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칼라로 정년 퇴직한 60대가 새 직장 구한 비결
‘왕년의 나’는 버리고 ‘새로운 나’를 만나라
노년학 전문가인 사토신이치 교수 인터뷰 3편
[왕개미연구소]
“정년 퇴직하면 아무 걱정 없이 편하게 쉬고 싶어요. 일해봤자 단순 노무자 취급 받을 테고, 그마저도 월급 축낸다고 사람들 시선이 따가울 것 같아요.”(50대 직장인 A씨)
누구나 한 번은 거쳐야 하는 정년 퇴직. 두둑한 연금이 있는 유유자적한 노후 생활을 기대하지만, ‘100세 시대’에서의 현실은 정반대다. 퇴직 후에도 30년 이상 살아야 하니 ‘완전한 은퇴’는 미루고 일하는 기간을 늘려야 한다.
노인대국 일본에선 ‘고령 근로’가 일상이다. 정년이 한참 지난 65~69세 노인 2명 중 1명은 생계를 위해 취업 전선에서 뛰고 있다. 65세부터 공적연금을 받을 수 있는데도 절반은 일을 하는 것이다.
정년이 지난 일본 노인들은 주로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이달 초 채용정보업체 카케하시 스카이솔루션이 60대 남녀 1100명을 조사해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고용 형태는 ‘계약직’이 44%로 가장 많았고, 정직원(27%)은 적었다.
일하는 60대의 절반(50%)은 퇴직 전과 비슷한 업종에서 일하고 있었다. 일본에는 오래 일했던 회사에서 본인이 원하면 정년 후에도 계속 일할 수 있다(재고용). 두 번째로 많았던 것은 ‘퇴직 전과 다른 업종에서의 재취업 혹은 창업(20%)’이었다. 60대 초반에는 익숙한 회사에서 계속 일하다가 후반에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패턴이 엿보인다.
노년 가계의 주된 수입원은 급여(47%), 연금(37%) 순이었는데, 60대 후반으로 갈수록 연금 비중이 더 높아졌다. 60대가 버는 수입은 월 10만~20만엔 미만이 전체의 28%로 가장 많았고, 20만~30만엔 미만이 27%로 뒤를 이었다.
사토신이치(佐藤眞一) 전 오사카대학교 대학원 노년행동학 교수는 25일 [행복한 노후 탐구] 인터뷰에서 “정년 퇴직자들을 상대로 조사하면, 창업한 사람들의 삶의 만족도가 가장 높았고 일을 완전히 그만둔 사람들의 행복도는 신통치 않았다”면서 “퇴직 후에는 회사 중심의 ‘조직 몰입’에서 벗어나 전문 분야를 살리는 ‘커리어 몰입’으로 전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옛날 회사가 좋았는데...’ 혹은 ‘그때 업무가 보람있었지...’하면서 추억에 젖은 채 ‘조직 몰입’ 모드에 머무르면 제자리걸음만 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토 교수는 일본 사이타마(埼玉)의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메이지대, 오사카대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노년학 전문가인 그는 <우리 가족에게 치매가 찾아왔다>, <나이 든 나와 살아가는 법> 등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일하는 노인들이 늘고 있다.
“정년 후 일하는 방식엔 정답이 없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일을 완전히 그만둔 사람의 행복도는 창업 혹은 재취업한 사람에 비해 크게 낮다는 점이다. 사회적 성취와 미래 비전이 사라지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다. 교도소 생활을 떠올려보라. 교도소에 있으면 형기가 있으니 출소 시점은 예측 가능하지만, 내 스스로 시간과 일정을 통제하지는 못한다. 자신의 일상을 직접 결정할 수 없으니 미래 비전은 사라지고, 회사 다닐 때처럼 ‘일정을 다 소화했다’는 성취감도 전혀 느끼지 못한다. 삶은 당연히 괴롭고 만족도도 낮다.”
–월급이 줄어도 일해야 하는가?
“정년퇴직을 하고 나면 월급은 전성기 때보다 줄어든다. 후생노동성 자료만 봐도 알 수 있다. 일본 남성은 55~59세 연봉이 인생 피크를 찍는데 이때 월 평균 41만3600엔을 번다. 하지만 60~64세가 되면 31만8100엔으로 23% 줄어든다. 국립대학 교원인 나도 58세에 승진이 멈췄는데, 63~65세 소득은 한창 때의 80% 수준이었다. 하지만 정년 후엔 ‘돈을 많이 벌겠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그보다는 시간을 즐기는 것을 우선해야 한다. 일하는 목적도 직위 같은 등 외적 보상보다는 일 자체에서 보람과 즐거움을 찾는 내적 보상으로 바꿔야 한다.”
–말은 쉽지만 미련은 남을 것 같다
“사회복지단체에서 근무하다가 정년 퇴직한 후에 같은 단체에서 계속 일하던(재고용) 지인이 있었다. 지인은 원래 장애아동 복지를 하고 싶었지만, 업무상 노인 복지 업무만 계속 해야 했다. 하지만 정년 퇴직 이후에는 장애아동 복지 일을 도맡아 했고, 결국 전문가에 가까워졌다. 직위가 없어지는 것은 자유를 획득하는 일이고, 동시에 인생을 원점으로 되돌리는 일이기도 하다. 정년퇴직 이벤트를 마음 속에 담아 두었던 꿈을 실현할 기회로 삼아라.”
–세컨드 커리어는 어떻게 찾아야 하나.
“일본에 유명한 농담이 하나 있다. 재취업 소개업체 직원이 퇴직자에게 “어떤 일을 가장 잘 합니까?”라고 물었더니 “부장을 가장 잘합니다”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실화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많을 것 같다. 정년퇴직 후에 구하는 직장은 예전과 같거나 비슷한 수준이긴 어렵다. 아니,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런 시시한 일을 어떻게 해!’라거나 ‘고작 이 정도 돈을 받고 일하라고?’라고 생각하면 재취업은 물건너 간다. 급여나 지위, 권한 같은 잣대를 버려야만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기준이 중요한가.
“정년 후 다른 직장을 구할 땐, 내가 노력하면 ‘사회적 평가’를 얻을 수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퇴직하고 나면 ‘조직 몰입’은 단절된다. 조직에 있으면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지만, 나오는 순간 주변에 사람은 없고 뭐든지 혼자서 알아가야 한다. ‘커리어 몰입’으로 전환해야만 노후 생활에도 연착륙할 수 있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강점은 무엇인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목표를 갖고 일해왔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화이트칼라 경력은 어디에 쓸모가 있을까.
“본업에서 내가 당연하게 생각한 것도 다른 직장에선 커리어로 활용될 수 있다. 도쿄 여행사에서 기획 업무를 하다가 지방 주민센터 고문이 된 지인이 그런 케이스였다. 그가 처음 맡은 일은 관광객 유치였는데, 일을 하면서 주민센터 직원 교육 업무가 본업이 됐다. 처음 부임했을 당시, 주민센터 직원들은 일반 기업에는 흔한 회의 방식을 잘 몰라서 엉성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기업에서 하듯, 그는 회의 자료를 따로 만들고 파워포인트 쓰는 법을 직원들에게 알려줬는데 반응이 뜨거웠다. 결국 주민센터 상사는 그에게 정식으로 직원 교육을 맡겼다.”
–정년 전에 준비할 일이 많아 보인다.
“조직을 떠났을 때 무엇이 나의 커리어가 될지, 남에게는 나의 어떤 점이 강점으로 보일지 파악해 둬야 한다. 정년 후에 후회와 한숨으로 시간을 보내지 않으려면, 현역에서 일할 때부터 자신을 수시로 점검하면서 ‘조직 몰입’에서 ‘커리어 몰입’으로의 전환에 힘써야 한다.”
–일본에선 시니어창업이 인기라던데.
“정년 퇴직자 중에서 창업한 사람의 행복도가 가장 높다는 건 앞서 말한 바 있다. 일본은 벤처기업의 4분의 1이 시니어 창업이다. 벤처기업의 5년 생존율은 5% 정도로 낮은 편이다. 하지만 “돈은 많이 벌지 않아도 좋다, 적자만 아니라면 우리 사회를 위해서 또 내 인생을 위해서 괜찮다”고 생각하고 접근하면 된다. ‘면접까지 갔는데 자꾸 떨어진다’고 불평하면서 남에게 인정받기만 기다리진 말자. 회사 다닐 때와 같은 자기 확장성 욕구가 아니라, 사회적 평가를 잣대 삼아 남을 기쁘게 하기 위해 창업한다면 의외로 사업이 잘 풀릴 수도 있다. 나도 10년 내에 창업을 하고 싶다는 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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