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컬100 제작하고 떠난 지상파PD…OTT 역설적 환경 극복하려면

노지민 기자 2023. 4. 25.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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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가 IP 넘긴 넷플릭스 오리지널, 왜 그랬을지 정책적·제도적인 고민 필요"
"EBS '그레이트마인즈' 한계…토종 OTT 개발하려면 M&A까지도 생각해봐야"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

MBC PD들이 연출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피지컬:100' '나는 신이다' 흥행은 지상파의 생존을 위한 현실과 딜레마를 보여줬다. MBC 제작진이 만들었지만 지적재산권(IP)은 넷플릭스 소유가 되고, 성공한 PD는 방송사를 떠난 결과에 방송계 평가도 엇갈린다. 지난해까지 KBS 공영미디어연구소장을 역임한 유건식 박사(언론학)는 공영방송다운 콘텐츠와 IP 확보, 정부 차원의 진흥 정책 등이 보장돼야 '공영미디어'가 생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유건식 박사는 21일 한국방송학회 봄철정기학술대회에서 'OTT 환경에서 한국 방송의 역할 진단 및 방향 모색' 주제로 발제를 했다. 이날 유 박사는 한국 지상파 방송사업자들이 2011년 종합편성채널 출범, 2016년 넷플릭스 국내 진출 등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고 돌아봤다. 미디어 산업이 OTT 중심으로 재편된 지금은 제작비 경쟁을 따라갈 수 없다. “넷플릭스 스위트홈이 30억, 수리남이 60억 정도로 만들어졌는데 지상파에서 10억 이상 제작비를 들여 만들면 망한다. 매출은 정체돼 있기에 제작비를 많이 쓸 수 없다. 제작비를 못 쓰는 만큼 밀리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유 박사는 171개 제작사 대상 선호도 조사에서 지상파는 해외OTT, 종편PP, 국내OTT에 이어 4위로 나타난 현실을 전했다.

그럼에도 유 박사는 “한국 콘텐츠·방송 시장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지상파들이 기본 의무는 다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희망을 걸어볼 수 있는 요인으로는 “한류 확산”을 꼽았다. 그는 “한류가 동남아, 일본, 중국까지 갔다 꺾일 뻔 했는데 넷플릭스가 살려줬다. 전 세계 190개국에 동시 유통이 되면서 한류가 확장된 건 사실”이라며 “'2022년 해외 OTT 이용행태 조사 보고'(방송통신위원회·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에서 한국 콘텐츠가 43.1%로 미국(90.4%)에 이은 2위”라고 했다. 그러면서 넷플릭스 '톱(top)10' 중 한국 콘텐츠가 4건으로 36억 시간 소비됐으며, OTT 순위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의 상위 TV쇼 211건 중 33건이 한국 콘텐츠라고 덧붙였다.

▲4월21일 부산 경성대 건학기념관에서 진행된 한국방송학회의 2023 봄철정기학술대회에서 유건식 언론학 박사(KBS 제작기획2부)가 'OTT 환경에서 한국 방송의 역할 진단 및 방향 모색' 주제로 발제하고 있다. 사진=한국방송학회 유튜브

이어서 유 박사는 공영방송이 공영미디어로서 생존하려면 △IP 확보 △OTT와 차별화된 콘텐츠 △글로벌 플랫폼과의 협업 △정부 정책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특히 IP 중요성을 두고 유 박사는 “'피지컬:100' '나는 신이다'(MBC PD가 연출한 넷플릭스 오리지널)처럼 지상파에서 만들어 넷플릭스에 공급하는 게 과연 맞는 것인가. 문제는 IP를 포기하면서까지 이쪽으로 갔다는 것”이라고 했다. IP를 유지한 모범 사례로는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JTBC '재벌집 막내아들'을 꼽았다.

콘텐츠 차별화 방향으로는 “피곤할 때 집에 가서 TV를 틀었을 때 편안하게 볼 수 있는 드라마”를 제안했다. 미국 연예전문매체 인디와이어가 '굿 닥터' 성공 비결로 분석한 '온수 목욕 TV'(Warm Bath TV) 효과처럼 괴로운 세상에서 기분 좋은 콘텐츠를 추구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유 박사는 “영상물등급위원회 자료를 봤더니 전체 관람가 41%, 청소년 관람불가 23%다. 장르별로 비율이 높은 OTT가 심의 부분에서 자유롭다보니 저렇게 가고 있는 것 같은데 꼭 좋은 것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아울러 유 박사는 “콘텐츠진흥원,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전부 OTT 특화 지원을 한다고 하는데, 과연 여기만 답일 것인가. OTT '웨이브'나 '티빙' 모체인 방송에도 지금까지 이상의 지원을 해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며 “정부나 국회가 방송에 대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말만 무성하고, 방향을 못 잡는 것 같다”고 했다.

▲4월21일 부산 경성대 건학기념관에서 진행된 한국방송학회의 2023 봄철정기학술대회 참여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왼쪽부터 황성연 닐슨미디어코리아 부장, 정수영 MBC 전문연구위원, 최남숙 EBS PD. 사진=한국방송학회 유튜브

발제를 들은 지상파 공영방송 종사자들은 제도적 지원 필요성에 입을 모으면서도 방향성 면에서 다른 시각을 보였다. 정수영 MBC 전문연구위원은 “(윤석열 대통령 공약인) 미디어혁신위원회가 우리 미디어 정책이나 제도를 혁신해야 한다라는 논의가 현실화되지 못한 상태에서 정부가 미디어·콘텐츠산업 융합발전위원회를 설치해 '글로벌 미디어 강국을 실현하겠다' 'K콘텐츠 초격차 산업화를 구현하겠다'라고 발표했다. 산업적 측면에서 OTT 활성화와 해외 진출을 돕겠다라는 이야기”라며 “기존 문화 공론장 역할을 해왔던 지상파 공영방송이 공공미디어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게끔 우리 사회와 정치권과 정책 소관 기구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고민과 공론화가 시급하다”고 했다.

최남숙 EBS PD는 “EBS는 '위대한 수업 그레이트마인즈'를 갖고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은 심정으로 플랫폼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장렬하게 전사하고 있다”며 “정부 지원을 받았기에 국내에는 무료로 지원하고 해외에선 개발도상국을 뺀 선진국에 유료 시청 서비스를 제공했는데 그간 들인 비용이나 기간에 비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라고 자평했다. 그는 “토종 OTT 개발 도전이 계속 되려면 지상파 종사자들이 M&A까지도 생각해볼 수 있어야 한다”며 “OTT 시대에 맞는 정신을 가져야 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드린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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