패의 확률이 더 큰 타석. 중요한 찬스에서의 실패는 엄청난 스트레스다.
동료가 잘 치면 반가움 속에서도 자괴감이 커진다.
내 안의 비교도 스트레스다. 나이가 들수록 떨어지는 순발력. 수비력은 당연히 청년 시절만 못할 수 밖에 없다. '예전에는 식은 죽 먹기였는데'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서른 일곱 베테랑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마음 위를 떠돌며 부유하던 집착을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신산하던 마음이 가벼워졌다.
최근 대구라이온즈파크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이원석 선수 정도의 나이가 되면 어떤 생각을 하면서 야구장을 오게 되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하루 하루가 이제는 야구한 날보다 할 날이 많이 안 남았으니까 야구장 오는 길도 보이고, 소중해요. 내가 이 길을 언제까지 다닐까 이런 생각이 들죠. 전에는 스트레스 많이 받으면서 야구장에 나왔다면 요즘은 감사하고 즐겁고 하는 마음으로 와요. 그래서 요즘 좀 잘 맞는 것도 있어요. 예전에는 오늘 꼭 안타 쳐야 하고, 못 치면 타율이 얼마 떨어지고 이런 생각이었다면 지금은 타석에 안전하게 들어가는 것 자체가 감사한 마음입니다. 마음을 많이 비우니 결과가 나오더라구요."
지난 겨우내 이원석은 욕심을 비운 자리에 노력을 채웠다.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땀 흘리며 6~7㎏을 감량했다.
"빼려고 생각하고 갔는데 더 빠졌어요.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 있는데, 체중이 빠졌다고 파워 줄었다는 생각은 안들고, 작년보다 몸이 가볍다는 느낌은 확실히 있어요."
살은 왜 뺐을까.
"수비를 많이 나가고 싶고, 수비에서 좋은 모습 보여주고 싶었어요. 전훈 때부터 수비 훈련을 많이 하려고 노력했죠. 저는 어렸을 때부터 타격보다 수비에 더 자신이 있는 사람이었는데 몇 년 동안 열심히 한다고는 했는데 실제로는 많은 노력을 안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나이를 먹으면서 수비 쪽에서 안 좋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는데 '아직 할 수 있다' 증명하고 싶었어요.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노력 없는 바람이 욕심이라면, 노력 하는 바람은 집념이다.
특히 세월이란 자연의 법칙을 늦추기 위한 인간의 도전이라면 그 노력은 위대함일 수 있다.
타격에 대한 욕심은 크게 없다.
"타격은 사이클이 있어서 잘 맞고 있을 뿐이에요. 제가 안 좋아질 때 쯤 다른 선수들이 좋은 모습 보여줄 겁니다. 다른 팀 이상으로 우리도 훈련을 많이 했기 때문에 배팅훈련 속에 선수들의 자신감이 차있을 거에요. 당장 결과가 안나오다 보니 지금은 침체돼 있지만, 1,2개 좋은 타구가 나오면 달라질겁니다."
일시적 사이클이라고 하기엔 이원석의 스탯이 놀랍다.
개막 3주가 지난 24일 현재 18경기 54타수20안타(0.370), 14볼넷으로 출루율 5할을 기록중이다. 2타석 중 한번 씩 살아나가고 있다는 의미. KT 알포드, LG 김현수, 한화 채은성 등을 모두 제치고 출루율 1위다.
마음을 비우자 눈이 밝아졌다.
이원석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클러치 능력도 여전하다. 득점권 타율 4할7푼1리로 전체 4위다.
23일 광주 KIA전 1사 1,2루에 4번타자로 첫 타석에 선 이원석은 KIA 선발 앤더슨과 풀카운트 승부 끝에 7구째 바깥쪽 낮게 잘 떨어진 슬라이더를 욕심 없이 툭 밀어 1-2루간을 빠지는 선제 우전적시타를 만들어냈다.
팀 패배 속에 묻혔지만 이원석의 변화를 엿볼 수 있었던 장면이었다. 1-3으로 뒤지던 4회초 1사 후에는 2B1S에서 앤더슨의 146㎞ 빠른 공을 당겨 좌중간을 갈랐다. 베테랑 다운 노림수로 침묵하던 타선에 깨우며 찬스를 열었다.
한경기 한경기를 소중한 마음으로 품어가고 있는 서른일곱의 베테랑 내야수. 나의 일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즐겁게 임하는 마음의 힘이 이렇게 무섭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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