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로이트 글로벌 경제 리뷰] 저탄소 미래를 위해 지불해야 할 진짜 비용
온실가스 배출 감축은 지구와 인류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관련 실상은 경제성장과 생산성 지표에 정확히 반영되지 않는다. 전 지구가 지속 가능성 시대로 진입하면서, 세계 각국의 삶의 질 지표는 하락하거나 과거보다 상승세가 둔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러한 지표에 속아서는 안 된다. 청정에너지 전환은 공짜로 얻을 수 없지만, 이를 위해 지불해야 한다고 집계되는 ‘비용’은 실상을 반영하기보다는 인위적으로 설계된 경제지표라 할 수 있다. 실상을 들여다보면, 인류가 가진 것보다 많은 것을 누리며 살고 있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지속 가능성의 미래에는 가진 것만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은 저탄소 미래를 향한 경제 전환에 대규모 투자를 하겠다는 정부 의지를 나타낸다. 앞으로 쟁점은 탄소 배출 제한 정책이 경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느냐가 될 것이다. 전기차와 재생에너지, 여행 자제와 에너지 절약 등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이러한 노력을 기울일 가치가 있는 것인가. 그런데 현행 경제지표들은 저탄소 전환이 장기적으로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히 나타내지 못할 수 있다.
온실가스 배출 따른 비용 배제 현행 GDP, 경제성장 과대평가
국민소득(GNI)과 국내총생산(GDP) 지표는 경제활동을 총체적으로 측정하기 위해 설계됐다. 하지만 일부 요인은 집계에서 배제하는 것이 일종의 관습이다. 요리와 청소, 양육 등 가사 활동 같은 비(非)시장 생산은 GNI와 GDP에 포함되지 않는다. GDP에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환경오염 등 비시장 비용 또한 집계되지 않는다.
이는 모종의 음모도 아니며 경제학자들이 우매하거나 편향적이어서도 아니다. 이는 공공연한 문제로 제기되고 있으며, 경제 교과서라면 모두 다루고 있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왜 집계 방식을 수정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것일까.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비시장 생산과 비용을 집계에 포함하는 것이 집계 목적(비즈니스 사이클 측정 등) 달성에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다양한 활동을 비교·분석하기 위해 시가를 측정하는데, 비시장 활동에는 시가를 매기기가 쉽지 않다.
온실가스 배출에 따른 비용은 시장을 통해 지불되지 않고, 미래에 지불할 비용으로 남는다. 그렇다면 비용을 얼마나 지불해야 할까. 다시 말해 온실가스 배출에 따른 비용을 포함하지 않은 GDP는 얼마나 과대평가된 것일까.
2020년과 2050년 온실가스 배출에 따른 비용을 포함했을 때 GDP 변화를 추정 및 전망한 표를 보면 기존 방식으로 집계한 GDP 수치가 탄소 배출의 사회적 비용을 반영한 GDP보다 훨씬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정책 변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사회적 비용은 점점 늘어날 것이다. 따라서 온실가스 배출에 따른 비용을 포함한 GDP 성장률은 현재 전망치보다 낮아질 수 있다. 결론적으로 현행 GDP는 전반적인 경제 생산을 과도하게 낙관한 지표라 할 수 있다.
부정확한 GDP 측정이 초래하는 문제
경제지표를 과대평가하면 두 가지 중대한 문제가 발생한다. 첫째, 생산성이 지속적으로 과대평가된다. 실제 GDP 성장률이 공식 성장률보다 낮다면, 생산성 증가율도 과대평가될 수밖에 없다. 둘째, 통계 기관과 민간 기업들의 수익성 측정 오류가 지속된다.
저탄소 시대로 접어들면서 공식 GDP 성장률이 낮아지면, 노동생산성 증가율과 자본 투자 수익률이 떨어지고 기업 생산성도 악화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정확히 측정하면 이러한 지표들은 둔화되기보다 가속화되는 것일 수 있다. 현행 집계 방식을 고수하면 공식 지표들은 생산성 증가세가 둔화되고 있다는 결론을 도출하고, 결과적으로 경제가 악화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전문가와 대중은 기존 방식으로 집계된 지표가 기후변화 대응 노력의 영향을 호도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지표가 현실을 왜곡하는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기업들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대규모 투자에도 불구하고 수익성이 악화할 수 있다. 하지만 수익성 악화는 온실가스 배출에 따른 비용이 비로소 올바르게 내재화되고 있다는 뜻이다. 과거 온실가스 배출에 따른 비용을 무시한 채 집계된 수익성이 실제보다 높은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 진짜 문제다. 두둑한 현금의 모습으로 나타난 수익성은 기업들이 마땅히 치러야 하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채 얻은 신기루 같은 것이다.
자본재의 가치가 왜곡돼 있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과거 대부분 기업은 기후변화 비용을 무시한 채 건축물과 기계, 지식재산 등 자본재에 투자했다. 하지만 기후변화 비용이 수익에 내재화되면, 기존 자본재의 가치가 과대평가돼 있다는 사실이 드러날 것이다. 저탄소 시대가 본격화되면 과대평가됐던 자본재의 가치가 기후변화 비용을 반영한 실제 가치로 매우 빠르게 하락할 것이다.
다소 극단적 예시이기는 하지만, 멕시코 만류가 역류하면 영국 평균기온이 섭씨 3.4도 하락해, 자본재 가치가 극적으로 하락하는 사례가 속출할 수 있다. 영국 내 건축물 자본재 대부분을 더 추운 기후에 맞춰 개조해야 하는데, 개조되지 못한 자본재는 가치가 하락할 것이고, 해당 자본재를 계속 사용해 현 수준의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해선 막대한 투자금이 필요해진다.
과거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 적이 있다. 1970년대 초 오일쇼크 당시 값싼 유가가 지속되리라 기대하고 마련한 자본재의 가치가 폭락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저유가 시대만큼의 수익성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후 수십 년간에 걸쳐 휘발유를 ‘들이켜는’ 자동차와 같은 구식 자본재는 연비가 개선된 새로운 자동차로 교체됐다. 오일쇼크 때문에 전환 속도가 가속화한 것이다.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지표에 속지 말라
저탄소 미래에 적응하는 것은 수많은 논쟁이 난무하는 혼란스러운 과정이 될 것이다.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지표들은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 정책 입안자들과 대중은 앞으로 경제지표를 조심스럽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1│저탄소 시대 대비 자본재의 개조가 이뤄지면서, 1인당 GDP 성장률과 소비 증가율이 낮아지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지표 하락이 삶의 질 악화를 뜻한다는 주장은 신중하게 해석해야 한다. 과거 삶의 질 지표들이 인위적으로 과대평가됐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과거의 1인당 GDP와 저탄소 시대의 1인당 GDP를 비교하는 것은 사과와 오렌지를 비교하는 우매한 일이 될 것이다.
2│마찬가지로 생산성을 올바로 측정하면 증가율이 낮아지는 것이 당연하다. 노동자가 과거보다 적게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기후변화 비용이 비로소 정확히 반영되기 때문이다.
3│장기간 기업 수익성이 낮아지고 투자 지출이 증대하는 상황을 감수해야 한다. 기후변화 비용을 포함하면 과거 수익성은 실제로 훨씬 낮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자본 투자에 따른 수익이 낮아지는 것은 투자 지출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효율적으로 새로운 경제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
여전히 일부 전문가는 왜곡된 기업 수익성 저하와 경제 변화 지표들을 기후변화 대응 노력에 반대하는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GDP 성장률과 생산성, 수익성이 낮아지므로 인플레이션감축법 같은 기후변화 대응 노력을 철회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왜곡된 지표에 근거한 주장의 허점을 신중히 파악하고, 현행 경제지표들은 기후변화 비용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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