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영의 세상만사 <2>] 가까운 이웃을 다시 찾는 미국…한국의 위기와 기회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2023. 4. 25.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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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서울대 환경대학원 공학박사, 전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연구관

한때 미국을 중심으로 리쇼어링(reshoring·생산 기지 본국 회귀)이라는 단어가 각광받던 시절이 있었다. 해외로 나갔던 제조업이 다시 본국으로 돌아오는 것을 의미하는 리쇼어링은 제조업 일자리의 회복과 이를 통한 사회 안정이라는 의미와 더불어 지구 끝까지 뻗어 나간 세계화의 숨 가쁜 움직임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희망도 내포하고 있었다. 2000년대 초반 미국에서 셰일오일 및 셰일가스의 산업적 생산이 가능해지면서 미국은 에너지를 중심으로 한 생산 비용 하락을 경험하게 되었으며, 이를 토대로 해외로 이전했던 기업들이 미국 본토로 귀환할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중국을 중심으로 형성된 글로벌 밸류체인에 익숙해졌던 대부분 기업으로서는 범용 산업 부문의 제조업 기반이 허약해진 미국으로의 귀환을 선뜻 결정하기 어려웠다. 결국 리쇼어링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미국으로서는 제조업 중심이 이미 중국으로 넘어갔음을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사진 셔터스톡

인접 국가로 생산 시설 옮기는 니어쇼어링

최근 니어쇼어링(nearshoring)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해외 기업들이 미국으로 귀환이 어렵다면 가까운 곳, 미국의 이웃이라고 할 수 있는 멕시코와 캐나다로 돌아오는 것으로도 나쁘지 않다는 의미다. 이러한 미국의 생각은 2022년 제정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잘 드러나 있다. 이차전지와 관련된 보조금 조항에 있어 관련 부품이 미국이 아닌 멕시코와 캐나다에서 생산되더라도 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한 것이 대표적이다. 미국으로서는 1990년대 중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 이후 하나의 경제권을 형성해왔던 북미 지역을 기반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새로운 질서를 형성하고자 하는 노력을 강화하고 있으며, 캐나다와 멕시코 역시 이러한 흐름에서 주어지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근 국제경제적으로 나타나는 가장 특징적인 사항은 지정학적 긴장으로 인해 공급망이 글로벌 시장에서 벗어나 각각의 지역 시장으로 이전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2022년부터 이러한 속도가 점차 빨라지고 있다. 국가 안보에 필수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상품과 서비스가 잠재적인 적대 세력에 의존하는 위험을 낮추고 지역 내 복원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공급망과 밸류체인의 재배치와 이전이 본격화하면서 수요처와 가까운 곳으로 이전하는 니어쇼어링으로 구체화되고 있는데, 이러한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미국이다.

최근 미국 정부는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중요한 전략 제품이 미국 또는 인접 국가에서 생산돼야 함을 강조하면서 이를 지원하기 위한 본격적인 산업 정책을 수립하고 있다. 당연히 기업들로서는 이러한 흐름에 맞춰 생산 시설을 재배치할 수밖에 없으며 미국 또는 그 인접 지역인 캐나다와 멕시코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북미 지역은 리쇼어링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매우 이상적인 지역이다. 그 자체로 대규모 시장일 뿐만 아니라 이러한 시장을 통합시키는 USMCA(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라는 제도적 틀을 이미 확보하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의 풍부하고 다양한 천연자원, 멕시코의 저렴하지만 숙련된 인재 등이 이 지역 경쟁력을 높인다.

2023년 1월 9~10일(현지시각) 멕시코시티에서 개최된 북미 정상회담에서 3국 정상은 북미 지역에서의 생산 확대와 공급망 구축을 위해 상호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회담에서 3국 정상은 아시아로부터의 수입 물량 가운데 25%를 북미로 재배치하도록 노력하자는 데 합의함으로써 본격적인 니어쇼어링의 시대가 시작됐음을 알렸다.

떠오르는 멕시코

미·중 무역 분쟁과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에 따른 공급망 병목 현상으로 인한 상품 조달의 어려움과 높은 운송 비용과 지연을 경험했던 미국 기업들이 자국 시장으로부터 가까운 공급 업체를 찾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수요에 맞춰 공급망을 새롭게 이전·구축해야 하는 외국 기업들로서는 우선적으로 멕시코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3150㎞의 국경을 통해 미국과 접하고 있는 멕시코는 저렴한 인건비라는 장점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전기차 생산 업체인 테슬라가 멕시코에 대규모 공장을 건설하기로 한 것 역시 이러한 장점에 주목한 것이다. 멕시코 북부에 있는 누에보레온주의 산타 카탈리나에 들어설 테슬라의 기가팩토리는 텍사스주에 있는 기존 공장에 비해 약 70% 확장된 17㎢(약 514만2500평)의 면적으로 지어질 예정이다. 테슬라의 멕시코 투자는 초기 단계에 50억달러(약 6조5835억원) 규모이지만 점차 증가해 최종적으로는 100억달러(약 13조167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니어쇼어링은 멕시코에 산업 플랫폼 활성화 및 인프라 현대화와 더불어 숙련된 노동력의 확대와 좋은 일자리 창출을 통해 경제를 한 단계 고도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이다.

멕시코는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상당한 생산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자동차의 경우 연간 314만 대 생산 규모로 독일에 이어 세계 7위에 이른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멕시코에 대한 최근 외국 기업의 투자는 의류·가구 같은 노동집약적 저부가가치 제품이 아닌 전자 제품, 자동차 부품, 항공·우주, 운송, 의료 장비 분야로 변화하고 있다. 또한 멕시코는 이미 50개국과 14개의 자유무역협정(FTA) 및 30개의 투자 촉진 및 보호 협정을 체결하고 있어 이를 활용할 경우 중국을 상당 부분 대체할 수 있는 수출 기지가 될 수 있다는 장점도 보유하고 있다.

향후 10년 동안 600억~1500억달러(약 79조~197조5000억원)의 자금이 멕시코로 흘러들어가 생산 시설을 소비 중심지에 더 가깝게 이동시키는 니어쇼어링 흐름이 강화될 것은 명확해지고 있다. 2022년에는 반도체 제조 및 고급 패키징, 중요 광물 채굴, 배터리, 전기자동차, 물류, 의료용품 같은 전략적 부문에 300억달러(약 39조5000억원)의 투자가 진행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니어쇼어링 흐름은 이미 본격화되고 있다. 멕시코에 있는 바하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2022년 상반기에만 의료, 전자, 자동차, 금속 및 식품 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미국, 중국, 한국, 독일, 프랑스에 기반을 둔 55개 회사로부터 총 12억2000만달러(약 1조6000억원) 규모의 투자가 집행되는 등 미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멕시코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변화의 흐름이 빨라지고 있다.

북미 경제의 통합과 강화 논의가 진행되면서 오랫동안 북미자유무역지대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표명하던 미국 의회 분위기도 변화하고 있다. 중미 및 남미 국가들과 관계를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법률안이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빌 캐시디(Bill Cassidy) 상원의원과 마리아 살라자르(Maria Elvira Salazar) 하원의원이 제안한 미주무역 및 투자법(Americas Act)이다. 전통적인 미국의 세력권으로 여겨지는 서반구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이 법안은 USMCA를 확대해 다른 국가도 여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을 포함하고 있다. 기업에 대한 세금 인센티브 및 무역 특혜를 통해 기업들이 중국에서 벗어나 서반구로 공급망을 이전하도록 장려하는 것은 물론 미국 정부 내에 대규모 기반 시설 투자와 니어쇼어링 및 리쇼어링 기회에 대한 지원을 통해 파트너 국가의 민간 부문 경제 개발을 제공하는 미주무역투자공사(Americas Investment Corporation)를 창설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지난 30년간 세계화 과정에서 가장 이득을 본 국가는 중국 그리고 대한민국이다. 세계화 시대가 저물고 니어쇼어링이 본격화되는 현재의 흐름은 우리에게는 큰 위기다. 중국이라는 시장과 생산 기지를 대체할 곳을 찾아야 하는 우리로서는 북미 지역에 대해 관심을 높이고 이 지역의 변화 흐름에서 기회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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