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의 파워 인터뷰 | 박유현 DQ연구소 대표] “기술이 인간을 공격한다?… 남은 건 스피릿, DQ형 인간 돼야”

김지수 마인즈 커넥터(Minds Connector) 2023. 4. 25.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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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현 DQ연구소 대표 하버드대 수리통계학 박사, 전 보스턴컨설팅그룹 디지털 미디어 애널리스트 사진 박상훈 조선일보 기자

“왜 아이들에게 기계와 경쟁하라고 가르칠까? 기계와 인간 존재 방식이 다르다. 기계는 일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인간은 사랑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박유현의 책 ‘DQ 디지털 지능’에서.

김지수 마인즈 커넥터(Minds Connector)전 조선비즈 문화전문기자,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위대한 대화’ 저자

디지털 지능지수(DQ) 글로벌 창시자 박유현 박사가 영국 펭귄 북스에서 낸 책을 국내에 번역 출간한 책 ‘DQ 디지털 지능’에는 폭주하는 기술에 맞서는 담대한 인문학적 질문부터 국제사회에 DQ가 천명되는 드라마틱한 여정이 사려 깊은 톤으로 기술되어 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기술과 아이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 당신의 생각하는 능력은 괜찮은가? 스마트폰을 가질 준비가 되었는가?’

지난 10여 년간 이 시대의 선명한 질문을 품고 솔루션을 찾아낸 소셜 임팩트 리더 박유현을 인터뷰했다. 그는 기계는 인간보다 똑똑하고 친절하니 기계와 경쟁할 생각은 말라고 충고했다.

박유현 DQ연구소 대표. 사진 박상훈 조선일보 기자

지능지수(IQ)와 감성지수(EQ)가 가고 이제 DQ가 왔다고. 무슨 뜻인가.
“(미소 지으며) 어느 날 문득 공항에서 컨베이어벨트가 지나가는 걸 보고 깨달았다. 산업의 구조가 바뀔 때마다 인간은 보디(body), 마인드(mind), 스피릿(spirit)으로 이어지는 순차적인 능력을 요구받아 왔다.

1, 2차 산업혁명 때까지는 보디 스킬(body skill)로 농부가 되고 공장의 노동자가 됐다. 그 흐름에 맞춰 공교육이 생겼고, 머리 쓰는 IQ가 나왔다. 3차 정보화 혁명이 일어나고, 사람들이 도심의 오피스에 모여 컴퓨터로 일하면서, 감성지능 EQ가 중요해졌다.

보디 스킬을 갖춘 똑똑한 아이, 마인드 스킬(mind skill)을 갖춘 친절한 아이가 교육 목표였고, 인재였다. 100년 주기로 이런 변화가 있었는데, 갑자기 50년 만에 인공지능(AI) 기반의 4차 산업혁명이 일어난 거다. 기계가 똑똑함과 친절함에서 인간을 앞질러 버렸다. 심지어 AI는 시도 쓰고 그림도 그린다. 그러면 남은 게 뭔가? 보디, 마인드 그다음은? 스피릿이다. 그 스피릿을 이야기하는 게 DQ다.”

스피릿이 어떻게 지능으로 표현될 수 있나.
“스피릿은 인류 공통의 가치 체계(Universal moral value), 윤리로 표현된다. 자제력을 갖춘 지혜로운 인간이 DQ의 교육 목표다.”

정확하게 DQ가 뭔가.
“DQ는 윤리적으로 디지털 기술을 이해하고 이용하는 능력이다. 테크니컬 스킬과 디지털 시민 윤리, 두 가지를 통합하는 능력이다. 최근 들어 디지털 역량이 전 세계 어젠다가 되면서, 강남 엄마들은 아이한테 코딩 가르쳐야 한다고 난리였다. 코딩 기술이 아니라 온라인에서 사는 법 자체를 배워야 한다. 디지털이 곧 라이프인 시대잖나. 그래서 DQ의 첫 번째 목적은 윤리적인 디지털 시민 되기이고, 두 번째가 디지털 창의력, 세 번째가 혁신 경쟁력이다.”

박유현은 하버드대에서 수리통계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서 일하다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디지털 공해 세상에서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사회 운동을 시작했다. 2008년, 우연히 본 충격적인 뉴스 페이지가 계기였다.

어떤 일이 있었나.
“BCG 애널리스트로 미디어 동향을 분석하다 우연히 ‘소아성애자 조두순 사건’의 피해자인 ‘나영이’의 사진 밑에 미성년 음란광고가 붙은 걸 봤다. ‘열여섯 살 여자아이가 당신을 침대에 초대합니다’라는…. 순간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나영이 사진과 미성년 포르노 광고는 재수 없이 같이 걸린 게 아니었다. 2007~2008년은 정보기술(IT)업계의 티핑포인트(tipping point)였다.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SNS)가 나오고, 모든 돈이 IT로 모이고 있었다. 미디어 산업이 살아남기 위해 찾은 구조가 자극적인 콘텐츠와 광고의 결합이었다. 그때 예감했다. 인폴루션(infollution·정보 공해)은 우리나라의 여덟 살 여자아이만의 희생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글로벌한 문제라는 걸.”

기술 기업에 대한 법적 제재는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서서히 공론화되는 중이다.

전 세계 부모들은 지금 디지털 기기 사용을 두고 아이들과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안타깝지만 우리 아이들은 이제까지 디지털이 보모였다. 배속에서부터 뇌가 즉각적인 보상에 반응하도록 단련됐다. 부모가 그 메커니즘을 알아야 한다. 집중한다는 말을 영어로 ‘페이 어텐션(Pay attention)’이라고 하지 않나. 관심은 지불하는 거다. 책을 읽는 것도 관심을 지불하는 거다. 지불 과정이 있어야 지식의 사유화가 일어난다. 그게 생각하는 힘이다. 그런데 디지털 영상은 ‘페이 어텐션’을 요구하지 않는다. 알고리즘에 따라 자극적 콘텐츠의 그물망 안에 머무른다.”

그럴 땐 반사 신경만 남은 것 같다. 어느 순간엔 IQ도 EQ도 작동 불능이 된 듯싶다.
“맞다. 어텐션은 정보를 잡아 오는 능력이다. 주체적인 능력이다. 그게 없으면 무늬만 인간인 형태로 끌려다니는 거다.”

당신은 기술의 윤리 문제를 들고나왔지만, 유엔(UN), G20,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는 물론이고 구글, 틱톡, 싱텔 등 정보통신기술(ICT) 기업과 두루 일했다. 느낀 점은 무엇인가.
“다들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일한다는 거다. 나는 영웅, 반대쪽은 악당으로 몰아붙여서는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안전과 능력을 동시에 성취하기 위해 ‘표준’을 만들어내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고 했다. DQ는 2020년 미국 전기전자공학회(IEEE)에서 디지털 역량 및 디지털 리터러시의 국제 표준으로 공인됐다. DQ와 함께 만든 COSI(실시간 아동 온라인 안전 지수)도 앞으로 중요하게 쓰일 거라고 했다.

각국의 반응은 어떤가.
“반반이다. 반은 반기고, 반은 반대한다. G20에 디지털 경제 지수를 평가할 때 COSI를 반영하라고 제안했다. 그러면 COSI가 높은 나라가 진짜 디지털 역량을 가진 스마트 국가로 인정받게 될 거다.”

쟁점이 뭔가.
“디지털 경제 개념을 어떻게 보느냐다. 반대하는 쪽은 디지털 경제를 플랫폼 경제로 정의한다. 기술 범위로만 한정하는 거다. 그런데 플랫폼의 광고 기반이 바로 우리의 개인정 보고 삶 그 자체잖나. 우리의 라이프를 자원으로 쓰고 있는 거라면, 디지털 경제를 ‘디지털 소사이어티(Digital Society)’로 넓게 사고해야 한다. 그래야 개인의 웰빙과 안전을 기본으로 하는 지속 가능 시스템이 나올 수 있다.

문제는 정치인과 기업이 아이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다. 정치인은 가짜 뉴스가 선거에 유리하고, 기업은 사생활과 개인 정보가 필요하다. 그런데 아이들은 선거권도 없고, 구매력도 없으니 우선순위에서 늘 밀린다.”

그래서 더욱 ‘스탠더드’가 중요한 것인가.
“그렇다. ‘이건 기본이다!’가 되면, 정부도 기업도 따를 수밖에 없다. 알고리즘 디자인 단계에서 윤리적으로 안전한 설계가 되도록 DQ와 COSI가 입구에서 유도하는 거다. ‘아이들이 보호받을 근거’가 되는 거다.”

DQ를 교육하면서 본 각 나라 아이의 구체적인 상태는 어떤가.
“인도에서 DQ 교육하면서 알게 된 사례가 있다. 열한 살 여자아이가 친구들의 포르노 누드를 찍어서 아동 성매매 사이트에 팔았다. 동급생들과 돈도 나눠 가졌다. 수익도 내고 분배까지 했으니, 디지털 스킬도 창업가 정신도 훌륭한 아이다. 윤리만 빼면! 그 아이는 DQ를 배우기 전까지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아예 못 했다고 했다. 다행히 골든타임에 구조해서 영혼이 망가지는 걸 막을 수 있었다.”

그는 종종 기술 기업이 신제품을 발표하는 현장에 초대돼 파티의 흥을 깨는 역할을 한다. ‘기술과 아이 중 무엇이 중요한가?’라고 질문하면서.

끝없는 보상 체계로 충동 조절이 안 되는 이 상황을 기업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
“(미소 지으며) 테크놀로지 회사들도 생명의 존귀함과 윤리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새로운 노다지 마켓이 눈앞에 있으면 브레이크를 걸기 힘들다. 경쟁자들과 투자자들이 목을 조르는 상황에서, 언제 일어날지도 모를 위험을 계산할 여력이 없는 거다.”

‘일단 만들고 용서는 나중에 구한다’는 구호가 그래서 생기는 건가.
“그래서 나 같은 게이트키퍼가 필요한 거다. 기술 산업은 정신없이 달리는 고속열차다. 그 속도를 늦추는 윤리적 직언을 누군가는 해야 한다. 현실을 바꿀 힘이 있는 사람들, 정책 결정권자들이 옐로카드를 줘야 하는데, 당장 현실적으로 안 되면 교육으로 해야 한다. 그들은 그들의 일을,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하는 거다.”

일론 머스크는 AI와 경쟁하기 위해 아이들 머리에 칩을 심어야 할 수도 있다고도 했는데, 이런 식의 경고를 어떻게 생각하나.
“눈 나쁘면 안경 쓰듯이 머리 나쁘면 칩을 심는다는 건데…, 인간의 프라이버시와 자유의지를 침해하면 그건 보조 도구가 아니다. 내 생각과 내 정보가 기계와 연결되면 그건 종속이다.

‘엑스맨처럼 되겠다’고 머리에 칩을 심어 경쟁하고 ‘안 하면 바보가 되는’ 그런 세상이 우리가 정말 원하는 세상인가. 그게 과연 인간을 위한 일일까. 질문해야 한다. 소수의 기술 전문가가 예측한 미래를 왜 우리 것으로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는지. 우리가 진짜 원하는 미래는 어떤 모습인지. 분명한 건 이 세계의 공통 윤리는 ‘인간은 존중받아야 한다’다.”

‘기계는 일하기 위해서 인간은 사랑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문장에 감동했다.
“맞다. 인간은 기계보다, 엑셀(Excel)보다 기능 면에서 떨어진다. 그러니 기계보다 경쟁적으로 똑똑해져야 할 이유가 없다. 우리가 멍청해질 것을 걱정하지 말고 우리의 자유의지가 없어질 것을 걱정해야 한다. 우리 존재의 목표가 효율적인 일꾼인가? 아니잖나. 인간은 생각하고 사랑하는 존재다.”

우리가 기술 발전 속도를 늦출 용기를 발휘하지 못한다면, 다른 대안은 있나.
“기술은 은혜로운 신인 척하지만, 우리는 레고블록처럼 기술을 분해해서 이해해야 한다. ‘내가 만들 수 있는 건 이해할 수 있다’라는 생각으로! AI도 수학적 원리에 기반해서 사람이 만든 기계일 뿐이다. IQ가 높은 사람은 똑똑하고 EQ가 높은 사람은 다정하며 DQ가 높은 사람은 지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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