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의 사진집 이야기 <62> 스탠리 그린버그의 ‘샘과 우물, 맨해튼과 브롱크스’] 같은 장소의 100년 전과 현재, 변화한 시대상을 담다

김진영 2023. 4. 25.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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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리 그린버그(Stanley Greenberg)의 ‘샘과 우물, 맨해튼과 브롱크스(Springs and Wells, Manhattan and the Bronx)’의 표지. 사진 김진영

번성한 도시는 수많은 시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것은 비단 지상(地上)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하(地下)도 마찬가지다. 평상시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급수관이나 가스관 등 지하 매설물 공사 현장을 보게 되면 그제야 도시 지하에 수많은 생활 기반 시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그러한 땅 위에서 편리하게 살고 있다는 점을 여실히 깨닫게 된다.

과거 지하 급수관이 없던 시절, 사람들은 자연이 제공하는 물을 사용했다. 작은 샘이나 하천에 흐르는 물을 사용하고 우물을 통해 지하수를 얻는 등 물을 공급받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이용했다.

김진영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크고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 중 하나인 미국 뉴욕 역시 현재의 모습으로 발전하기 전에는 지역 주민들이 샘과 우물을 사용했다. 초기 뉴욕 주민들은 자기 거주지 근처에 얕은 개인 우물을 파서 물을 얻기 시작했고 1670년대에는 최초의 공중 우물이 만들어졌다. 뉴욕시가 깨끗하고 안정적인 물 공급에 박차를 가한 것은 1830년대에 이르러서였다. 뉴욕시는 현재 웨스트체스터 카운티에 있는 크로톤 강에서 물을 끌어와 사용할 수 있는 수로 건설을 시작했고 1842년 가동에 들어가면서 대량의 담수 공급 시대를 열었다. 더 이상 샘에서 물을 퍼오지 않아도 되고 우물에서 물을 길어도 되지 않는 시대가 도래하자, 지역 주민들에게 식수원이 되어주었던 샘과 우물이 점차 사라져갔다. 사진가 제임스 류얼 스미스(James Reuel Smith)가 관심을 가진 것은 바로 이 사라져가는 것들이었다.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의 콘크리트 밑에 묻히기 전, 뉴욕 주민들의 식수원이 돼줬던 역사적인 샘과 우물을 그는 사진에 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책에는 미국 뉴욕 맨해튼, 브롱크스에 있는 샘과 우물을 1897~1903년, 2016~2020년에 찍은 두 사진이 교차하며 전개된다. 사진 김진영

1897년부터 1903년까지 그는 삼각대와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자전거로 맨해튼과 브롱크스 전역을 여행하며 160개가 넘는 샘과 우물을 조사하고 사진을 찍었다. 그는 꼼꼼히 메모를 남기는 사람이기도 했다. 촬영 위치 및 수자원의 상태에 관한 정보를 기록했고 주변 환경을 묘사하는 글을 썼으며 이 과정에서 만나게 된 사람들과의 일화를 적었다.

“1897년 9월 27일. 3주 전에만 해도 볼 수 있었던 샘 위로 집을 지을 기반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원래는 판잣집이 있었고 1년 전만 해도 이 샘을 사용했다.”

“1897년 12월 16일. 제임스 놀스는 암스테르담 애비뉴 162번가에 한때 큰 우물이 있었다고 말해줬다. 근처에서 그는 소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는데 어느 날 소가 안 보여 찾으러 나갔지만, 소는 보이지 않고 우는 소리만 들렸다고 한다. 마침내 소리를 찾아가 봤더니 소가 우물에 빠져있었다. 15피트 깊이나 되는 우물이어서 인력꾼들을 고용해 소를 끄집어냈다고 한다.”

그는 이 작업에서 사진가이자 역사학자이자 인터뷰어였다. 그가 아니었다면 이 생생한 기록들은 존재하지 않았을 터였다. 그는 이렇게 기록한 사진과 글을 뉴욕역사협회(New-York Historical Society)에 전달하고 책 출간을 맡겼다. 그리고 그의 사후인 1938년에 책이 출간됐다. 책의 제목은 ‘19세기 말 무렵 뉴욕시 맨해튼과 브롱크스의 샘과 우물(Springs and Wells of Manhattan and the Bronx, New York City, at the End of the Nineteenth Century)’. 이 책에서 뉴욕역사협회는 스미스에게 샘과 우물이 매우 중요한 것이었으며, 그가 항상 자신의 연구 결과를 출판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각 대수층(帶水層) 지점에 대한 세심한 기록을 남겼다고 설명한다. 스미스 사후에야 비로소 그가 바라던 대로 책을 통해 그의 사진과 글이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올 것이라는 건 스미스가 생전에 예상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이 다른 책의 탄생으로 이어지리라는 걸 과연 상상이나 했을까.

수십 년이 지난 후 또 다른 사진가 스탠리 그린버그(Stanley Greenberg)는 도서관에서 우연히 이 책을 발견했다. 그린버그는 이건 미친 사람이 한 짓이 틀림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꼼꼼하고 집요한 기록에 놀랐다. 그리고 그는 곧바로 깨달았다. 자신이 할 일은 이 위치들에 지금 다시 가서 현재를 사진으로 찍는 것이라는 걸 말이다.

그리하여 그는 책에 담긴 기록을 토대로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스미스가 방문했던 모든 장소를 다시 방문했다.

“스미스는 그가 발견한 것에 대해 즐거워했고 샘과 우물, 그리고 그가 만난 사람들에 관한 매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마실 물을 뜨거나 우물 안을 들여다보는 등 아이들처럼 포즈를 취하며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다. 몇몇 사진에는 스미스의 자전거도 보인다. 같은 장소들을 발견해 나도 사진을 찍었다.”

100년이 넘는 시간에 대부분의 장소가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달라진 모습이었다. 한때 샘이나 우물이 있었다고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개발되어 있거나 혹은 숲이나 공원 등으로 관리되고 있었다. 풀을 뜯는 소들이 있던 작은 연못은 차량이 오가고 육교가 있는 번잡한 교차로가 되었고, 나무 우물이 있던 초원에는 벽돌 아파트가 들어서 있었다. 그는 이렇게 각 지점의 변화된 현재를 사진에 담았다.

스탠리 그린버그가 2021년 펴낸 책 ‘샘과 우물, 맨해튼과 브롱크스(Springs and Wells, Manhattan and the Bronx)’에는 그리하여 서로 다른 두 시대의 사진이 담겨 있다. 첫 번째는 1897년부터 1903년까지 스미스가 찍은 샘과 우물의 흑백 사진, 두 번째는 2016년부터 2020년까지 그린버그가 찍은 변화된 시대상이 담긴 컬러 사진이 책 안에서 교차하며 전개된다.

모든 페이지에는 사진이 찍힌 장소의 주소나 지명이 적혀 있다. 이를 통해 독자는 그린버그가 스미스와 같은 장소에서 촬영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동일한 장소의 과거와 현재를 한눈에 즉각적으로 볼 수 있게 된다. 100년이 넘는 시차가 있는 두 사진을 통해, 사진은 한 장소의 전과 후를 비교해 보여 주고 시간의 흐름에 따른 대상의 놀라운 변화가 독자에게 전달된다. 이는 특정 순간의 기록물인 사진이 갖는 놀라운 힘이라 할 수 있다.

스미스의 책을 발견해 그것을 토대로 그린버그가 새로이 만든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잊고 있던 혹은 몰랐던 역사적 변화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스미스는 당시 잊혀 가고 있던 샘과 우물을 기록했고, 그린버그는 이제 완전히 잊혀 버린 샘과 우물의 존재를 다시금 상기시킨다. 이 책은 지금은 당연한 것들이 그렇지 않았던 시절을 생각해보게 하고, 이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 뒤에 지나온 과거가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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