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욱의 법으로 보는 중국 <82>] 정부조달, 중국의 또 다른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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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서 필요한 물품을 납품받는 것을 정부조달이라고 하는데, 중국에서는 이를 정부채구라고 한다. 정부채구법 제2조에서 정부채구란 ‘각급 국가기관, 사업 단위와 단체 또는 조직이 재정성 자금을 사용해서 법에 따라 제정된 집중 구매 목록 내 또는 구매 한도액 이상의 물건, 시설 공사 계약과 서비스를 구매하는 행위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정성 자금이란 간단하게 말해 국민이 낸 세금이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정부가 필요한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니 기본적으로 ‘국산품 애용’ 원칙이 적용된다.

정부채구법 제10조에선 ‘정부조달은 국산의 제품, 시설 공사 계약 및 서비스를 구매해야 한다. 다만, 다음 각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는 예외로 한다. (1) 조달해야 하는 물품, 시설 공사 계약 또는 서비스가 중국 내에서 구할 수 없거나 합리적인 상업적 조건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경우 (2) 중국 경외에서 사용하기 위해 조달하는 경우 (3) 기타 법률 및 행정 법규에 별도의 규정이 있는 경우, 전항에서 언급한 국내 물품, 시설 공사 계약 및 서비스의 정의는 국무원 관련 규정에 따라 시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허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연세대 경영학·법학, 베이징대 법학 박사, 사법연수원 33기, 전 법무법인 율촌 상하이 대표처 대표

그런데 정부조달에서 강조하는 중국 국산 제품의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중국 법규상 명확한 기준이 없다. 그러나 실무상으로 중앙 부처가 실시한 개별적인 정부조달 가이드라인에서는 중국의 국내 산업 및 중점 제품군의 보호를 위해 국산 제품으로 인정받기 위한 비율을 규정하는 경우가 있다. 엑스레이 기계와 자기공명영상(MRI) 장비를 포함한 의료용품에 대해서는 100% 중국산 재료를 사용할 것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고, 특정 농산물에 대해서는 물가 안정을 위해 정부 구매 시 최소 조달 가격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한편 외국의 자연인, 기업, 기타 조직의 중국 경내에 관한 투자를 규정하고 있는 외상투자법 제16조는 ‘국가는 외상 투자 기업이 법에 따라 공평한 경쟁을 통해 정부조달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보장한다. 정부조달은 법에 따라 외상 투자 기업이 중국 경내에서 생산한 제품 내지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해 평등한 대우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실무상으로는 현실적인 벽이 여전히 높다고 할 수 있지만 법적으로는 중국에 진출한 외상 투자 기업에 대해 중국의 정부조달 시장에서 평등한 참여가 보장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친환경 제품 같은 정부조달 품목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이런 제품이 정부채구법상 국산품 우선 조항의 예외 항목에 해당하고, 환경보호 같은 중국이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거시적인 지표에 부합하고, 나아가 외국 기업에 대한 공평한 중국 시장 개방이라는 가치도 충족할 수 있다면 중국의 정부조달 시장에 외국 기업이 문을 두드릴 수 있는 공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한·중 수교가 30주년을 넘어선 시점에서 반복되고 있는 대중 무역 수지 적자에 대해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일부에서는 일시적 현상이라고 스스로 안위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중국 기업의 경쟁력 상승과 중국 제품의 수준 향상에 따른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문제라며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중국에 ‘유적방시(有的放矢)’라는 말이 있다. 표적을 향해 활을 날린다는 목표 지향적인 문제 해결 방법을 말한다. 앞으로 대중국 무역 적자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 제품에 대한 자신감도 중요하지만, 숨어 있는 중국 시장과 소비자를 더욱 치밀하게 연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