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뿔소답게, 연기력 하나로 직진한 '퀸' 문소리

아이즈 ize 조이음(칼럼니스트) 2023. 4. 25.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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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조이음(칼럼니스트)

사진제공=넷플릭스

그는 존재만으로도 주변 공기를 뜨겁게 달군다. 아마 '정의'라는 단어로 똘똘 뭉쳐있기 때문이다. 그는 은성 백화점에서 일하다 일방적으로 계약 해지를 당한 비정규직 여성 근로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두 달 넘도록 고공 농성을 이어가던 모습으로 시청자와 처음 마주한다. 바람 하나 막아줄 시설조차 제대로 없는 옥상에서 "이러다 굶어 죽겠다"며 괴로운 신음을 내뱉다가도 가방을 털어 나온 커피믹스 하나에 행복해하고, 이를 빗물에 녹여 가까스로 허기를 때운다.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힘은 이제 충분하다. 킬힐과 명품 스리피스 슈트는 고사하고 방한 목적의 바라클라바와 점퍼가 갑옷의 전부이지만, 농성을 중단시키려는 의도가 담긴 제안에는 "이게 무슨 개수작이냐"고 받아버리고 마는 그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퀸메이커'(극본 문지영, 연출 오진석)의 오경숙(문소리)이다.

'퀸메이커'는 이미지 메이킹의 귀재이자 대기업 전략기획실을 쥐락펴락하던 황도희(김희애)가 정의의 코뿔소라 불리며 잡초처럼 살아온 인권변호사 오경숙을 서울 시장으로 만들기 위해 선거판에 뛰어들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다. 문소리가 연기하는 오경숙은 좋은 세상을 만들 수만 있다면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온 인권변호사이자 대중을 끌어당기는 화법과 극적인 순간을 만들어내는 퍼포먼스 본능을 타고난 인물이다. 대립하던 황도희와 서울 시장 당선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손잡고 도전을 시작한다.

앞서 설명했듯 오경숙이란 인물을 이루는 최소 8할은 '정의감'이다. 옥상에서 그를 끌어내리기 위해 황도희는 돈과 권력이란 달콤한 회유책을 그에게 사용하지만, 그 정도로 오경숙을 움직이진 못한다. 이는 그가 서울 시장 후보로 나선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자신을 향하는 압박에 굴복하지 않고, 당당하고 정의로운 모습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정의로운 코뿔소'라는 별명처럼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이루기 위해 끝까지 지지하고, 직진한다. 가끔은 휘청일지라도 말이다.

사진제공=넷플릭스

"연기력이 권력이다" '퀸메이커' 포스터에 적힌 이 문구는 문소리와 김희애, 영화와 드라마를 주름잡는 두 배우가 한 작품에서 만난 걸 자랑스러워하는 모두의 마음이 담긴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지키고 민심을 사로잡을 수 있는 연기력을 가진 자만이 권력도 손에 쥘 수 있다는 드라마적 표현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가진 것이라곤 정의감과 스타성뿐인 오경숙은 카메라와 조명의 힘을 정확히 알고 철저히 계산된 연기를 보여줄 상대 선수들과 비교하자면 분명 불안한 후보다. 이에 추레한 옷과 길게 늘어진 헤어는 코르셋으로 조이고 숏컷으로 변신, 외형부터 달라진다. 다만 갑옷처럼 두른 코르셋을 숨 막혀하던 그는 결국 생방송 토론 중 이를 벗어던지며 감추고 가두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금 드러낸다.

코뿔소 오경숙은 격렬한 선거 공방이 계속되는 중에도 처음처럼 굳건하다. 자신을 향해 너울대며 안겨오는 회유와 차갑고 아프게 꽂히는 인신공격에는 꿈쩍하지 않는다. 또 믿었던 사람이 배신하고 가족의 일상이 위협받는 극한의 상황이 몰아쳐도 휘청일지언정 주저앉지 않는다. 마치 영웅물 판타지 드라마와 현실 여의도 그 사이 어디선가 탄생한 듯한 정치쇼의 퀸 오경숙은 문소리가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살아 숨 쉬는 캐릭터로 완성되진 못했을 거다. 각본을 받자마자 "'(오경숙 캐릭터는) 대한민국에서 내가 제일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했다"는 문소리의 한 매거진 인터뷰는 이 같은 짐작에 믿음을 더하기 충분하다.

사진제공=넷플릭스

문소리는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박하사탕'(1999)으로 데뷔함과 동시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특히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영화 '오아시스'(2002), '효자동 이발사'(2004)',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8) 등을 충무로의 유명 감독들과 꾸준히 작업하며 작품성과 상업성을 모두 잡았다. 2007년 방송된 드라마 '태왕사신기' 이후 좀처럼 드라마에서 만날 수 없던 그는 '푸른 바다의 전설'(2016), '라이프'(2018) 등을 통해 활동 반경을 넓히기 시작했다. 2021년 방송된 '미치지 않고서야'에서는 인사팀장 당자영으로 분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선사했다.

데뷔 24년 차 배우, 문소리의 다양한 필모그래피에는 여느 배우에겐 꿈일 화려한 수상 경력까지 더해졌다. 하지만 필자의 기억 속 문소리의 모습은 화려하지만은 않다. '여배우'라는 단어보다 '배우'라는 단어에 어울린다. 어느 작품 속 어느 캐릭터로 만나도 시작은 문소리를 마주하는 느낌이다.(각각의 호흡으로 짐작도 할 수 없을 순간에 캐릭터로 보이기 시작하지만 말이다.) 그래서인지 매 순간 뜨겁고, 어떤 도전에도 주저하지 않는 오경숙이 여러 작품을 통해 마주한 문소리와 겹쳐 보인다. 세상을 바라보는 자기만의 눈을 가지고 세상과 맞서는 코뿔소의 정신도, '퀸'으로의 모습마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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