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필립스 곡선' 살아있다…"올해 물가 압력 낮출 것"
'빈 일자리'로 보면 관계 뚜렷…한국 노동 생산성은 빨간불
(서울=뉴스1) 김혜지 기자 = 올해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구직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물가 상승 압력을 낮추는 힘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앞으로 노동시장 긴장도(tightness)가 낮아지면서 고물가 현상이 완화될 거란 분석이다.
한국에서 필립스 곡선은 살아 있으며, 이를 통해 금리 인상의 효과성을 증명할 수 있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서영경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위원은 25일 서울 중구 한은에서 열린 2023 한은 노동시장 세미나에 참석해 '노동시장 상황과 통화정책적 함의'를 주제로 이 같은 내용의 모두연설을 했다.
경제학에서는 물가와 실업률 사이 역(-)의 상관관계가 있다고 보며 이를 필립스 곡선이라는 그래프로 설명한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부터 오랜 정설로 받아들여진 고용과 물가 간 관계가 흐려졌다(필립스 곡선의 평탄화)는 담론이 활발해졌다. 이른바 '필립스 곡선 무용론'이다. 미국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그런데 서 위원은 이날 코로나19 전후 한국의 고용-물가 간 관계를 살피면서 "전통적 양적 지표와 물가 간 직접적 관계는 높지 않지만 '노동시장 긴장도'의 경우 근원물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노동시장 긴장도는 시장 내 노동 수급 상황을 가리킨다. 만일 구인이 구직보다 많아 시장에 빈 일자리가 충분하면 노동 공급은 늘어나는 대로 시장에 흡수된다. 이 경우 노동시장의 긴장도가 높다(타이트하다)고 표현한다.
반대로 취업 경쟁이 구인 경쟁보다 치열할 경우 노동 공급이 추가돼도 시장에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밀려날 뿐이다. 이를 두고 노동시장 긴장도가 낮다(덜 타이트하다)고 한다.
서 위원은 노동시장 긴장도를 보여주는 지표로 '실업률 대비 빈 일자리율(v/u)'을 설정했다.
이 같은 정의를 토대로 서 위원은 "우리 노동시장 긴장도와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중반을 정점으로 동반 하락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노동시장 긴장도는 서비스 부문의 근원물가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고용의 양을 나타내는 전통적 지표인 '실업률'·'고용률'과 물가 간의 관계는 유의미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결론적으로 서 위원은 "실업률 등 전통적 지표보다 노동시장의 긴장도 지표를 활용할 경우 고용과 물가 간 관계는 코로나19 전후 모두 가파르게 나타난다"면서 "시간 조정 실업률, 빈 일자리율도 물가와의 관계가 뚜렷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의 경우 필립스 곡선 평탄화 문제는 노동시장 구조 변화보다는 지표 문제, 또는 식별의 문제였을 가능성이 있다"며 "통화정책 여건 판단에 있어 노동시장 상황과 물가 간 관계에 보다 유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올해 고용시장에서는 수요 둔화와 공급 확대가 맞물리면서 노동시장 긴장도가 완화되고 물가 압력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서 위원은 우리 노동시장이 경기보다 고령화·여성노동 등 구조적 요인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어 경기 요인에 따른 변화와 구조 요인에 따른 변화를 구분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또 노동시장의 변화가 중장기적으로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도 유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표적으로 이목을 집중해야 할 부분이 노동생산성이다.
서 위원은 우리나라 노동생산성이 코로나19 기간 저부가가치 부문의 고용 감소로 잠깐 개선됐다 다시 하락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고용 증대가 고령층·여성 위주로 저임금 부문에서 이뤄진 터라 질적으로 부진했다고 평가했는데,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게다가 1인당 근로시간은 미국과 달리 코로나 이후에도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구체적으로 시간제 취업자, 비정규직 근로자 증가세와 함께 주로 고령층에 의해 축소되고 있다.
서 위원은 "앞으로 노동생산성 하락이 지속될 경우 저성장-저물가 체제로의 회귀가 불가피하다"면서 "통화정책적 부담도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노동시장의 실질적인 구조개선 노력을 일관성 있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며 "베이비부머 등 은퇴 근로자의 인적자본을 활용하고 여성 청년층 경력 단절을 방지하기 위한 보육정책 강화, 고부가서비스 이민자 개방 등에 나서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서 위원은 전통적 고용 지표가 고용·경기 상황을 반영하는 데 한계가 있으므로 현실 적합성이 높은 고용 지표를 계속 발굴할 것을 조언했다.
icef08@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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