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명 불태워 살해”…극단으로 치닫는 아이티 갱단 폭력사태
군중이 끌어내 구타하고 불태워
갱단 범죄·폭력에 분노 치솟아
갱단이 국토 대부분을 장악하며 사실상 무정부 상태에 빠진 아이티에서 갱단원 수십명이 대낮에 거리에서 구타를 당한 뒤 불태워져 살해되는 등 국가 내 폭력 사태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아이티 경찰과 목격자들에 따르면 이날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성난 군중 수십명이 경찰에 붙잡힌 갱단원 13명을 끌어낸 후 불태워 살해했다고 24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이 보도했다.
이는 경찰이 무기류 밀매 용의자 신병을 확보한 후 형사 절차를 밟는 도중 발생했다. 경찰이 갱단 용의자들을 붙잡아 밀수품을 수색하고 압수하던 도중 갑자기 수십명이 몰려와 이들을 끌고 간 뒤 돌로 때리고 주먹질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이후 갱단원들의 몸에 타이어를 올려 놓고 휘발유를 부은 뒤 불을 붙였다. 이날 수백명의 사람들이 현장에서 이 모습을 지켜봤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타이어와 시신들이 불에 타는 참혹한 모습들이 올라왔다.
당국은 숨진 이들이 2021년 미국인 선교단 17명 납치 사건과 아이티 대통령 암살 사건 등에 연루된 ‘크라즈 바리에’ 갱단 소속 조직원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이티 내 갱단의 범죄와 폭력 사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자 이들을 향한 대중의 분노도 치솟으면서 이번 범죄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경찰 대변인은 “주민들의 분노를 이해할 수 있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협력은 폭력 없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아이티에서는 2021년 조브넬 모이즈 대통령 암살 이후 극심한 폭력과 혼란이 날이 갈수록 더해가고 있다. 행정부는 유명무실해졌고, 선출직 공무원 임기가 모두 종료됐지만 선거는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라 입법부도 사실상 해산된 상태다. 판사들이 살해 위협을 당하면서 사법 절차 역시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입법·행정·사법부가 모두 마비된 상황에서 아이티 권력의 공백을 채운 것은 갱단들이다. 약 200개의 갱단들이 아무런 통제도 받지 않은 채 국토의 60~80%를 장악하고 있다.
유엔특별기구인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전날 홈페이지를 통해 최근 일주일도 안 되는 기간에 아이티에서 갱단 간 충돌로 70명에 가까운 사망자가 나온 것으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유엔 기구는 아이티의 안보 상황이 ‘경고할 만한 수준’에 도달했다고 우려하고 있다. 특히 여성과 어린이들이 갱단 잔혹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돼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올리카 리처드슨 유엔 인도주의 조정관은 “주민들은 마치 포위당한 기분으로 살고 있다”며 “갱단 테러가 두려워 집 밖에 발을 내딛기 어려울 정도”라고 밝혔다.
아이티 정부와 유엔은 갱단과의 투쟁에서 아이티 경찰을 지원하기 위해 국제사회의 군사적 개입을 촉구했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25일 아이티의 사회·정치·인도주의적 위기 심화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최서은 기자 ciel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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