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함수의 위기관리 경영] 기업의 미련한 ‘사과’와 문제를 해결하는 ‘사과’의 차이
기업은 사건·사고가 발생해 피해자가 생기고 비난 여론이 높아지면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할 것을 고려하기 마련이다. 언제, 어떻게, 무슨 내용으로 해야 할지 시간적 압박 속에서 의사 결정을 해야 한다. 흔히 기업의 ‘사과문’이라는 이름으로 공개적으로 전달되는 위기 입장문은 생각보다 쉽게 구성할 수가 없다.
위기 시 기업의 사과 행위는 단순히 쪽지에 ‘사과합니다’라는 말로 담을 수 없다. 그 말로 사과의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중심으로 문제 국면을 빨리 빠져나가려는 의도가 비치는 사과는 오히려 미련한 사과에 불과하다. ‘죄송합니다’ ‘유감입니다’ ‘사죄드립니다’ ‘통감합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등으로 시작하고 마무리되는 사과의 표현은 기업 사과 행위의 본질이 아니다. 사과를 해도 비난 여론은 잠잠해지지 않고 오히려 위기가 더욱 확산되는 경우를 자주 접하게 되는 이유는 기업의 공개적 사과를 해명의 기회로 삼거나 약간이라도 어쩔 수 없음을 알리고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마음’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이 잘못됐다는 말은 아니다. 발생한 위기 내용과 상황에 따라 사실관계와 명확한 증거 자료를 기반으로 책임 관계를 규명하고 정당함을 확보하는 행위는 필요하다. 위기 상황으로 손상된 명성을 보호하고 가치를 지키는 일은 분명 능동적으로 해야 한다.
사과 없이 책임만 전가한 다국적 정유사 BP
사과했음에도 비난을 가중시키는 일, ‘미련한 사과’를 원천적으로 봉쇄해야 한다. 사과의 행위는 그 마음을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행위다. 그것은 행위자의 관점이 아니라 상대의 관점이다. 사과가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위기 상황의 맥락을 제대로 살피고 상처를 다스리며 ‘올바른 기업의 행동’을 촉진하는 언어가 돼야 한다.
2014년 4월 미국 루이지애나주 멕시코만에서 일어난 딥워터 호라이즌 기름 유출 사고는 영국의 다국적 정유사 BP(British Petroleum)에는 커다란 재앙과 같았다. 유전 현장에서 폭발이 일어나 11명의 사상자가 나왔고 막대한 원유가 멕시코만으로 흘러들어간 사건이었다. 추후 미국 규제 당국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고에 직접적인 원인이 된 행동이나 태만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복잡한 조직 내부의 결함과 판단, 유전 공정의 설계, 관리 문제가 사고를 촉발하고 확산시킨 원인으로 지적됐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의사소통’ 즉 ‘사과’의 영역이다. 사고가 터진 후 BP에서 나온 커뮤니케이션 내용은 유전 현장을 관리하는 하청 업체에 대한 문제 지적 같은 책임 전가였다. 더 나아가 회사의 대표는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의 잘못은 아니라는 표현에서부터 유출된 기름양에 대해서도 상대적으로 적은 양이며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기업이 결과적으로 책임을 전가하거나 회피하는 이유는 지금 당장 발생한 업무에 대한 책임만 따지기 때문이다. 그 업무를 담당했던 누군가가 그 책임과 역할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문제를 일으켜서 지금 같은 위기가 발생했다는 ‘자기 확신’이 있기에 기업이 이를 인정하고 책임을 지는 것이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것이다.
또한 발생한 사건·사고의 부수적 영향까지 자신들의 과오로 야기된 것이라고 쉽게 인정할 경우, 명성이 훼손되고 법적 책임에 대한 압박까지 생길 수 있으니, 여러 상황을 단순하게 설명하거나 문제의 중요성, 피해 범위를 축소하거나 감소시키는 방법을 선택한다. 그런데, 이 ‘전략’은 성공할 수도 없고 성공한 적도 없다.
위기 대응의 목적은 이미 발생한 사건·사고를 지우는 것이 아니다. 위기로 인해 발생한 손상과 피해, 훼손을 최소화하는 것이며 평상시 비즈니스 상태로 신속하게 되돌리는 것이 위기 대응의 본질이다. 기업은 조직을 관리하고 유지해 온 전략, 관습, 관행이 있고 자원은 언제나 한계가 있다. 바다에서 유전을 발굴하고 원유를 추출하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상당한 위험을 동반하며, 폭발과 유출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BP의 사건이 기름 유출 사고로 기억되지 않고 ‘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 또는 불명예스러운 평판이나 소문’의 뜻을 가진 ‘스캔들(scandal)’로 언급되며 위기관리 주요 사례로 언급되는 이유는 문제 해결적 사과가 아니라 미련한 사과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만약 “기름 유출이 멈출 때까지, 바다와 해안이 이전과 동일한 상태로 돌아갈 때까지, 피해를 본 모든 사람에게 회복될 때까지 모든 조치를 다 할 것입니다”라는 입장을 처음부터 명확하게 밝혔더라면, 결과는 다르지 않았을까. 쉽지 않은 의사 결정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기업의 자원은 한계적이고 대응 역량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결정하는 순간 책임과 보상의 범위로 기업 재무적 손실은 엄청났을 것이다. 그러나 소통의 시작점에서 기준을 잘못 잡은 대가는 그 손실보다 더 크게 나타났다. 위기가 더욱 악화한 것은 자명했다.
진정성 갖춘 사과를 하려면
어떠한 부정적인 이슈가 제기될 때, 기업은 대응 논리, 자기 합리화, 사실관계 및 정황에 대한 근거 정보를 취합한다. 부정적인 이슈가 발생했다는 점에 대해 사과는 하더라도 문제가 되는 핵심 주제에 대해서는 변론이나 정당화를 위한 논리를 기술한다. 그런데 그 변론이나 정당화 내용이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바’이지만, 이해관계자들이 ‘바라는 바’는 아닌 경우가 많다. 기업의 피해나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또는 사안에 대한 구체적인 정황이나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서 여러 논리와 내용을 바탕으로 입장문을 전달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이슈를 확대하고 위기 손실을 키우는 경우가 많다. 이해관계자가 명확할 때, 우리가 원하는 것, 말하고 싶은 것을 그들이 원하는 것, 말하고 싶은 것과 연결해서 어떤 차이가 있는지, 그들의 입장에서 어떤 지적과 비판이 나올지 검토해야 한다.
무조건적으로 사과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책임의 정도, 객관적인 사실(증거) 확보 여부에 따라서 대응의 수준과 정도를 조율해야 한다. 그 대응이 공개되었을 때, 사람들에게 책임 전가, 꼬리 자르기, 희생양 만들기 등과 같은 비판을 받지 말아야 한다.
결국 잘못했다는 사과이든 개선하겠다는 약속이든,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인데, 기업이 모든 상황에서 그것이 가능한 일이냐고 따질 수 있다. 기업의 진정성은 주로 상대(고객, 위기 이해관계자)와 실제 감정의 합치와 책임 있고 일관된 행동에 의해 형성된다.
우선, 어떤 행동 규범을 어겼는지, 어떤 보편적인 가치를 훼손했는지를 따지고 그것을 명시해야 한다. 언어를 통해 사과를 하고 진정성을 보여준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기 잘못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그 사과의 태도에 대한 진심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두 번째로 본인의 행동에 대한 자책감과 행동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 해야 한다. 위기관리에서 이 부분은 단순히 사과문에 있는 멋진 수사나 표현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사과문에 기술되기 위한 행동, 위기에 대한 조치, 조직의 관심 정도가 가시적으로 선행되고 그것이 사과문에 표현됐을 때, 더욱 진정성을 얻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지적할 부분은 배려다. 피해자와 희생자를 배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기업은 이 배려가 종종 법적 책임의 범위와 수준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한다. 위기의 심각성, 피해의 범위, 여론 맥락 등을 고려해 살펴봐야 하겠지만, ‘배려’는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고 화해하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이다. 진정성은 나를 보호하기 위해 언어를 구성하는 순간 깨지게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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